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캄보디아 승리의 날 47주년… ‘1월 7일’이 갖는 의미
매년 1월 7일 캄보디아의 수도 프놈펜은 ‘승리의 날’을 기념하는 인파로 가득 찬다. ‘쁘람삐 마까라’ ‘쁘람뻘 마까라’, ‘승리의 날’, ‘학살정권 해방의 날’ 등등 많은 이름으로 불리고 있는 이날에 캄보디아인들이, 그리고 캄보디아 정부가 이토록 열광하며 공을 들이는 이유는 무엇일까? 캄보디아인들이 여전히 이날을 기억하며 거리로 나서는 이유와 ‘승리’라는 단어 속에 감춰진 복잡한 역사의 단면을 들여다봤다.
공식 명칭 ‘대학살로부터의 승리의 날(Victory Over Genocide Day)’로 불리는 이날은 1979년 전 세계를 경악게 했던 ‘킬링필드’의 주역 크메르루즈 정권이 무너진 날이다. 올해로 47주년을 맞이한 이 기념일은 캄보디아인들에게 비극의 종식을 의미하는 동시에 오늘날까지 이어지는 정치적·사회적 갈등의 단초를 제공하고 있다.
승리의 날은 캄보디아 현대사에서 가장 상징적이면서도 복잡한 의미를 지닌 국경일이다. 2026년 올해는 특히 태국과의 긴박했던 국경 분쟁을 뒤로하고 맞이한 새해이기에 ‘평화’의 메시지는 그 어느 때보다 가슴 깊숙히 와닿는다.
역사의 시작은 1975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4년간 캄보디아를 지배한 폴 포트의 크메르루즈 정권은 공산주의 사회를 건설한다는 명분 아래 자국민을 사지로 몰아넣었다. 당시 고문, 처형, 기아 등으로 사망한 인구는 전체 인구의 4분의 1에 달하는 약 200만 명으로 추산된다.
이 참혹한 학살을 끝낸 전환점은 1979년 1월 7일이었다. 베트남군과 캄보디아 저항군의 전면 침공으로 수도 프놈펜이 함락되면서 크메르루즈는 태국 접경지대로 퇴각했다. 이로써 4년간의 공포 정치는 일단락되었고 캄보디아는 국가 재건의 기회를 맞이하게 되었다.
그러나 이날을 바라보는 역사의 시선은 극명하게 갈린다. 한편에서는 1월 7일을 베트남의 내정간섭을 허용한 ‘국치(國恥)의 날’이라 부르기도 한다. 크메르루즈를 몰아낸 주역이 베트남군이었다는 점에서, 그리고 이후 10년간 이어진 베트남의 주둔과 친베트남 정권의 수립을 ‘주권 침해’로 규정하는 시각이다.
캄보디아 야권 역시 비판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이들은 정부가 1월 7일을 집권당의 정치적 정통성을 홍보하는 도구로 이용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진정한 독립과 민주주의의 기점은 1월 7일이 아닌 1991년 ‘파리평화협정 체결일’이 되어야 한다는 논리다.
또한 국제사회와 인권단체들 또한 의구심을 제기한다. 정부가 ‘승리의 날’을 통해 강조해온 자유와 민주주의가 현재의 일당 독점 체제와 야당 탄압 상황에서 실질적으로 구현되고 있느냐는 지적이다. 1월 7일이 가져온 해방의 가치가 오늘날의 진정한 자유로 온전히 이어지지 못하고 있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이렇듯 캄보디아 승리의 날은 현대사가 안고 있는 깊은 상처와 복잡한 과거를 투영하는 거울이다. 47년의 세월이 흘렀음에도 여전히 평행선을 달리는 역사 인식을 극복하고, 이날을 정치적 선전이 아닌 국민적 화해와 통합의 계기로 만드는 것이 캄보디아 사회의 오랜 숙제로 남아있다./문다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