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은 예술 이야기] 열다섯째 이야기 – 도니제티가 후세에 남긴 영향

기사입력 : 2021년 03월 15일

류기룡 타이틀

도니제티가 후세에 남긴 영향

364993ab4bccd43ed2191a0c6a2cfd8f copy▲ 도니제티 (G. Donizetti)

앞에서 이야기 했던 도니제티가 이탈리아 오페라에 미친 영향은 참으로 대단한 것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의 오페라 ‘사랑의 묘약’은 이탈리아 카노비아나 극장에서 32회에 걸쳐 공연이 되었음에서 볼 수 있다. 하지만 아이러니 하게도 오페라의 본 고장 이탈리아의 예전 공연 환경은 다른 나라에 비해 별반 차이가 없었나 보다.

유명해진 이 작품을 보기 위해 프랑스에서 건너 온 베를리오즈는 작품보다는 공연의 배경을 강하게 비평하기를 “이탈리아 오페라 극장의 관객들은 공연이 진행되는 중에도 잡담을 하거나 도박을 하거나 심지어는 밥을 먹는 경우도 있었다. 하여 오케스트라의 음악이 거의 들리지 않을 정도였다” 라고 악평을 늘어놓기도 하였다. 도니제티가 남긴 최대의 성과라고 한다면 바로 후배 작곡가들에게 깊은 영감으로 줌으로써 이탈리아 오페라의 전성기를 이끌어갈 작곡가 베르디에게 많은 동기를 주었다는 것이다.

베르디가 작곡을 시작할 무렵 도니제티 이전의 유명작곡가로 군림했던 벨리니는 요절하였고 로시니는 더 이상의 작품을 발표하지 않아 은퇴와 마찬가지의 생활을 하고 있었다. 젊은 베르디는 도니제티 작품을 보기 위해 밀라노의 라 스칼라 극장을 여러 차례 찾아올 정도로 선배 작곡가들에 대한 존경심이 깊었다. 또한 그의 이러한 마음은 평생 동안 변하지 않았는데 하루는 도니제티로부터 오페라 리허설을 지켜봐 달라는 부탁을 받기도 하였다 하지만 그는 “도니제티 선생님은 다른 사람의 칭찬을 들을 필요가 없는 최고의 능력을 가지신 분입니다” 라고 말을 할 정도였다.

이 시기에 도니제티는 인생의 가장 끔찍한 일을 당하게 된다. 부인이 난산으로 인해 요절을 하게 되고 아이마저도 함께 죽게 된다. 이 일을 당하기 전에 이미 부모와 두 자녀를 모두 잃은 그로서는 매우 고독한 상황에 빠져 그의 처남에게 자신에게 와서 같이 있어 달라고 요청할 정도였다. 48세의 도니제티는 이런 비통한 마음을 이겨내지 못하고 비엔나에서 고통속에서 살다가 결국은 파리로 거주지를 옮겼다가 그곳에서 정신착란에 빠져버리고 만다. 이후 정신병원에서 16개월을 보낸 도니제티는 몸이 마비되고 의식이 흐려져 결국 파리에 있는 가족들의 품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1848년 4월 이 위대한 작곡가는 고향인 베르가모로 돌아갈 수 있는 허가가 떨어졌지만 타향에서 세상을 등지고 만다.

도니제티는 음악가로 위대한 작품을 남기고 후배들에게 깊은 영감을 주었으며 170여년이 지나도록 그의 작품은 전 세계의 오페라 무대에서 아직까지 연주되고 있다. 심지어 근대 오페라 최고의 작곡가로 일컬어지는 베르디는 그의 회고록에서 이렇게 이야기 하고 있다. “나는 이탈리아 정부로부터 수여 받은 훈장을 반납한다 그것은 나 자신 때문이 아니라 교육부 장관의 실수 때문이다. 그는 롯시니 이후 이탈리아에는 작곡가가 한 명도 없다라고 했지만 그것이 아니다. 우리에게는 위대한 두 명의 작곡가가 있었다 바로 벨리니와 도니제티이다” 라고 언급하였다.

4f527e7c-66a0-4357-96f8-79ab6d7b5f76_original copy▲ 차토목 국립예술극장 (사진 구글)

우리는 역사적으로 한 명의 음악가로 인해 획기적인 변화를 이끌어 내는 경우를 어렵지 않게 볼 수가 있다. 이것은 단지 음악의 영역에 국한되지 않고 미술이나 건축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필자가 어려운 단어들을 활용하여 도니제티의 이야기를 진지하게 써 내려가 이유가 무엇일까? 왜 이런 내용이 두 편에 걸쳐서 연재되는 것일까?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땅 캄보디아는 동남아시아에서 문화강국으로 명성이 높았던 곳이다. 예술 교육에서 뿐만 아니라 공연문화도 다른 나라에 비해 높은 수준을 자랑하던 곳이다. 하지만 지금은 어떤가? 정치적인 이데올로기의 희생양으로 인해 파괴된 이들의 문화와 정신 세계는 자신들을 후진국이라는 나락으로 떨어뜨리고 말았다. 하지만 이들은 새로운 방향을 모색하고 있다. 젊은 세대의 예술가들에 의해 문화예술의 재건을 위한 노력이 시작되고 있다.

이들은 현재 부족한 이론의 정립을 위해 선진국가들의 이론과 시스템을 받아들이고 있으며 전통문화에 대한 보존과 기록을 위해서도 다양한 방법을 모색하고 있다. 지금의 시기가 캄보디아 문화예술계의 중요한 변화 시점이라고 말한다면 필자는 캄보디아에 살고 있는 한국인들과 대한민국 문화예술계 그리고 정부에 권유를 하고자 한다. 본국에서만 K-ART & Culture가 가능한 것이 아니다. 현지의 문화를 존중하고 아름다운 협력을 이끌어 낼 수 있다면 한국의 문화예술은 캄보디아의 도니제티가 될 수 있을 것이며, 베르디와 같은 이 땅의 젊은 아티스트로부터 존경을 받는 선구자가 될 수 있을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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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기룡 교수

경북대, 러시아국립차이코프스키음악원(석·박사)
캄보디아 왕립예술대학 교수
성악가, 합창지휘자, 콘서트 프로듀서
NGO활동가로 동남아, 한국, 유럽에서 활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