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캄보디아역사탐방] 크메르 루즈

기사입력 : 2015년 03월 26일

KhmerRouge

군부 지도자 론 놀이 시하눅을 몰아내고 크메르 공화국을 설립하지만 현재의 스와이 리응과 깜뽕참, 몬돌끼리 등 베트남에 인접한 동부 지역이 베트남의 손에 들어가 있었고 폴 폿이 이끄는 크메르 루즈가 농촌의 지지를 받으면서 세력을 확장하고 있었다. 또한 당시 미국이 베트남군 소탕을 위해 캄보디아에 대규모 폭격을 하였으나 결과적으로 크메르 루즈에 대한 지지만 높아지게 되었다. 결국 1975년에는 수도인 프놈펜과 그 외곽 지역만이 크메르 공화국의 영역이었다. 그리고 그 해 4월 크메르 루즈가 프놈펜을 점령하여 크메르 공화국은 사라진다. 론 놀은 미국으로 망명하였고 론 놀 정부의 대다수는 크메르 루즈에 의해 처형당한다.

1976년 크메르 루즈는 민주 캄푸치아 정부를 수립한다. 이 후 캄보디아는 100만에 이르는 사상자와 30만명의 난민이 발생하는 역사상 가장 비극적인 시기를 거친다. 크메르 루즈가 들어오자마자 캄보디아의 주요 대도시에서 시민들이 농촌으로 강제 이주를 당하였다. 총으로 위협하여 집에서 무작정 끌어내기도 하였다. 이는 정치적인 의도와 농업을 매우 중요시하는 폴 폿의 성향 때문이었다. 도시에서 강제로 이주당한 사람들은 매우 차별적인 대우를 받았으며 열악한 환경에서 강제노동을 해야했다. 반면 농촌에 원래부터 거주했던 주민들은 도시지역에서 이주당한 사람들에 비해서는 그나마 괜찮은 대우를 받았다.

Tuol_Sleng

1975년 이전에 교육에 종사했던 사람들은 처형당했으며 생존하기 위해서 자신의 신분을 속여야만 했다. 교육은 간단한 수학과 읽기 정도만 제공되었고 그 밖에는 혁명 의식을 심어주는 것이었다. 의사들은 지식인으로써 처형당하였고 의료행위도 금지되었다. 고위 간부들을 제외하고는 일반사람들은 서구 의료 기술과 약품을 이용할 수 없었으며 민간요법에 의지할 수 밖에 없었다. 종교 또한 탄압이 심하였다. 캄보디아인 대부분이 믿는 소승불교의 스님들은 강제로 노동을 해야했다. 기독교와 이슬람교 등은 탄압이 더욱 심하여 성직자들은 처형당하고 가톨릭 성당 등은 완전히 파괴되었다.

또한 강제 수용소를 만들어 반혁명 사상을 가지고있는 사람이나 그렇게 의심되는 사람들을 수용했다. 뚜을 슬랭 박물관이 가장 악명높았던 곳이었고 이곳을 거쳐간 사람들만 해도 2만명이나 되었으나 구출된 사람은 12명밖에 없었다. 친베트남 성향을 보였던 동부지역은 쿠데타의 조짐이 보였으나 미수에 그쳤고 이로 인해 동부의 많은 사람들이 처형당했으며 대다수는 베트남으로 도망쳤다.  / 글 : 박근태(왕립프놈펜대학 크메르어문학과 4학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