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우칼럼] 우기를 지나며

기사입력 : 2016년 07월 20일

햇볕이 잘 드는 창밖에 연꽃 화분 하나를 사다 놓았다. 물 밑에서 진갈색 몽우리를 틔운 후 꽃대를 밀어 올려 이삼일에 한 송이씩 꽃을 피워 낸다. 연이어서 하나씩 꽃대가 올라오는 것이 참 신기하다. 몇 시간 외출했다 돌아오면 꽃대가 쑥 올라와 있다. 자세히 관찰해 보니 하루에 10cm 가까이 자랄 정도로 생장 속도가 빠르다. 비가 안 오면 날마다 화분이 넘칠 정도로 물을 채워 주는데, 하루에 2cm 이상 물이 줄어든다. 하루 증발량이 무척 많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햇볕이 강하게 내리쬐는데다가 늘 바람이 불어 그렇고, 우기라 해도 습도가 70%를 넘는 경우가 별로 없어서 그렇게 증발량이 많은 것 같다. 캄보디아가 다 그럴 것이다.

올해도 작년과 같이 우기가 늦게 찾아와서 캄보디아 사람들의 애를 태웠다. 파일린 같은 곳에서는 수원지가 마르는 바람에 1주일 가까이 단수가 돼서 큰 불편을 겪었다. 물을 퍼 갈까봐 물통에 자물쇠를 채워 놓는 해프닝도 있었다고 한다. 우기가 좀 늦게 찾아오긴 했지만 올해는 웬만한 천수답 대부분이 모내기를 끝낼 정도로 비가 내렸다. 쌀농사에 의존하는 캄보디아의 농업 구조상 제 때에 적당량의 비가 내려 주느냐 아니냐가 그 해 농사의 성패를 좌우한다. 모내기를 끝내면 그 다음 할 일을 거의 없다. 쌀농사를 지을 때 비료나 농약을 주는 경우가 드물기 때문이다. 이제부터 비와 햇볕과 바람이 할 일만 남았다. 지역에 따라서는 모내기철과 추수철이 다른 곳도 있기는 하지만.

우기에는 하루나 이틀에 한 번꼴로 비가 내린다. 더러는 몇 시간 동안 내리기도 하지만 대개 30~30분 정도 세차게 내리다가 그치는 것이 우기의 전형적인 형태다. 한 번에 내리는 강수량이 보통 20mm 내외지만 더러는 몇 시간 동안 100mm 이상 내리기도 한다. 캄보디아의 연평균 강수량은 1,200mm가 조금 넘는다. 해변이나 산악 지대 일부 지역은 1년에 2,000mm 이상 비가 내릴 정도로 강수량의 지역적 편차가 크다. 해발 고도가 거의 같은 평지가 많은 지형적 특징 때문에 우기에 많은 비가 내리지만 담수 기능이 매우 취약해서 건기는 물론 우기에도 물 부족 사태를 겪는 경우가 있다고 한다.

캄보디아 사람들만큼 비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또 있을까? 비가 세차게 쏟아지는데도 비를 그대로 맞으며 다니는 사람이 많다. 하루 이틀에 한 번씩 비가 내리지만 우산이나 우비를 챙겨 다니는 사람이 드물다. 비가 내리면 잠깐 길가 건물의 처마 밑이나 주유소에서 비를 피했다가 비가 그치면 가면 된다. 비가 많이 내리면 프놈펜에도 도로가 침수되는 곳이 곳곳에 생긴다. 상가나 가정집이 침수되기도 한다. 우기만 되면 이런 사태를 자주 겪지만 거기에 사는 사람들 표정은 사뭇 태연하다. 웃고 떠들며 물장난을 치는 사람도 있다. 물난리가 아니라 물축제를 즐기는 듯하다. 비를 좋아해서 그렇다고 생각한다.

등교 시간 직전에 비가 내리면 학교가 썰렁하다. 수업이 제 시간에 시작되지 못한다. 비가 그쳐야 학생들이 꾸역꾸역 몰려든다. 아예 학교에 나오지 않는 학생도 많다. 우기가 끝나는 10월 말쯤 되면 그 동안 내린 비 때문에 침수가 되는 곳이 많이 생긴다. 농토는 물론 집까지 잠겨서 높은 지대로 대피하기도 한다. 매년 거의 되풀이되는 일이지만 사람들은 이를 재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물이 복을 가져다준다고 믿는다.

오후 2시, 바람이 거세진다. 하늘에 먹구름이 덮이기 시작한다. 아침에 활짝 피었던 연꽃이 봉오리를 살짝 다물었다. 비를 맞을 채비를 하는 것이다. 어제는 비가 올 듯하다 건너뛰었는데 오늘은 좀 쫙 내려 줬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