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은 예술 이야기] 네번 째 이야기 – 푸치니와 나비부인 그리고 프놈펜의 예술이 있는 밤

기사입력 : 2020년 09월 07일

푸치니와 나비부인 - 복사본▲ 푸치니의 나비부인(Madama Butterfly) 포스터

1904년 2월 27일 밤 이탈리아인들의 문화적 자존심인 밀라노의 라 스칼라 극장 객석의 가장 자리에는 <지오코모 푸치니>가 앉아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의 모습은 이상하리만치 긴장되어 있었으며 손톱을 깨물고 이를 악문 모습은 음악회를 감상하는 것이 아니라 전쟁을 목전에 둔 장군과 같은 분위기였습니다. 당시 푸치니는 이탈리아뿐만 아니라 유럽전역에서 오페라를 대표하는 작곡가로 명성을 알리고 있었으며, 그의 작품들은 이 작곡가에게 명성과 부를 가져다주고 있었습니다. 루돌프와 미미의 뜨거운 사랑을 담은 오페라 <라보엠>, 불꽃같은 사랑과 정열을 담은 <토스카>, 그의 대표적 출세작 <마농 레스코>로 인해 매년 15만불 이상의 수입을 거두고 있던 푸치니, 당시의 저작권료 전성시대에 그는 황제가 부럽지 않는 삶을 살고 있었습니다. 그런 그였기에 이전의 작품들이 무대에 올라 갈 때와는 사정이 많이 달라져 있었습니다. 극장도 가수도 지휘자도 그가 택한 사람들로 무대를 채울 수 있었고 연습과정도 전에 없이 순조롭게 진행이 되었습니다. 자신만만하게 준비하고 각종 진기록을 세우며 무대에 올렸던 오페라에 과연 무슨 일이 벌어졌을까요?

<나비부인>의 초연 날. 공연은 시작부터 냉랭했습니다. 서곡이 연주되는 동안 관중들은 얼어붙은 듯이 조용했습니다. 세계 3대 오페라 극장 중에서도 대표주자라 불리는 이탈리아 “라 스칼라” 의 관객들은 오래전부터 극성으로 유명했다. 연주자들의 노래가 그들의 마음에만족스러울때도 또한 마음에 들지 않을때도 말이다.

주인공역의 ‘로지나 스토르키오’가 무대에 올라 노래를 부르자 <라보엠의 표절이다><새로운 것을 보여달라>라며 야유가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겨우 1막을 마치고 푸치니는 무대로 올라가 인사를 하게 되었는데, 여기에 야유와 조소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박수를 친 사람은 유일하게 푸치니의 친구인 오페라 <카발레리아 루스티카나>의 작곡가인 ‘피에트로 마스카니’ 정도였습니다. 그의 가족들은 마냥 울고만 있었다.

난장판 같은 공연을 마친 후 푸치니는 스칼라 극장 건너편의 아파트로 돌아와 피아노를 주먹으로 내려칠 정도로 분노하며, 선금으로 받은 공연료를 극장에 되돌려 주었다. 당대 최고의 작곡가에게 닥친 엄청난 충격의 이 일로 인해 상심의 시간을 보내게 된 푸치니.

무대와 작품을 통해 명성을 얻은 그에게 이 새로운 무대와 작품은 그를 끝없는 나락으로 떨어트리게 되었다.

무엇이 그에게 이런 실패와 아픔을 가져다 주었을까요? 그것은 푸치니가 중요한 몇 가지를 잊어버리고 있었던 것이다.

첫번째로 음악사측면에서 봤을 때 당시는 소설이나, 실화, 희극, 전기, 신들의 이야기가 보편적인 오페라 작곡의 배경이 되었는데 난데없이 문화에 대한 이해가 전혀 없었던 일본이라는 나라의 이야기를 배경으로 설정했다는 것이다.

두 번째가 당대 최고의 작곡가라고 불리우던 ‘교만’이라는 무서운 적을 가졌다는 것이다. 작품마다 성공을 거둔 푸치니의 입장에서는 자신감이 지나쳐 누구의 이야기도 수용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출판사와 대본작가, 연출자와 지휘자에 이르기까지 이구동성으로 ‘2막이 너무 길고 부자연스러우니 관객들과 반드시 좋지 않은 일이 일어날 것이다’ 라고 경고를 했음에도 전혀 받아들이지 않았다고 한다. 또한 별나기도 유명한 밀라노의 관객과 언론의 연습공개 요청을 묵살해 버렸다는 것이다.

한 마디로 ‘너희들이 뭐라고 하던 나는 내 하고 싶은데로 할 것이고, 내가 만든 작품은 무조건 성공한다’ 라는 것이었다. 여기에 대해 본인을 제외한 나머지 공연의 성공이라는 축을 이루는 언론, 관객, 소재, 작품 등에서는 철저하게 실패를 한 것이다.

이 이야기는 성공하는 공연은 작품 이외에도 많은 것들을 포함 한다는 것을 보여준 것이다. 하지만 이들을 성공적으로 이끌어 가기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보다도 관객의 눈을 두렵게 생각해야 된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된다 라는 것을 강조하고 싶은것이다.

#류기룡IMG_3210▲ 류기룡 교수 <We are back> 음악회에서 가곡을 열창하고 있다.

코비드19으로 인해 어려운 시기임에도 불구하고 PPCB의 후원으로 몇일전 진행했던 <We are Back> 음악회를 준비하면서 필자는 푸치니와 같은 심정이었음을 고백하고 싶다. 3개월의 준비 기간동안 매순간 어떤 관객이 올까 그들은 과연 어떤 노래를 좋아할까 생각하면서 연습을 할 때면 행복하면서도 두려움으로 식은 땀을 흘린적이 한두번이 아니다. 캄보디아에서 열리는 음악회에 예술가곡을 부를까 오페라 아리아를 부를까 세미클래식이나 대중가요를 부를까 순간마다 고민을 했었다.

하지만 나에게 가장 중요한 것 하나, 내가 성악가라는 것을 잊지 않았다는 것과 그것을 가지고 관객들에게 나의 마음을 선물하고 싶었다는 것이다.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이곳 프놈펜의 저녁이 음악회와 각종 공연들로 풍성해 지기를 소망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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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기룡 교수

경북대, 러시아국립차이코프스키음악원(석·박사)
캄보디아 왕립예술대학 교수

성악가, 합창지휘자, 콘서트 프로듀서
NGO활동가로 동남아, 한국, 유럽에서 활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