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순칼럼] 캄보디아 노사정 동상이몽

기사입력 : 2013년 09월 25일

2, 30년 전만 해도 건축 설계실에 여자가 드물어 거의 홍일점으로 지냈는데, 알고 보니 남자들의 술자리수다가 여자들의 전화수다 뺨치는 수준이었다. 어쩔 수 없이 남성수다의 단골메뉴인 군대얘기에 통달하게 되었다. 시커먼 남자들 틈에서 견디기에는 위선(僞善)보다 위악(僞惡)을 떠는 게 유리해 “이 몸은 해병대 의장대 출신이야!”, 너스레를 떨 정도였으니. (한 번 해병은 영원한 해병!) 음식서리 무용담, 고문관 백태, 연애 괴담 등 빤한 얘기였지만, 그 중에서 지리멸렬한 군 생활을 내내 황홀하게 보낼 수 있었던 비법을 들려준 재기발랄한 동료가 있었다. 그의 주특기는 통신병이었는데, 고장신고를 받고 민가에 내려갔다가 계곡 곳곳이 처자들의 빨래터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꼼수의 귀재인 그는 처자가 출몰하는 요충지마다 시기적절하게 재고장이 나게끔 부실공사를 해 놓고, 보수를 핑계로 제대하는 그날까지 미인계곡 생활을 즐겼다고 한다.

캄보디아 근로자를 대하다보면 간혹 그 옛 동료 생각이 난다. 수단 좋은 사람의 작전상 부실공사와 서투른 솜씨로 인한 불가항력적인 부실공사라는 점에서 다르지만, 어떠한 공정도 한 번에 끝나는 적이 없다는 면에서 닮았다. 문짝을 달다가 문틀을 건드려 어긋 내고 문틀을 고치다가 옆의 방충망을 망가뜨리기 일쑤다. 잘못된 곳을 지우개로 지우려다 멀쩡한 주변 그림까지 뭉개는 식이다. 작업 능률로 보자면 한국 목수 한 명이 하루에 문 20짝을 설치한다면 캄보디아 목수는 2인 1조로 2짝 정도 설치하는 게 고작이다. 시장에서 형성된 인건비에도 다 그만한 이유가 있으리라. 어쨌든 여전히 높은 문맹률의 느긋한 촌락공동체에서, 변변한 직업훈련조차 없이 갑자기 밀려온 조직적인 산업사회에 적응해야 하는 캄보디아 근로자의 처지가 딱하다. 처지가 딱하기로는 캄보디아 사업자도 마찬가지다. 캄보디아 국가 경쟁력이 세계 144개국 중 88위라고 한다. 국가발전을 저해하는 요소로 정부의 부정부패와 비효율적인 행정이 지목되었다. <웃물이 맑아야 아랫물이 맑다>는 말이 있듯이 윗선이 그 지경인데 기층민에게 달리 기대할 게 있겠는가? 젯밥에만 관심 있는 관청에 인허가 내랴, 마음은 콩밭에 있는 직원들 독려하여 마감기일 맞추랴, 캄보디아 관리직 종사자는 표정만 봐도 알 수 있다. 방금 쓸개라도 씹은 표정.

저임금시장을 찾아 각국의 기업이 캄보디아로 진출하면서, 인력수급 경쟁에 따른 임금인상을 빌미로 한 잦은 노동쟁의가 사회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저렴한 노동비용이 메리트인 노동집약산업의 딜레마가 아닐 수 없다. 가파른 물가상승률에 못 미치는 임금상승률로 생활이 고달픈 노동자 측, 최종구매자의 최저가압박 속에 낮은 노동생산성으로 속앓이를 하는 사용자 측, 인권 및 노동법을 감시해야하는 국제감시단 측, 주변국가보다 나은 조건으로 외국인 투자를 유치해야 하고 민심까지 챙겨야 하는 정부 측, 합의점을 찾기가 쉽지 않아 보인다.  / 나순 (건축사, http://blog.naver.com/naarc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