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캄보디아 한인 선교사 이야기] 제 14 화 1999년에서 2000년으로, 새천년이 시작되다

기사입력 : 2020년 09월 25일

811-1▲ 기아대책 깜폿 성탄예배(1998년)

1999년과 2000년은 시간상으로는 1년이지만, 캄보디아에 주재하는 한인 선교사들은 상당한 차이를 실감하였다. 이에 대한 배경으로 캄보디아는 1999년 4월 30일, 동남아국가연합(아세안, ASEAN)에 가입하였으며, 2002년 아세안 정상회담을 프놈펜에서 개최하였다. 이는 과거 캄보디아가 갖고 있던 전 근대적 이미지를 탈피하는 데 큰 역할을 하였으며, 구체적으로 프놈펜 시내의 도로포장, 전기와 수도 설치, 외국인 투자법 개정 등으로 이어졌으며, 이를 계기로 캄보디아는 외국인 주재에 안전하고 투자할만한 나라라는 것이 대내외적으로 알려졌다.

한국 교회에서는 경제 성장과 함께, 해외 선교에 대한 새로운 시각, 즉 파송 받은 선교사나 담임 목사에 의해 대행되던 선교에서 단기 선교팀과 단기 선교사 파송 등을 통해 교인들이 직접 참여하는 선교의 물꼬가 시작되었다. 이는 해외 관광이라는 아이템과 결부되면서, 선교문화 여행, 비전(미션) 트립이나 선교지 정탐 등으로 이어졌고, 한국과 5~6시간 거리라는 지정학적 위치와 저개발이라는 캄보디아의 상황 그리고 무엇보다 배타적이거나 제한적이기보다는 수용적인 캄보디아의 열린 선교 환경으로 인해 많은 한인 선교사가 캄보디아에 입국하였다.

임신자 선교사, 이성연/정정아 선교사, 김병교/한경복 선교사, 김창훈/정기순 선교사, 오태근/이세금 선교사, 김조동/임희무 선교사, 김기대/류소현 선교사 등이 2000년, 캄보디아에 입국하였는데, 이화선교사후원회의 파송을 받은 임신자 선교사는 프놈펜왕립대학교(RUPP)에서 교수 사역을, 예장합동중앙과 GWIM 파송을 받은 이성연 선교사 부부는 뽀삿주에서 교회아 교도소 사역을, 예장통합(PCKWM)과 명성교회 파송을 받은 김병교 선교사 부부는 파키스탄에서 캄보디아로 선교지를 변경 후, 껀달주 따끄마으에서 교회 사역과 고아원 사역을, 예장합동(GMS)과 신평로교회 파송을 받은 김창훈 선교사 부부는 프놈펜과 인근 지역에서 교회 사역과 제자훈련을, 예장통합(PCKWM)과 여수은파교회 파송을 받은 오태근 선교사 부부는 껀달주 쁘렉아엥에서 교회와 학교 사역을, 한국성서침례교와 불광동성서침례교회의 파송을 받은 김조동 선교사 부부는 프놈펜에서 교회와 신학교 사역을, 민들레공동체의 파송을 받은 김기대 선교사 부부는 따께오주에서 교회와 교육 문화, 지역사회 개발 중심의 공동체 사역을 시작하였다.

811-2▲ 한인선교사회 므비보셋센터 월례회(1999년)

1993년부터 2000년까지의 만 8년은, 캄보디아 한인 선교의 초창기였으며, 한인선교사회에 가입한 40~50명의 한인 선교사들은 정기적인 모임을 하고 서로의 사역과 기도 제목을 나누었다. 사역 배경은 대부분 개별적이었지만, 일부 교단과 선교단체는 연합의 방향과 형태를 지향하였다. 송진섭 선교사는 캄보디아 주재 한국 감리교 외에도 프랑스 감리교, 미국 감리교와 싱가포르 감리교 등을 묶어 ‘캄보디아감리교회(MCC)’ 이름으로 종교부 허가를 받았으며, 이병관/공은혜 선교사는 어린이전도협회(CEF)의 미국인 선교사와 동역하면서 주일학교 공과, 글 없는 책을 비롯한 전도와 교사훈련을 위한 교재를 발행하였으며, 발행한 교재의 활용을 위해 정기적인 교사훈련을 시작하였다. 이성민/김창숙 선교사는 깜뽓 지역에 교회 지도자 훈련센터를 세워 초 교파로 셀 그룹과 교회 개척, 청장년 신앙 훈련을 진행하였다. 한편 태국, 베트남, 라오스, 미얀마와 캄보디아 5개국의 한인 선교사 중 시니어 선교사들은 1999년, 베트남 호찌민시에서 ‘인도차이나 한인선교사협의회’ 구성을 위한 준비 모임을 가졌으며, 2000년 10월, 태국 방콕부터 5개국을 순회하는 인도차이나 5개국 한인선교사대회를 갖기 시작하였다./장완익 선교사 (KMAC 역사연구분과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