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캄보디아 의료 지원을 위해 더 많은 의사 필요Posted 1227 days ago
- 태국 국경 개방과 동시에 통행증 신청 쇄도Posted 1227 days ago
- 코로나바이러스 확진자수 제로를 향하여 5월1일 단 2건에 그쳐Posted 1228 days ago
- 캄보디아-베트남 국경 인접 7개주 도로망 건설Posted 1228 days ago
- 5월 초 집중호우·홍수경보Posted 1228 days ago
- 캄보디아-베트남 돼지고기 밀수 단속 강화Posted 1228 days ago
- 미국, 캄보디아에 코로나19 백신 200만 회분 기부Posted 1228 days ago
- 캄보디아 2022 경제 성장률 5.4%로 하향 조정Posted 1228 days ago
- 캄보디아 학교 폭력, 금품 갈취는 기본, 교사 폭행 등 심각Posted 1228 days ago
- 캄보디아, 우기 오기도 전에 폭우로 6명 사망, 재산 피해 수백Posted 1228 days ago
[펌프아재의 펌프이야기] 한국의 전통민속놀이, 펌프잇업
캄보디아에서 펌프를 오래 뛰다 보니 자주 목격하는 풍경이 있다. 나와 비슷한 연배의 부모들이 자녀를 데리고 아케이드에 와서 함께 펌프를 뛰는 모습이다. 아이들에게 펌프를 시키기도 하지만, 때로는 부모가 직접 발판 위에 올라가 자녀들에게 시범을 보이는 장면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이들에게는 흥미로운 공통점이 있다. 바로 1999년이나 2000년에 출시된 곡들을 선호한다는 것이다. 펌프라는 게임을 모르는 사람이라도 ‘베토벤 바이러스’나 ‘터키 행진곡’ 같은 곡 제목은 한 번쯤 들어봤을 것이다.
나보다 조금 나이가 많은 분들은 대학 시절에, 동갑내기들은 고등학교 때, 나보다 어린 분들은 중학교 시절 오락실에서 펌프를 처음 접했을 것이다. 앞서 언급한 두 곡은 당시 가장 인기 있던 곡들로, 세월이 흘러도 몸이 기억하는 듯 자연스럽게 발과 몸이 움직이는 신기한 현상을 보여준다. 7년 전 펌프를 다시 시작했을 때 매주 정해진 시간에 펌프를 뛰라고 권해주신 형님도 마찬가지다. 최근 곡들은 어려워하시지만, 우리가 소싯적에 하던 그 곡들을 찾아서 함께 뛰고 나면 고등학교와 대학교 시절을 함께했던 펌프라는 좋은 추억을 나눌 수 있어 참으로 감사한 일이다.
외국인들이 바라본 한국과 펌프
7년 전 펌프에 복귀하면서 캄보디아 친구들에게 받았던 첫 시선은 ‘왜 아저씨가 펌프를 하지?’가 아니었다. 오히려 ‘와, 저 사람 한국 사람이야? 그럼 펌프 엄청 잘 하겠는데?’라는 기대감 어린 시선이었다.
이는 일종의 스테레오타입이라고 볼 수 있다. 마치 한국 사람이라 하면 모든 사람이 김치를 잘 먹고 적어도 태권도 검은띠는 땄을 것이라는 외국인들의 인식처럼, 외국인 펌프 플레이어들은 한국 사람이라면 기본적으로 일정 수준 이상의 펌프 실력을 갖췄으리라 기대하는 심리가 있다.
물론 7년 전 갓 복귀했을 때의 내 형편없는 실력에 그들이 조금 실망했던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꾸준한 연습으로 실력을 키웠을 때 ‘역시 한국 사람이라 그런지 펌프를 잘 한다’는 말을 들었고, ‘한국 사람이라고 꼭 펌프를 잘하는 건 아니다’라고 해명했지만 여전히 그들은 한국 사람에 대한 기대를 버리지 않는 듯했다.
펌프의 세계화와 한국의 위상
실제로 펌프잇업 최상위권에 랭크된 선수들 중 상당수가 한국 사람인 것은 맞다. 하지만 한국이 언제나 펌프 종주국의 위상을 유지한 것은 아니었다. 특히 2002년 월드컵을 전후로 펌프 인기가 떨어지며 오락실 산업 전체가 사양길에 접어들었던 시기가 있었다.
