[나순칼럼] 기러기 아빠

기사입력 : 2013년 12월 04일

매도 처음 맞는 사람이 가장 아프듯이 어느 집이나 맏이 노릇은 어려운 법이다. 우리 집의 경우는 더했다. 큰언니가 아버지 직장이 있는 도회지의 중학교에 입학하면서 부녀만 따로 살게 되었기 때문이다. 한창 예민한 사춘기에 편들어줄 사람 하나 없이, 완고한 아버지의 등쌀로 인해 주눅 들어 다녔던 상처를 두고두고 잊지 못해한다. 부친께서는 노동의 능률을 떨어뜨릴뿐더러 남의 가정에 파란을 일으킬 소지가 다분하다하여 “미인”을 싫어하셨는데, 여식에게서 여인 티가 나자 소녀적인 취향을 완전히 묵살해버렸던 것이다. 냉장고도 없고 기밀용기도 없던 60년대, 주전자 꼭지를 틀어막아 찬거리를 완행열차에 실어 나르며 양쪽 살림을 닦달하시느라 친정어머니 고충 또한 이만저만이 아니셨다. 비행기를 타고 다니며 유학 보낸 아이들 집과 한국의 남편 집을 청소해주는 여자를 일컬어 시쳇말로 “비행청소년”이라고 한다는데, 모친이야말로 비행청소년의 원조격인 “기행청소년”(에그머니, 죄송해요)이었던 셈이다. 어쨌든 두 집 살림을 하던 그 당시는 이도 저도 못 미쳐 집안 분위기가 뒤숭숭했다.

자녀를 부인과 함께 조기 유학시키고 한국에 남아 뒷바라지 하는 “기러기 아빠”가 매년 2만 가구씩 늘어간다는 보도다. 스무 가구 중 한 가구가 기러기 가구라고 한다. 한국에만 있는 기이한 현상인 만큼 한국 특유의 원인이 있을 터이다. 전문가에 따르면 조기유학의 원인은 크게 두 가지로, 세계화 시대 외국교육의 흡입력과 서열위주 한국교육의 방출요인을 꼽는다. 일류 아니면 먹히지 않는 사회통념과 자식의 미래 경쟁력을 위해 외국어 교육에 올인 하는 부모들의 열망이 빚어낸 한국 사회의 단면을 엿볼 수 있다. 요즘 한국에서 토익만점이라는 소리는 “나 눈 두 개 달렸소” 란 말과 다를 바 없다고 한다. 너나나나 영어는 기본이고 이러저러한 스펙 쌓기에 여념이 없다. 방어하기 위해 겹겹이 중무장을 하다 보니 갑옷 무게에 치여 싸우지도 못하게 된 중세시대 기사의 모습이 겹쳐온다. 외국에 나와 살다보면 어쭙잖은 영어구사나 피아노, 클라리넷 실력보다 탄탄한 한국어구사와 장구, 판소리, 고전무용 실력이 더 주목 받는다. 그만큼 우리나라의 경쟁력이 높아졌다는 의미도 되겠지만 시대불문 세상에 통하는 스펙이란 나만이 잘 할 수 있는 것, 즉 “고유의 정체성”인 셈이다.

부모자식 간 밥상머리 대화횟수와 어휘력 및 성적이 비례한다는 조사가 아니더라도, 자식교육을 위해 가족이산까지 강행하면서 얻는 것보다 잃는 것이 많지나 않은지. 자신보다 나은 자식을 바라는 건 모든 부모의 바람이지만, 우리에게 은연중에 자식을 통해 자신의 꿈을 이루려는 심리가 작용하지나 않는지, 짚어 봐야 할 듯싶다. 여성학자 박혜란씨는 젊은 엄마들이 자신의 성장은 포기한 채 자녀교육에 남은 인생을 바치려하는 태도를 우려하며, 아이를 잘 키우려면 우선 자기 자신을 키워야 한다고 역설한다. 스스로의 삶을 일궈가는 부모의 모습만큼 산교육이 있을까 싶기도 하고.  / 나순 (건축사, http://blog.naver.com/naarc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