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인칼럼] 역사인식 혼란 초래할‘역사전쟁’

기사입력 : 2013년 09월 11일

고등학교 한국사 교과서 검정 논란이 정계로 비화되었다. 학문의 영역에 속한 문제에 정치가 개입해 무엇을 얻겠다는 것인지 개탄스러운 일이다. 역사인식의 혼란을 부채질 하는 정파적 주장들이 어떤 결과를 초래할지 걱정스럽기만 하다. 과거사 평가와 해석에 정치의 입김이 작용하면 역사는 뒤틀리고 변질되어 시대의 거울이 될 수 없다.

교학사의 고교 한국사 검정을 민주당이 편향·부실로 몰아붙이면서 검정취소까지 요구하고 나서자, 새누리당은 ‘좌파와의 역사전쟁’이라는 섬뜩한 말로 응수했다. 민주당 지도부는 이 교과서 내용과 검정과정을 문제 삼아 출판을 저지하겠다고 천명했다. 이를 의식한 양, 김무성 새누리당 의원은 근현대사 의원모임을 꾸려 첫 회합부터 세를 과시했다.

교과서 내용과 검정과정 문제가 제기되었으니 사실관계부터 따져 논리적으로 대응하는 것이 순서일 것이다. 국민 일반의 지지와 동의를 얻어야 논리싸움에서 이길 수 있지 않은가. 이석기 통진당 의원 체포동의안 가결을 의식한 듯, ‘좌파와의 전쟁을 승리로 종식시키자’고 한 주장은 원대한 포부를 가졌다는 정치인의 금도가 아니다.

교과서 검정에 문제가 있다는 진보진영 주장에는 귀담아 들을 부분이 있다. 검정기구 구성과 검정업무 폐쇄성 시비가 대표적인 문제다. 근현대사 검정위원회 구성이 공개적이고 합리적이어야 한다는 것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그런데 역사교과서 검정기관인 국사편찬위원회(국편) 검정위원회 구성에는 처음부터 학계에 뒷말이 따랐다.

위원 일부가 정권의 입맛에 맞는 뉴 라이트 성향이라는 소문이 그치지 않았고, 결과도 그 소문의 뒷받침이 되었다. 위원들의 학문적 성과가 검증되었느냐는 의문에도 궁색한 반론뿐이다. 검정 과정의 기밀주의도 도마에 올랐다. 전에는 2차 검정작업이 끝나면 일선 고교 교사들의 공개검정 절차가 있었다. 그러나 저작권 침해를 이유로 그 과정이 없어져, 검정이 끝나도 책이 나오기 전에는 내용을 알 수가 없는 시스템이다. 내용 면에서도 국민 일반의 역사인식과 동떨어진 데가 많아 검정의 객관성에 의구심이 제기되기도 한다. ‘일제의 식민지배가 지속될수록 한국인에게 근대적인 시간관념이 수용되었다’는 일제 강점기 역사기술은 반발을 사기에 충분하다. 일본이 주장하는 식민지근대화론을 연상케 하는 대목이 아닌가.

역사는 정쟁의 대상이 아니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과거의 일을 집권자 입맛에 맞게 평가하고 해석하면 국민의 역사인식에 혼란이 일어날 수밖에 없다. 역사는 있는 그대로를 기술하는 춘추필법(春秋筆法) 정신을 요구한다. 전문가 아닌 사람들, 특히 권력자들이 용훼하면 역사는 소설이 되고 만다./ 문창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