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번째 창문을 열고] 행복한 감기

기사입력 : 2023년 10월 30일

(2022년 1월 21일 연재 칼럼)

오랜만에 아주 호된 감기를 앓고 있다. 2019년부터 사람간 거리도 두고 손발도 열심히 닦으며 일상은 붕괴되었을지언정 잔병치레 하나는 없어서 좋았는데… 목을 간질이는 가래와 기침한번에 몸이 들썩 들썩 거린다. 불안한 마음에 애먼 코만 자꾸 쑤신다. 한줄이 나와야 마스크를 끼고 출근한다. 코로나가 바꿔놓은 우리의 패턴.

온 집안에서 콜록 콜록 기침 소리가 난다. 좋았던 새벽의 만남도 오늘은 가지 못했다. 한 시간이라도 더 일하려고 링거도 맞았는데 그대로 반나절 침대와 한몸이 되고 말았다. 하교, 퇴근 후 집에 한 사람 한 사람이 돌아오는데 저녁밥을 차려놓질 못했다. 애들은 신났다. 엄마가 아프면 양념통닭 먹는 날이다.

아프다는 것은 몸이 보내는 신호. 쉬어 가라는 경고. 그걸 좀 늦춰보겠다고 멈춰보겠다고 해봐야 할 수 있는 건 없다. 쉬자.. 그래 하루 쉬어가자. 하루 늦추면 되지. 마감 날에 컴퓨터를 꺼버렸다. 내가 할 수 있는게 하나도 없다.

몸이 아프면 마음도 같이 무너졌는데, 일이 산더미 같은데 마음이 편했다. 1면 사진이 머릿속에 맴돌아 한국에 SOS를 쳤다. 눈 내리는 새하얀 그런 사진을 보물상자에서 꺼내주신다. 한 사람도 아니고 두 사람이나. 아… 쉬어도 된다는 거구나. 마음 편히 쉬게 해주시는 구나. 감사하다.

요즘 나 좀 이상하다. 평안하고 또 평안하다. 세상이 줄 수 없는 기쁨이 자꾸만 샘솟는다. 정말이지 살맛이 난다. 상황에 질질 끌려가는 노예 같던 내가 눈 앞의 상황 위의 것을 바라본다. 현실도피가 아니라 진짜 희망을 잡는다. 숨통이 트인다. 할렐루야다!

감기여도 행복하다. 엄마가 조카를 통해 전해주신 생강배즙을 먹으며 마감의 끝자락에서 또 행복을 맛본다. 모두에게 이런 행복이 가득하길 바라며… 감기도 코로나도 그 무엇도 끊어낼 수 없는 사랑을 맛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