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순칼럼] 옷 사치

기사입력 : 2012년 05월 29일

60년대 우리네 자랄 때만 해도 물자가 귀해 너나없이 궁핍하게 살았다. 전쟁 후 아들을 바라는 집안으로 시집 온 어머니는 딸만 내리 넷을 낳으셨다. 넷째로 태어나면서 행여나 하는 기대를 저버리고 역시나 뭐 하나를 달지 못하고 나온 나를, 동지섣달 냉골 윗목으로 밀쳐놓고 며칠 동안 젖을 물리지 않으셨다고 한다. 고만고만하게 자랄 때는 내 이름조차 깜박하기 일쑤여서 ‘숙자미자말자, 꼬마야(어릴 적 별명)’ 낳은 순서대로 이름을 주어섬기셨다. 박봉에 여럿을 기르다보니 옷도 내리내리 물려 입히셨다. 검정 물을 들인 군복으로 큰 여식의 교복을 지어줄 정도였으니 말해 뭐하리.
  
유년기 옷 주림에 대한 보상인지, 살피듬이 없는 탓에 지금은 여기저기서 옷 선물을 받곤 한다. 나이가 들어도 여자의 정체성은 가장 아름다운 시절에 머무는 법, 무심코 샀다가 상상과 현실의 괴리로 낭패 본 옷을 챙겨 주는 지인들 덕분이다.(얄밉죠? 하하..) 세 언니들은 ‘명품인데 아깝다. 막내나 주자’ 충동구매하고는 숫제 나에게 버리기까지 한다.(인간성하고는) 바야흐로 세계적으로 ‘옷사치’하면 한국을 떠올릴 정도가 된 것이다.
 
건축현장을 어슬렁거리다보면 인부들이 벗어던지고 간 옷가지가 심심찮게 눈에 띈다. 특이하게도 투명인간이라도 담긴 듯 사람의 형상을 유지하고 있는 옷도 있다. “두 개의 바위틈을 지나 청춘을 찾는 뱀과 같이” 어느 시구의 뱀의 허물처럼. 한번은 호기심이 동해 캄보디아 직원에게 물어보았다. ‘막’자로 시작되는 직업 중 하나인 막노동판에는 생활 터전조차 없어 한뎃잠을 자는 부류도 끼어있게 마련이다. 어찌어찌 구해 입은 옷 한 벌로 노숙생활을 하다가, 땀과 오물로 차츰 천이 빳빳해져 행동거지가 거북해지자 벗어 버렸을 것이라고 했다. 패션 차원의 의상이 아니라 치부를 가리는 최소한의 인격이었던 셈이다.
  
지금도 프놈펜 외곽에서는 알몸뚱이의 어린 것들을 쉽게 볼 수 있다. 소낙비가 내리면 흙먼지가 피어오르는 신작로를 향해 천둥벌거숭이로 내닫는 모습은 내 유년기의 그것과 별반 다르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회사직원들은 초창기와 달리 입성도 좋아지고 대부분 휴대폰과 오토바이를 소유하게 되었다. 콘크리트로 된 집만 장만하면 더 이상 바랄 게 없다는 친구도 있다. ‘더 이상 바랄 게 없다’는 말을 들으면 “욕망의 반대말은 죽음이다.”는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의 한 대사가 떠오른다. 말 타면 경마 잡히고 싶어 하는 인간의 욕망에 과연 브레이크를 잡을 수 있을까. 죽음이 그것을 삼키기 전에.
 
 캄보디아에 텔레비전이 보급된 이후, 연예인 패션을 따라하느라 옷가게도 늘고 디자인도 다양해졌다고 한다. 어쨌거나 캄보디아도 이제 막 자본주의 대중소비의 시위가 당겨진 듯하다. /나순·건축사
 
 


 

*뉴스브리핑 캄보디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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