킬링필드, 그 처참한 진실

기사입력 : 2013년 03월 1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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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9년 여름. 괌에 기지를 미 공군 B-29 폭격기 수 십대가 하늘을 향해 솟아올랐다. 그들이 목표로 한 곳은 베트남 국경과 인접한 캄보디아의 쁘레이 벵 지역과 스베이 리엥 지역. 그리고 그들은 무차별 폭격을 가했다. 주요 살상무기는 네이탐판, 고엽제(에이전트 오렌지), 클러스터 밤 등등 최악의 살상무기들. 인명 살상용 폭탄부터 치명적인 화학무기까지 거칠 것이 없이 하늘에서 비가 내리듯 쏟아 부었다. 사람이 죽던, 가축이 죽던 아무런 일도 없었던 것처럼 캄보디아는 초토화되어가고 있었다. 1969년부터 1973년까지. 아무런 허락도 없이…

당시 이 계획을 꾸민 사람은 닉슨대통령의 안보 고문이었던 헨리 키신저. 최종 명령을 내린 사람은 닉슨 대통령. 그러나 이들은 반드시 거쳐야 하는 미 국회의 승인마저 받지 않고 해치웠다. 폭격과 학살의 명령을… 그런데 왜 이런 무모한 일을 비밀리에 했을까? 이유는 당시 북베트남(베트콩) 이 수송로를 봉쇄당하자 캄보디아 지역을 통과하는 호치민 루트로 전쟁 물자를 날랐기 때문이다. 미군은 당연 이 수송로를 봉쇄하기 위해 무단으로 폭격한 것이고…이 작전에 동원된 폭탄은 53만 9129톤. 2차 세계 대전 시 미국이 일본에 투하한 폭탄의 3배 정도. 그래서 죽어간 캄보디아인들의 수가 무려 60만 명에서 80만 명. 그런데 놀라운 것은 이 참혹한 학살의 주범인 키신저가 노벨평화상을 받았다는 사실이다. 그럼 정의는 어디로 가는가?

진 라코처 라는 허풍쟁이가 Year Zero, cited Pol Pot official이라는 책을 썼다. 그는 1975년부터 1979년까지 집권한 크메르 루주 정권이 200만명을 학살했다고 주장했다. 그런데 이곳저곳에서 200만이라는 숫자의 타당성을 요구하자 그는 스스로 자신의 그 수를 조작한 것이라 공식적으로 해명했다. 그런데 저자가 조작한 숫자라고 해명을 했는데도 크메르 루주가 200만명을 죽였다는 전설은 공식적인 자료가 되어 통용되고 있는 실정이다. 그런데 100만명이든 200만명이든 학살 희생자 수를 따지려면 1969~73년에 미국이 폭격해서 죽인 60만~80만명에 이르는 사망자를 포함해야 한다는 점이다.

캄보디아는 크메르 루주 시기인 1975년에서 1979년에 이르는 기간에 사회적, 제도적, 물리적 인프라를 거의 완전히 파괴당했다. 폴 폿 정권의 과격 집산주의, 민족주의적 고립주의와 적으로 동태 감지된 자들에 대한 끈질긴 숙청, 궁핍, 질병으로 인해 사망자 수는 남자, 여자, 어린이 합쳐 근 1백만에 달했다. 또한 이 기간에 발생한 기아와 질병 사망자는 미국과 유엔을 비롯한 국제기구들의 대 캄보디아 구호사업을 차단해버린 데서 비롯한 일이기도 해서 크메르 루주에게만 책임을 물을 수 없다는 논리가 상당한 설득력을 얻어온 것도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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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 의사, 변호사를 비롯한 대부분의 학자와 전문직 종사자들이 살해당하거나 죽거나 해외로 도피하거나 실종되었다. 역사적, 종교적 고문서들은 파괴되었고, 참 무슬림(Cham Muslims)과 베트남인들을 비롯한 소수민족들은 말할 수 없는 박해를 당했다. 불교사원들도 파괴되거나 보관창고 또는 감옥으로 사용되었다. 비구와 비구니를 비롯해서 ‘상가(sangha)’라 불리는 불교승려계급도 모두 처형당했다. 1970년대에 캄보디아의 6만 5천 승려 가운데 살아남은 자는 5천명이 채 되지 않았다. 생존자들도 대부분 혹독한 노동, 굶주림, 고문을 거쳐야 했다. 처형당한 승려 수는 약 2만 5천명으로 추산된다.

아무튼 결과만 놓고 보면 크메르 루주는 시민을 제대로 돌보지 못했고, 시민들을 살해하기까지 했다. 크메르 루주 킬링필드가 존재했다는 사실만 놓고 보면 이론의 여지가 없다. 그러나 크메르 루주가 시민을 살해했다는 사실만으로 10년 동안 자행된 킬링필드 책임을 모조리 크메르 루주에게 뒤집어씌워도 좋다는 논리가 성립될 수는 없지 않겠는가.

