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펌프아재의 펌프이야기] 어쩌다 보니 펌프카드를 유통하게 된 건에 관하여

기사입력 : 2026년 01월 07일

펌프아이콘_칼라

내가 2018년 6월 펌프에 복귀할 때만 하더라도, 시스템이 어떻게 바뀌었는지 전혀 알지 못했다. 하지만 다시 펌프에 복귀해서 예전에 못 깨던 곡을 깨는 재미에 푹 빠졌고, 어느 시점부터는 정말 깨고 싶은 노래가 생겨 더 열심히 하게 되었다. 그러다 보니 전혀 기대하지 않았던 다이어트 효과까지 보며 건강을 되찾게 되었고, 점점 더 펌프의 세계에 빠져들었다.

그런데 소위 ‘고인물’들과 친분이 쌓이고 같이 펌프를 하면서, 그들에게서 유달리 특별한 점을 발견했다. 돈을 넣고 바로 게임을 시작하는 것이 아니라, 펌프 기체에 어떤 카드를 태그한 후에야 게임을 시작하는 것이었다. 왜 그런가 유심히 살펴보니, 카드를 스캔해야만 할 수 있는 곡이 있기도 하고, 내가 지금까지 몇 번 게임을 했는지, 특정 노래를 깼는지 못 깼는지 등의 플레이 데이터가 누적되는 시스템이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지금은 그때보다 시스템이 훨씬 더 발전했다.)

그때는 ‘프라임 2’라는 시리즈가 아케이드에서 구동되던 시절이었다. 이때까지만 해도 펌프 카드(정식 명칭은 AM.PASS 카드이다)는 있으면 좋고, 없으면 없는 대로 해도 크게 상관없는 물건이라, 어떤 플레이어들은 나처럼 카드가 없어도 큰 불편함을 느끼지 못했다. 그런데 2019년, 펌프잇업 20주년을 기념하는 ‘더블엑스(XX)’라는 새 시리즈가 출시되었고, 이때부터 내 펌프 인생이 송두리째 바뀌게 되었다.

20주년을 기념하여 나온 XX는 정말 많은 것이 바뀌었다. 포인트를 모아서 잠겨있는 곡을 해금하는 것은 기존에도 있던 시스템이었지만, 가장 큰 변화는 ‘칭호 시스템’이었다. 그 전까지는 ‘나 몇 레벨 곡 깨봤어’ 정도가 실력을 보여주는 전부였다면, 칭호 시스템이 생긴 이후에는 칭호가 모든 것을 말해줬다. 어떤 칭호들은 특정 레벨의 곡을 몇 곡 이상 ‘Stage-Pass’ 했음을 알려주기에, 그 사람의 칭호만 봐도 ‘아, 이 사람은 몇 레벨을 할 줄 아는 사람이구나’를 보다 직관적으로 알 수 있게 되었다.

이때부터 고인물 유저들의 카드에 대한 수요가 본격적으로 생겨나기 시작했다. 허나 아쉽게도, 캄보디아 아케이드들은 카드를 수입할 생각이 전혀 없었다. 카드가 얼마나 팔릴지도 확실하지 않은데, 덜컥 구입했다가 팔리지 않아서 재고로 남으면 그것대로 골치 아픈 일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연찮게 XX가 출시된 지 얼마 안 된 시점에 내가 한국에 방문할 기회가 생겼다. 같이 게임하는 고인물들에게 줄 선물이 뭐가 있을까 하다가 퍼뜩 펌프 카드 생각이 나서, 내 것을 포함한 카드 7장을 캄보디아에 가지고 들어왔다. 이것이 바로 캄보디아에 처음 들어온 펌프 카드였다. 날짜를 다시 보니 2019년 1월 말이었다.

