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우칼럼] 가난한 학생들

기사입력 : 2013년 04월 24일

DSC_0038_0소반나백화점 햄버거 가게에 갔다가 반가운 친구를 만났다. 4년 전에 프놈펜에 처음 왔을 때 나에게 영어를 가르쳐 주던 아가씨였다. 시골에서 올라와 어렵게 대학에 다니고 있었는데 벌써 학교를 졸업하고 어엿한 직장인이 되어 있었다. 처음에는 대번 알아보지 못했다. 자리에 앉아 음식을 먹고 있는데 자꾸 이쪽으로 시선을 주어서 어디서 본 듯한 얼굴이라고 생각하고 있던 참에 불현듯 나를 도와주었던 한 학생이 떠올랐다. 다가가서 말을 건넸더니 그 친구는 이미 내가 온 것을 알고 있었다. 반갑게 인사를 나누고 잠깐 한가한 틈을 이용해서 내 자리에 다가와 몇 마디 대화를 나눴다.

아르바이트 시절까지 합해서 3년째 같은 햄버거 체인점에서 일하고 있고 지금은 대학을 졸업하고 정식 사원 신분이 됐다고 했다. 4년 전에 처음 만났을 때에는 허름한 옷차림에 낡은 가방을 메고 다녀서 한국의 젊은 대학생들과 너무 대비가 돼 측은하게 보이기도 했다. 그러나 시골에서 농사를 짓는 부모가 보내 주는 60$로 한 달 하숙비와 밥값, 교통비를 해결하며 대학을 다닌다는 얘기를 듣고 대견하다는 생각이 들었었다. 그런 어려운 과정을 잘 이기고 어엿한 사회인이 됐다는 것이 남의 일이지만 내 일인 듯 뿌듯했다.

우리 학교에는 매일 수백 명의 캄보디아 학생들이 드나들고 그 중 수십 명은 학교에서 기숙을 하면서 공부를 하고 있는데 옆에서 볼 때 참 어려운 학생들이 많다. 등록금을 제때 못 내는 학생도 있고 더 낼 수가 없어서 미루다가 도중에 그만두는 학생도 꽤 있다. 지방에서 올라와 기숙사에서 생활하는 학생들의 사정은 도시 학생들에 비해 더 어렵다. 한창 왕성한 체력을 유지해야 하는 젊은이들이 식사를 하고 있는 것을 보면 안쓰럽기도 하다. 돼지고기 몇 점이나 멀건 국물 하나를 곁들인 밥으로 한 끼를 해결하고 하루 한 번 이상은 손바닥만한 라면이 한 끼 식사다. 용돈이 없어서 휴일이 돼도 거의 외출을 하지 못한다.

몇몇 학생들은 밖에 나가 아르바이트를 해서 용돈을 벌기도 하지만 극히 일부에 해당한다. 엊그제는 한국분이 시간제 근무 여직원을 뽑는다고 해서 안내문을 붙였더니 순식간에 열두 명이 모여들었다. 한국어를 오래 공부해서 한국어 의사소통이 가능한 학생은 구인 요청이 들어와도 없어서 못 보내는 실정이지만 아직 한국어를 잘 못하는 학생들에게는 아르바이트 자리를 마련해 주는 것도 쉽지 않다. 어려운 학생들을 위해 학교에서 등록금을 감면해 주거나 뜻있는 분들의 도움으로 장학금을 줄 때도 있지만 그 혜택은 극히 제한적이다.

한국은 몇 년 전 부터 대학생에 대한 학자금 장기 융자 제도를 도입했고, 대학생을 위한 주거 공간을 마련해 주는 제도를 시행한다는 소식도 들린다. 학교를 졸업한 다음 벌어서 천천히 갚는 장기 융자 제도는 당장 어려운 학생들에게 매우 반가운 일이다. 캄보디아 같은 나라에 그런 제도가 있다면 오죽 좋겠는가? 그러나 캄보디아의 교육은 전적으로 당사자들에게 맡겨져 있다. 돈이 없으면 재능이 있어도 키울 수가 없다. 권력자나 가진 자들의 자제는 국제 학교에 보내거나 외국 유학을 시키는 것이 대세다. 그러다 보니 권력과 재력과 학력이 극히 일부 계층에 쏠리게 되고 돈이 없는 일반 국민은 무지와 가난을 대물림할 수밖에 없다. / 한강우(한국어 전문학교 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