이때 의외로 남미에서 펌프가 대박을 터뜨리며, 남미에서의 인기에 힘입어 한국에서도 펌프가 명맥을 유지할 수 있었다. 때로는 남미의 인기가 한국을 훨씬 뛰어넘어 새로운 시리즈가 한국이 아닌 남미에서 먼저 출시되기도 했다. 현재 세계 최대의 펌프 대회인 “Big One Series”도 한국이 아닌 남미에서 열리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대회에서 한국 선수가 출전하면 엄청난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많은 기대를 받는다. 아무리 날고 기는 플레이어들이 남미에 포진해 있다 해도, 한국인 랭커가 스테이지에 올라오는 순간 모든 사람의 시선을 사로잡는 것은 ‘한국은 펌프의 나라’라는 인식 때문일 것이다.
K-Pop과 펌프의 만남
이런 이유들을 차치하고서라도, 펌프가 한국의 민속놀이일 수 있는 가장 큰 이유는 K-Pop 때문이 아닐까 싶다. 일본 게임인 DDR에 일본 곡들이 수록된 것처럼, 한국 게임인 펌프에 한국 가요가 수록되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K-Pop이라는 용어가 널리 쓰이게 된 것은 비교적 최근의 일이지만, 남미에서 펌프를 통해 K-Pop을 알게 된 유저들은 2000년대 초반에도 그리 드물지 않았다. K-Pop이 전 세계를 뒤흔들게 된 이후부터는 좋아하는 그 노래를 하려고 펌프를 시작한 유저들이 더욱 많아졌다.
7년 전 펌프에 복귀했을 때가 아직도 생생하다. 그때가 바로 캄보디아에서 펌프가 전성기를 누리던 시절이었는데, 그 이유는 특출난 선수들이 많아서도 아니고 인프라가 잘 구축되어서도 아니었다. 바로 블랙핑크의 노래 한 곡이 수록되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그 노래를 하려고 너도나도 동전을 넣고 기다리던 진풍경이 벌어진 것이 2018년이었다. 아쉽게도 새로운 시리즈가 나오면서 저작권 문제로 해당 곡이 삭제되어 이전만큼의 인기는 얻지 못하고 있지만, 그 이후에도 새로 나오는 K-Pop들이 계속해서 새로운 유저들을 발판 위로 끌어당기고 있다.
결론: 디지털 시대의 한국 민속놀이
펌프잇업이 단순한 아케이드 게임을 넘어 한국의 전통민속놀이라고 불릴 수 있는 이유는 여러 층위에서 찾을 수 있다.
첫째, 세대를 아우르는 공통의 추억과 문화적 경험을 제공한다는 점이다. 30-40대 부모가 자녀와 함께 펌프를 뛰며 자신의 청춘을 공유하는 모습은 전통 민속놀이가 가진 세대 전승의 특성을 그대로 보여준다. 몸이 기억하는 리듬과 스텝은 마치 어릴 적 배운 전래동요나 민요처럼 우리 안에 깊이 각인되어 있다.
둘째, 한국 문화의 세계적 전파 매개체로서의 역할이다. 펌프를 통해 전 세계 사람들이 K-Pop을 접하고, 나아가 한국 문화에 관심을 갖게 되는 것은 전통 민속놀이가 가진 문화적 파급력과 다르지 않다. 특히 ‘한국 사람은 펌프를 잘 할 것’이라는 외국인들의 기대는 펌프가 이미 한국을 대표하는 문화 콘텐츠로 인식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셋째, 디지털 기술과 전통적 놀이 문화가 결합된 새로운 형태의 민속놀이라는 점이다. 발판을 밟고 몸을 움직이며 리듬에 맞춰 춤추는 것은 전통 민속놀이의 신체적 즐거움과 공동체적 경험을 디지털 환경에서 재현한 것이다. 오락실이라는 공간에서 함께 모여 게임을 즐기고 서로의 실력을 응원하는 모습은 마을 잔치에서 함께 놀이를 즐기던 전통적 공동체 문화와 맥이 닿아 있다.
마지막으로, 한국적 정서와 흥을 전 세계에 전파하는 문화적 소프트파워로서의 가능성이다.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인 것’이라는 말처럼, K-Pop의 발전과 함께 펌프 또한 더욱 성장할 것으로 기대된다.
펌프잇업은 이제 단순한 게임을 넘어 한국인의 흥과 얼을 전파하며, 전 세계 사람들과 추억을 공유하는 디지털 놀이터가 되었다. 앞으로 5년, 10년 후의 펌프잇업이 더욱 기대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디지털 시대에 탄생한 새로운 형태의 한국 전통민속놀이로서, 펌프는 계속해서 세계와 한국을 이어주는 문화적 다리 역할을 해낼 것이다.
글 이재호
사단법인 조이풀에듀앤호프 캄보디아 지부장
CPF Series(Cambodia Pump it Up Festival) Organiz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