챈들러는 크메르 루주가 처형한 수를 10만명으로, 비커레이는 처형한 수를 15만~30만명 정도에 기아·질병·중노동으로 죽은 이들을 약 75만명으로, 그리고 핀란드 정부 조사보고서는 사형과 질병, 기아로 죽은 이들을 합해 약 100만명으로 각각 밝힌 바 있다. 이런 조사연구를 기준삼아 전문가들 사이에는 크메르 루주 집권기에 죽은 이들 수를 80만~100만명이라 여겨왔다. 여기에 학살 제1기에 해당하는 1969~73년에 아메리카가 폭격으로 죽인 양민 수를 핀란드 정부 조사보고서는 약 60만명으로, 위 다른 연구자들은 40만~80만명 정도로 각각 추산했다. 이렇게 해서 제1기 아메리카 학살과 제2기 크메르 루주 학살을 모두 합해 10년 동안 약 150만~160만명에 이르는 양민들이 살해당했는데, 이게 킬링필드의 전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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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메르 루주 전범을 놓고 1997년부터 국제사회는 학살범을 처단하겠다고 난리를 피우기 시작했다. 그러나 출발부터 미국이 쥐고 흔드는 유엔과 캄보디아 정부 사이에 승강이만 벌였지 6년 가까운 세월과 경비만 흘려 보냈다. 크메르 루주 전범재판을 통해 취약한 정치적 합법성을 국내외로부터 인정받겠다는 캄보디아 훈센 총리의 야심과 킬링필드에 종지부를 찍어 모든 의심으로부터 벗어나겠다는 미국의 속셈이 충돌한 한판이다 보니 처음부터 재판이 잘될 리는 없었다.

특히 미국은 크메르 루주 전범재판 사력을 다해‘1969~73년’을 제외시켰다. 이유는 간단하다. 캄보디아 킬링필드는 1969~73년에 미국이 먼저 시작했기 때문이다. 이걸 편의상 제1기 킬링필드라고 하면, 1975~79년 크메르 루주 집권기에 발생한 학살은 제2기 킬링필드에 해당한다. 캄보디아 양민학살은 이렇게 10년 동안 서로 다른 두 집단이 두 번에 걸쳐 자행했고, 따라서 크메르 루주 집권기만을 범죄대상으로 다루면 킬링필드 역사를 온전히 밝혀낼 수 없거니와 결국 모든 책임을 크메르 루주에게 뒤집어씌우겠다는 미국식 음모를 인정하는 꼴이 되고 만다.

캄보디아 인권연구소 소장인 카씨 네우는 며칠 전 사망한 이엥 사리에게 1996년 정부가 내린 사면과 그에 따른 무장 분쟁 종식이 지닌 중요성을 의미 있게 받아들인다고 말한다. 그는 용서야말로 캄보디아 국민의 이익을 위해 중요할 것이라고 말하며, 가해자들에 대한 희생자들의 일방적인 영적 또는 감정적인 용서가 바람직하다고 보고 있다. 이것이 현재 캄보디아 국민들이 원하는 킬링필드로부터의 치유 방안인 것처럼 보인다.

다른 이들은 불교가 용서를 죄 지은 자의 죄에 대한 인식, 그럼으로써 그들의 행동을 변화시키려는 의도와 결부시킨다는 점에 주목한다. 캄보디아에서는 안굴리말라(Angulimala)의 일화가 널리 이용되어진다.. 아힘사카(Ahimsaka)란 이름을 가진 사내가 있었는데, 이 자는 사람 엄지손가락 천 개로 목걸이를 만들 요량으로 자기가 살해한 희생자에게서 손가락을 잘라내는 것으로 유명한 살인자였다. 안굴리말라는 이제 999개의 손가락을 손에 넣었고, 딱 하나만 더 얻으면 되었다. 마지막 희생자가 될 인물 뒤를 쫓아갔더니 우연찮게도 그의 친모였다. 그때 마침 부처가 지나갔다. “내가 왜 내 어미를 죽인단 말인가, 대신 이 고행승을 죽이면 되지” 이렇게 생각하고는 부처 뒤를 쫓아갔지만 도무지 따라잡을 수가 없었다. 지치고 낙망한 그가 부처를 소리쳐 불렀다. 부처가 대답했다, “나는 벌써 멈췄느니라, 멈춰야할 사람은 바로 너다.” 혼란스러워진 안굴리말라가 멈춰 서서 부처에게 물었다. 그러자 부처는 설명했다, 자신은 세상 모든 악을 멈추게 했고, 이제 안굴리말라가 똑같은 일을 해야 한다고. 자비로운 부처의 설법을 듣고 난 안굴리말라는 칼을 던져버리고 부처에게 자기를 제자로 삼아줄 것을 청했다. 그런 다음 부처의 계율을 따르고 참선하여 지극한 깨달음에 이르렀다. 이리하여 안굴리말라는 무시무시한 살인자에서 자비하고 다정한 승려로 변모했다. 이 일화는 잘못을 저질렀으나 참회한 인간들에게는 용서가 베풀어져야한다는 교훈을 준다.

현재 캄보디아는 킬링필드의 악몽에서 벗어나고자 발버둥을 치고 있다. 일반 국민들도 크메르 루주 전범재판도 심드렁하고 지긋지긋해 하는 분위기다. 위의 가르침에서 용서는 죄인의 자기 죄에 대한 인식, 방향 전환과 긴밀히 연관되어 있다. 죄인의 책임은 전혀 묻지 않고 희생자가 일방적으로 나서서 행하는 용서가 아니라는 것이다. 균형 있는 불교 가르침에서는 용서가 죄의 인정, 책임, 정의와 연관 되어 있다. 다시는 킬링필드와 같은 재앙이 캄보디아에 내리지 않기만을 바라는 국민들이다. / 정지대 뉴스브리핑 캄보디아 발행인

 

3 Comm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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