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순 칼럼] 앞집 부부

기사입력 : 2017년 03월 17일

경주견 그레이하운드와 사람이 장거리 경기를 하면 항상 개가 이긴다. 체중대비 근력을 따져보면 서로 비슷해 이론상으로는 승률이 반반이어야 하는데 인간이 완패하는 이유는 뭘까? 그 분석이 흥미롭다. 아무 생각 없이 그냥 달리기만 하는 개에 비해 사람은 도달해야할 목표를 염두에 두고 줄곧 결승선이 얼마나 남았는지 어떻게 해야 이길 수 있을지 고심하는 과정에서 엄청난 에너지를 낭비하기 때문이다. 어떤 애완견 경주에선가 잘 달리다가 먹잇감이나 예쁜 아가씨 개를 발견하면 그야말로 “아무생각 없이” 삼천포로 빠져버리는 경우도 보았지만.

열대지방에 살다보면 여간해서 걷게 되지 않아 운동이 필수다. 매일 거르지 말아야지 결심하지만 꾀가 날 때가 많다. 다행히 게으름에 제동을 걸어주는 사람이 있는데 바로 앞집 부부다. 아파트 두어 채를 짓고 남을 만한 대지에 저택을 새로 지어 사는 부부로 하루도 빠지지 않고 널따란 담장을 트랙삼아 걷는 게 내려다보인다. 그 집 역시 완벽한 부부가 되려면 남편의 두둑한 뱃살을 아내의 꺼진 젖가슴과 엉덩이에 나눠주어야 할 듯해 우리 연배로 보인다. ‘그대들은 넓은 대지에 대한 소유권이 있지만 나에게는 높은 아파트에 사는 조망권이 있다.’ 어느 날 부턴가 ‘나라고 운동을 거를소냐’ 괜한 경쟁심을 느끼게 된 것이다. 웬일인지 부부는 같은 시간대에 운동을 하지만 따로 따로 다닌다. 동네가 떠나가라 파티를 자주 벌여 화려하게 사는 듯싶은데 각자 골똘해서 걸을 때는 저마다 슬픔 같은 게 느껴진다. 슬픔이라기보다 세상에는 사람 수만큼이나 다른 근심이 있을 것 같다는 느낌. 죽기 전까지 영혼에 휴식이란 없을 것 같다는 그런 느낌.

일본에서 거액의 복권에 당첨된 사람이 일과를 공개했다. 느지막이 기상해 TV나 동물 DVD를 시청한 후 친구를 만나 소박한 점심을 먹고 오후 내내 오락실에서 놀다 저녁 또한 그럭저럭 때우고 다시 오락실에 갔다가 늦게야 잠자리에 든다. 그 무위한 일상이 수많은 사람의 부러움을 샀다. 사실 여느 백수생활과 다를 바 없다. 마음을 졸이느냐 마느냐의 차이가 있을 뿐. 복권당첨 초기엔 흥청망청해 라스베이거스로 가서 1억엔을 쓰기도 했다는데, 거의 잃지 않았다는 사실! 목표에 대한 자의식 없이 즐겨나 보자는 베팅이 그런 결과를 부르지 않았나 싶다.

우리에겐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의식하는 ‘자아’가 있다. 수시로 목표를 수립하고 수정하면서 행동을 선택해가는 과정에서 남의 시선을 의식하고 실패할까 두려워하며 끊임없이 자기검열을 하는 것이다. 반성 혹은 자기성찰에 가까운 인식이지만 스스로를 들볶아 대며 자신을 기만하는 측면도 있다. 타고난 성정대로 천진난만하게 사는 유년기에는 존재하지 않는다. 대부분의 동물이 서열을 두고 다투지만 이처럼 고등인지기능을 가진 동물은 인간밖에 없다. 학자에 따라 ‘자아’를 가진 게 고등동물로서 받은 선물이자 저주라고 한다. 요컨대 자의식을 어떻게 다루느냐에 행복의 비밀과 열쇠가 있는 것이다. /나 순 (건축사, 메종루비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