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캄보디아역사탐방] 앙코르 시대 이후의 캄보디아 5

기사입력 : 2014년 12월 1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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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국에 대한 반감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친베트남 정책을 펼쳤던 ‘찬’ 왕은 캄보디아 내 베트남인들로 자신의 경호단을 만들기도 하였다. 1809년에 ‘찬’ 왕은 태국의 라마 1세가 사망한 뒤 그의 장례식의 참석을 요구한 태국 관리를 처형하였고 이에 격분한 태국 왕조는 1811년 보복으로 캄보디아를 공격한다. ‘찬’ 왕은 1812년 베트남의 도움으로 수도를 우동에서 프놈펜으로 옮겼다.

친태국 성향을 가지고 있던 ‘찬’ 왕의 형제들은 방콕으로 피신했고, 그의 형제들이 태국의 도움으로 왕권을 차지할까 두려웠던 ‘찬’ 왕은 친베트남 정책을 강화한다. 그러나 이러한 결정의 결과로 ‘찬’ 왕의 왕권은 약해지고 베트남에게 굴복하게 된다. 왕은 베트남 왕조의 의복을 입고 베트남 사원을 방문하고 참배해야 했으며, 캄보디아인들을 혹독한 부역에 동원시켰다. 이로 인해 반베트남 시위가 일어나게 되고 이러한 소식은 빠르게 태국의 라마 3세에게 전달되었다. 라마 3세는 캄보디아에 대한 영향력을 강화하기 위해 군대를 소집하여 톤레삽 줄기를 따라 캄보디아를 침공했다. ‘찬’ 왕은 베트남으로 피신하였고 태국 원정군은 프놈펜을 장악하였고 이어서 베트남 해안을 침공하려하였지만 태국의 부실한 보급으로 몇 개월 뒤 후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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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은 베트남 남부와 서부의 방패로 캄보디아를 사용하기 어렵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보다 체계적인 관리 하에 캄보디아를 묶어두려고 하였다. 캄보디아에 다시 돌아온 왕은 건강이 약해져 1835년 갑자기 죽게 된다. 총독은 아들이 없던 ‘찬’ 왕의 둘째 딸을 여왕으로 둔다. 첫째 딸은 친태국 성향이 있었기 때문에 제외되었다.

베트남은 캄보디아를 베트남의 영토로 편입시키려 했다. 베트남인들을 캄보디아로 이주시키고, 주요 관리를 베트남인으로 교체하고, 교사를 보내는 등 전반적으로 개혁을 하려하였다. 그러나 캄보디아의 문화와 관습이 베트남과 확연히 달랐고, 캄보디아의 관리들도 비협조적이었기 때문에 결국 실패하고 말았다. 1840년대에 이르러 베트남은 캄보디아의 여왕을 비협조적이라는 명목 하에 왕의 자리에서 강등하고 구금시켰다. 왕의 강제 퇴임은 캄보디아 국민들을 분노하게 만들었고 대규모의 반동이 태국의 조정 아래 일어났다. 1841년 초 태국은 캄보디아를 침공하였고 그 후 5년 동안 캄보디아는 태국과 베트남의 전쟁터가 되었다. / 글 : 박근태(왕립프놈펜대학 크메르어문학과 4학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