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순 칼럼] 금문교(金門橋, Golden Gate Bridge)

기사입력 : 2017년 02월 23일

안개에 쌓인 금문교(金門橋, Golden Gate Bridge)는 샌프란시스코의 상징으로 꼽힌다. 샌프란시스코 만과 마린 카운티를 연결하는 이 다리는 험한 지형과 강한 바람에 조류마저 거세 ‘실현 불가능한 꿈’으로 치부되었으나 반대를 무릅쓴 공사 끝에 1937년 개통되었다. 무려 27,572개의 철선을 꼬아서 만든 직경 90cm의 케이블에 매달려 있는 현수교로 길이가 2.8km에 달한다. 다리 밑 수심이 깊어 대형선박이 왕래할 수 있을 뿐더러 해수면에서 거리도 높아 비행기까지 통과할 수 있다. 현대 토목건축물 가운데 7대 불가사의 중 하나로 선정되었다.

이 아름다운 다리의 내구연한(耐久年限)은 놀랍게도 ‘무한대’라고 한다. 무한한 내구성의 조건 중 하나는 흔들림에 있다. 교량 중심부에서 8미터까지 흔들릴 수 있게 고안한 엔지니어 조셉 스트라우스의 치밀한 설계에 의해 웬만한 강풍과 8, 9도 강진에도 끄떡없다. 무한생명력의 가장 핵심은 다름 아닌 페인트칠이다. 칠을 몇 년 주기로 하는 게 아니라 연중 매일 계속한다. 이름과 달리 금색이 아닌 적색으로 칠해지는데, 매일 칠하면서 매일 점검하여 보수 보강한다는 것이다.

나 같이 교훈을 좋아하는 구닥다리는 <겨울 나라의 앨리스>의 ‘붉은 여왕 효과’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모든 게 발전해가는 사회에선 그 속도만큼 따라잡아야 겨우 제자리를 지킬 수 있다. 쇠퇴라고 다르지 않다. 쉼 없이 쇠락하는 상황에선 그 만큼의 수선이 따라야 본모습을 보전할 수 있는 것이다. 요컨대 도태되지 않으려거든 쇄신을 계속하라는 얘기다. 현상을 유지하는 평범한 삶이 얼마나 위대한가. 건축물, 도로, 교각 등 국토개발이 한창인 캄보디아야말로 금문교 영선에 대한 교훈을 새겨봄직 하다. 개발러시를 거친 국가에서 건설붐 이후 한 세대쯤 지나 공작물에 피로가 발생할 즈음 대형사고가 터지곤 한다. 우리나라 삼풍백화점과 성수대교 붕괴가 그 예다. 캐나다에서는 붕괴되면서 많은 사상자를 낸 다리의 철근으로 만든 철(鐵)반지를 졸업하는 건축 공학자에게 수여한다. 평생 의무적으로 끼고 다니며 엔지니어로서 본분을 망각하지 말라는 취지에서다.

금문교가 개통된 이후 오랫동안 페인트칠을 계속해온 사람의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 한 사람이 다리 전체를 칠하는데 꼬박 일 년이 걸리는 일로, 1월 1일 남쪽 끝에서 칠하기 시작해 12월 31일 북쪽 끝에서 마친다는 것이다. 수십 년을 하루같이 홀로 다리에 매달려 있었을 칠공, 그는 인간 또한 금문교처럼 부품교체와 수선이 가능하다면 영생하기를 바랐을까. 금문교가 영원하기를 꿈꿨을지라도 자신의 영생은 바라지 않았을 것 같다. ‘자아(自我)’만 제외하고 모든 신체를 교체할 수 있어 그야말로 영생이 가능해진 시대를 맞은 어느 SF영화에서도 몇 세대 지나지 않아 어떻게 하면 인생을 끝장낼 수 있나, 대부분이 죽음을 갈망하는 것으로 그려진다. 하루하루 부단히 노력해온 사람이라면 삶의 일회성에 감사하며 어느 날 찾아올 죽음을 휴식처럼 느끼지 않을까./ 나 순(건축사, 메종루비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