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떠날 때가 되어서야 선명해진 나의 ‘캄보디아 일상’

기사입력 : 2026년 03월 23일

한국으로 돌아갈 날이 코앞으로 다가왔다. 어제까지만 해도 특별할 것 하나 없던 뻔한 하루가, 당연하게 여겨졌던 평범한 일상들이 이별을 앞둔 지금에야 몹시 아쉬워진다. 떠날 때가 되어서야 비로소 선명하게 다가온 것이다. 그 소박했던 하루하루가 내 삶에 얼마나 큰 여유였고 눈부신 행복이었는지.

누군가 캄보디아에 대해 묻는다면 열에 아홉은 ‘앙코르와트’ 같은 명소를 먼저 떠올리겠지만 훗날 내가 짙게 그리워할 것은 그런 거창한 명소가 아니다. 내 기억 속 캄보디아는 그저 소박하고 다정한 일상의 조각들로 채워져 있다.

가장 먼저 떠오르는 조각은 사람들의 온기다. 프놈펜이라는 낯선 도시에서 바짝 굳어있던 이방인의 마음을 무장해제 시킨 건 다름 아닌 캄보디아 사람들의 다정한 미소였다. 길을 걷다 우연히 눈이 마주칠 때면 그들은 내가 그저 한국인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먼저 다가와 주었다. “안녕하세요~” 서툴지만 진심이 담긴 그 한 마디, 그리고 눈가에 번지던 순수한 미소가 타지에서 웅크리고 있던 내 마음에 얼마나 깊은 위안을 주었는지 아마 그들은 끝내 모를 것이다.

길 위의 낯선 이들뿐만 아니라, 나의 진짜 일상을 채워준 동네 생활 역시 잊을 수 없다. 도시임에도 삭막함 대신 정겨움이 살아있는 프놈펜에는 복잡한 환승이나 걷는 수고 없이 집 앞에서 목적지까지 곧장 데려다주는 ‘툭툭’의 압도적인 편리함이 있다. 툭툭을 타고 5분이면 닿는 단골 카페. 우리는 언제든 “지금 단골 카페로 나와!”라는 당일 번개로 모여 슬리퍼를 끌고 나가 시시콜콜한 수다를 떨었다. 하지만 그 시간은 단순한 수다 그 이상이었다. 타지 생활이 버거워 마음이 무너져 내리던 어느 날, 가만히 내 이야기를 들어주던 사람들이 그곳에 있었다. 조건 없이 나를 응원해 주던 소중한 인연들이 건네준 다정한 위로가 없었던 라면 나는 이 낯선 도시에서 그토록 평온하게 웃을 수 없었을 것이다. 그 깊은 관계가 주는 여유 덕분에 나는 매일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싶어졌다.

사람들과 나누었던 그 깊고 진한 정은 캄폿에서 처음 맛보았던 두리안을 꼭 빼닮아 있었다. 캄보디아 최고의 두리안 산지인 그곳에서 두리안을 마주했을 때 낯설고 강렬한 냄새에 흠칫 망설여졌다. 하지만 입에 넣는 순간 퍼지는 그 녹진하고 달콤한 맛은 한 번 빠지면 결코 헤어 나올 수 없는 묘한 매력이었다. 낯설게 다가왔다 이내 내 삶에 깊게 스며든 캄보디아의 숱한 매력들처럼 말이다.

이처럼 프놈펜이 다정하고 든든한 일상의 무대였다면, 시엠립은 캄보디아 생활 중 만난 가장 낭만적인 휴식처였다. 프놈펜과는 사뭇 다른 느릿하고 평화로운 공기, 천년 유적지가 뿜어내는 신비로움. 시엠립에서는 시간마저 천천히 흐르는 듯했고 그곳만이 가진 특별하고 몽환적인 분위기는 지친 나의 마음에 완벽한 쉼표를 찍어주었다.

하지만 캄보디아 생활을 통틀어 내 마음에 가장 선명하게 남은 단 하나의 장면을 꼽으라면 단연 넓은 하늘과 붉은 노을이다. 차와 오토바이로 꽉 막힌 퇴근길에서 고개를 들면 언제나 탁 트인 하늘이 붉게 물들고 있었다. 뺨에 닿는 미지근한 바람을 맞으며 바라보던 그 황홀한 노을은 매일같이 나의 하루를 묵묵히 다독여주었다.

이 모든 것들이 모여 내 삶의 가장 여유로운 한 페이지를 장식했다. 막상 마지막이라는 생각이 드니 한 사람이라도 더 만나고 한 장면이라도 더 눈에 담아두고 싶어 마음이 조급해진다. 지난 7년의 세월을 가만히 되짚어보며 나의 캄보디아 생활을 ‘느리지만 꽉 찬 행복’이라고 마음에 꾹꾹 눌러 적어본다.

이제 캄보디아를 떠나 치열한 일상으로 돌아가더라도 이곳에서 느꼈던 부드러운 바람과 눈 마주치면 웃어주던 사람들에게 배운 다정한 미소만큼은 영원히 잊지 않고 간직하고 싶다.
지난 7년, 낯선 땅에서 외롭지 않게 곁을 내어주고 끊임없이 사랑을 보내준 모든 분들께 깊은 감사를 전하며 이 글을 맺는다.
우리 어디에 있든 서로 사랑합시다!/문다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