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사회, 47년 전 프놈 크마웆 난민 학살 기록 재조명

기사입력 : 2026년 01월 27일

00947년 전 프놈 크마웆에서 벌어진 태국군 캄보디아 난민 살해 사건이 최근 국제 기록으로 발표되었다. 이 기록들은 이 사건이 부정할 수 없는 명백한 범죄임을 입증하고 있다.

정치학 연구가 인 소팔은 1979년 6월 8일에서 6월 13일 사이, 태국군이 캄보디아 난민 4~5만 명을 강제로 캄보디아로 추방했다고 말했다. 태국군은 난민들에 총구를 겨누며 지뢰밭을 통과하도록 떠밀었고, 난민들은 지뢰 폭발로 사망하거나, 되돌아가려다 태국군의 총격에 사망했다.

이 사건은 국제사회를 뒤흔들었다. 1979년 6월 29일 국제적십자위원회(ICRC)는 제네바로 서한을 보내 이러한 사실을 보고했다. 영국 기자 윌리엄 쇼크로스는 캄보디아 난민 약 5만 명이 총구에 떠밀려 절벽 밑으로 떨어지고, 지뢰밭을 통과해야 했으며, 음식과 물도 받지 못했다고 보도했다. 모톤 아브라모위츠 전 미국 대사는 태국군의 학살에서 살아남은 난민은 고작 1천여 명에 불과하며, 살아남은 이들도 극심한 굶주림과 질병으로 고통을 받고 있다고 발표했다.

구조 활동에 직접 참여했던 이베트 피에르파올리가 작성한 유엔난민기구(UNHCR) 기록에 따르면, 생존자는 900여 명에 불과했던 것으로 집계됐다. 같은 시기 베트남군은 지뢰밭에 갇혀 있던 캄보디아 난민 2,000~3,000명을 구조했다고 기록했다.

인 소팔은 1979년 4월 이후 태국군이 캄보디아 난민들을 수차례 프놈 크마웆으로 내몰았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 과정에서 약 10만 명의 난민들이 사망했고, 캄보디아로 돌아온 4천여 명만 생존했을 것으로 추산했다.

인 소팔은 태국군의 캄보디아 난민 학살은 1962년 쁘레아 뷔히어 사원 영유권 재판에서 태국이 캄보디아에 패소한 것에 대한 보복 심리였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의 설명에 따르면, 이 지역에서 캄보디아 난민 5만여 명을 살해한 태국군은 이를 ‘국가적 굴욕’에 대한 복수라고 표현한 것으로 전해졌다.

2026년 1월 18일, 태국 언론지 까오솟은 40년 전 프놈 크마웆 캄보디아 난민 대학살을 담은 영화에서 묘사된 태국의 모습에 우려를 표했다. 까오솟은 해당 영화가 실제와 다른 픽션이며, 프놈 크마웆을 제2의 킬링필드처럼 묘사해 역사를 왜곡하고 태국에 대한 증오심을 선동하면 안 된다고 말했다.

그러나 까오솟은 2025년 9월 14일, ‘태국-캄보디아 관계의 어두운 이면’이라는 제목으로 1980년대 폴 포트 정권 붕괴 후 당렉 산맥과 프놈 크마웆에서 벌어진 태국군의 캄보디아 난민 살해 사건을 조명한 바 있다. 해당 기사는 태국군이 저지른 행위는 조국의 깊은 수치이며, 태국의 젊은 세대는 이 사건을 알지 못한다고도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