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캄보디아 더 알아보기] 제48화 하얀색 악어 깃발과 캄보디아 장례식 문화

기사입력 : 2020년 11월 13일

캄보디아의 장례식 전통도 여느 나라처럼 현대를 살아가는 개개인의 상황과 신념에 따라 다를 것이다. 그렇지만 전체 국민의 95%를 차지한다는 상좌부 불교를 중심으로 이해하되 고대부터 민간에 뿌리내린 힌두교적인 전통까지 복합적으로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이다. 그래서 이들의 장례식 문화에는 죽음과 재생이라는 윤회의 사이클에 순응하며 망자가 순조롭게 다음 생을 살기를 염원하는 태도가 담겨 있다.

수정됨_48-05▲ 장례식을 위해서 오늘날의 하얀색 천으로 만든 악어 깃발(사진)과 500년 전에 악어가죽으로 만든 깃발(그림)의 모습

상을 당한 집에서는 들어오는 길목에 하얀색 악어 깃발을 3일 내지 7일의 장례기간 동안 하늘 높이 세운다. 그리고 직계가족은 고인의 몸을 깨끗하게 하고 옷을 입혀 관에 안치한 뒤에 시신의 주변에 꽃과 망자의 사진 등을 차려 놓는다. 죽은 사람이 처녀면 예쁘게 화장해주고, 노인이거나 남자면 향수를 뿌려준다. 시신의 입술에는 동전을 물려줌으로써 저승 가는 노잣돈으로 쓰도록 한다. 고인의 배우자나 자녀들은 삭발하는 것이 전통이지만, 여자는 흰색 끄러마(스카프)를 두르거나 남자는 흰색 띠를 머리에 매는 것으로 대신할 수 있다고 한다.

하얀색 악어 깃발은 영혼이 깃든 깃발(똥쁘럴렁)이라고 불리는데, 여기에는 몇 가지 이야기가 전한다. 그 중에서 한 가지를 소개하자면, 후기 앙코르시대 앙짠1세(재위: 1476-1566)에게는 끄러뿜 축(Kropom Chhouk)이라는 18세의 공주가 있었다. 그런데 그녀는 똔레삽에서 물놀이 중에 악어에게 잡아먹혔고, 왕은 군대를 동원해서 그 악어를 산 채로 잡아오도록 명령했다. 점쟁이는 악어가 메콩강 깊숙이 몸을 숨겼다고 했지만 결국에는 라따낙끼리주에서 발견되었고, 그 악어는 내장에서 공주의 시신이 수습되자마자 가죽을 벗겨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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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부터 사람들은 장례식 전에 악어가죽을 깃발로 하는 대를 세웠다고 한다. 그리고 악어가죽을 세운 대는 장례식이 끝나고서도 자연스럽게 썩도록 계속 방치했는데 그러면 망자가 어디선가 새롭게 태어난다고 믿었다. 그런데 나중에는 그런 문화 때문에 악어가죽이 상당히 비싸지면서 보통 사람들은 감당할 수 없게 되었다. 그래서 하얀색 천으로 악어 형상을 만들어서 대신함으로써 오늘날까지 이어졌다고 한다.

집안에서 장례기간이 지난 다음날 아침에는 일찍부터 행사 주관자를 비롯하여 승려, 가족들과 주변인들이 하얀색 복장을 하고는 기다란 행렬을 지어서 화장장까지 이동한다. 화장할 때는 망자가 생전에 좋아했던 특별한 물건과 돈, 금, 책, 옷 그리고 영혼이 깃든 깃발도 함께 태운다고 한다. 캄보디아 사람들은 망자가 저승에서도 이 깃발로 훨훨 날아서 자유롭게 다닐 수 있다고 믿는다. 이렇게 화장이 끝난 후에는 모든 재와 뼈 등을 수집해서 사원에 안치하거나 목걸이로 만들거나 집안에 보관하기도 한다.

수정됨_48-03▲ 2019년11월29일, 고인이 되신 노로돔 보파떼위 공주를 위한 7일의 장례기간이 끝나고 화장식을 거행하러 가는 행렬

한편, 2012년10월15일에 중국 베이징에서 서거하신 노로돔 시하누크 전 국왕의 경우에는 장례기간을 1주일간의 애도기간과 함께 100일장으로 지내고 나서 2013년2월4일에 왕궁 옆에 호화롭게 마련된 화장터에서 화장 의식을 거행했었다. 이렇듯이 사회적 신분이나 부유한 정도에 맞게 의식을 거행하기 위해서 준비기간을 오래 잡을 수도 있는 모양이다.

여기서 살면서 바탐방대학교 재직 시절에 한국인 교수진의 가족 분께서 캄보디아에서 유명을 달리하시는 바람에 화장하는 의식을 참여했었다. 대학교 앞 5번 국도부터 공항 근처의 화장터까지 뜨거운 뙤약볕 아래에서 장시간 운구행렬을 따라 걸으면서 침통했던 기억이 난다.

작년 10월에는 캄보디아인 동료 교수진의 부친상이 있은 지 7일째 되던 날에 조의금을 쥐고 껌뽓주의 시골 상갓집까지 간 적이 있다. 초행길에 폭우까지 만나서 여정이 순조롭지 못했던 탓에 도착하자마자 안도하며 마당에 차려진 조문객용 버섯죽을 마구 들이켰던 장면이 참으로 아이러니했다./왕립프놈펜대학교 한국어학과 이영심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