펨즈님과 둘기님의 싸인 카드▲ 특별한 사인이 카드를 더욱 특별하게 만든다. 세계 챔피언이신 FEFEMZ님과 채보제작자인 DULKI님의 사인이 담긴 카드. 이 카드들을 받은 유저들은 모두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나는 당연히 이걸 돈 받고 팔 생각도 없었고, 그저 같이 하는 친구들에게 나눠줄 생각으로 가져온 거라, 비상용으로 두어 장 더 챙겨온 게 전부였다. 아무튼 그때 나와 교류하던 고인물들에게 카드를 한 장씩 선물했고, 그때부터 아케이드가 나를 주시하기 시작했다.

매일 와서 ‘카드 언제 들어오냐’고 닦달하던 고객들이 갑자기 잠잠해진 것을 파악한 아케이드 측에서 무슨 일이 생겼는지 확인하려 했던 것이다. 여느 날과 다름없이 아케이드에서 만난 친구에게 펌프 카드를 건네고 온라인 등록 절차를 도와주고 있었는데, 아케이드 매니저가 다가와 인사하더니 ‘아, 그게 그 카드였어요?’라고 물었다. 그리고는 내게 자초지종을 설명해 주었다. 그때서야 나는 고인물들이 매일같이 아케이드에 카드를 입고해 달라고 컴플레인을 걸었던 사실을 알게 되었다.

앞서 말했듯, 나는 선물로 카드를 사 온 것이었다. 그런데 개중에는 무책임하게 카드를 잃어버리고는 뻔뻔하게 ‘나 카드 잃어버렸어, 한 장 더 줘’ 하는 녀석들이 있었다. 그래서 그때부터 책임감을 가지라는 의미로 ‘5달러’를 받기 시작했더니, 기적같이 카드를 잃어버렸다며 새로 달라고 하는 사람이 없어졌다. 나름의 금융치료였다.

정말 감사하게도, 2019년에 펌프를 시작하는 인원이 많이 늘어나게 되었고(기회가 되면 후술하겠다), 당연히 카드에 대한 수요도 꽤 늘어났다. 그래서 나는 한국에 들어갔다 올 때마다, 혹은 지인이 캄보디아에 입국하실 때마다 카드를 한국에서 들여왔다. 아케이드 측에서는 여전히 직접 카드를 수입할 생각이 전혀 없었기에, 내가 아케이드 내에서 펌프 카드를 거래하는 것을 전혀 간섭하지 않았다.

심지어는 어떻게 알았는지 페이스북 메신저로 생판 처음 보는 사람이 내게 말을 걸면, 십중팔구는 펌프 카드 구매를 위해 보낸 DM이었다. 그렇게 알음알음 카드를 한 장 한 장 판매하고 증정하다 보니, 6년 동안 약 300장이 넘게 유통한 것 같다. 그리고 안다미로에서 펌프 대회 후원을 위해 보내주신 카드들(당연히 이 카드들은 모두 무료로 증정하였다)까지 합산하면 약 500장 정도를 캄보디아에 유통한 셈이다.

어쩌다 보니 펌프 카드 한 장 덕분에 내게 역할이 부여되었고, 펌프 카드가 필요하면 지금도 사람들이 내게 연락을 한다. 그 덕분에, 외국인이라 자칫 외면받을 수 있는 상황에서도 커뮤니티 밖으로 밀려나지 않고 잘 정착할 수 있게 된 것은 몹시 감사한 일이다.

이 글을 쓰는 시점에도 새로운 디자인의 한정판 카드들이 발매되었다. 급히 구매하여 한국 본가로 배송을 시켜 놓았다. 최대한 빨리 받기 위해 항공편으로 카드들을 받으려고 한다. 이 카드들을 받고 기뻐할 내 펌프 친구들의 얼굴이 눈에 선하다. 오늘도 카드를 사는 돈은 하나도 아깝지 않다. 펌프 카드를 사길 정말 잘했다.

글 이재호
사단법인 조이풀에듀앤호프 캄보디아 지부장
CPF Series(Cambodia Pump it Up Festival) Organiz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