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인터뷰] ‘한국은 반드시 통한다’ 믿음 하나로 동남아를 움직인 홍 회장의 스토리… 태국을 넘어 동남아를 잇는 민간외교관, 민주평통 서부협의회 홍지희 회장

기사입력 : 2026년 03월 23일

1▲ 민주평통 서부협의회 홍지희 회장

어떤 사람의 인생은 직함만 나열해도 하나의 서사가 된다. 통역가, 기업가, 콘텐츠 제작자, 한인사회 리더, 민주평통 동남아서부협의회장. 그러나 홍지희 회장을 설명할 때 이 많은 역할보다 먼저 떠오르는 단어는 따로 있다. 도전, 개척, 자부심이다. 그리고 그 바탕에는 늘 한 가지 믿음이 놓여 있었다. 한국은 제대로 알려질 가치가 있는 나라라는 믿음과 우리의 역사와 문화는 결국 모든 사람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다는 확신이다.

홍 회장이 태국어를 선택한 것부터가 이미 남다른 출발이었다. 영어 통역사를 꿈꾸던 그는 우연한 기회에 희소성이 있는 길, 남들이 잘 가지 않는 길인 태국어에 강력히 끌렸다. 어릴 때부터 외국어 환경에 익숙했고 새로운 길을 두려워하지 않았던 성향이 결국 태국어라는 선택으로 이어졌다. 이후 태국 현지와 한국을 오가며 언어를 몸으로 익혔고 전문 통역사의 길을 닦았다. 당시 태국 관련 고위급 통역을 맡으며 누구보다 빠르게 현장을 경험했고 실력과 감각을 동시에 갖춘 보기 드문 태국 전문가가 되었다.

그러나 그의 인생은 안정된 전문직에 머무르지 않았다. 결정적 전환점은 1994년이었다. 대전엑스포를 계기로 한국을 찾은 태국 VIP들에게 경주로 가는 길 위에서 한국 역사를 직접 설명하게 된 경험은 홍 회장에게 오래 남았다. 한국이 일본 덕분에 발전했다는 왜곡된 인식을 마주한 순간 그는 한국을 제대로 알려야 한다는 사명감을 가지고 마이크를 쥐었다. 단순히 말만 옮기는 통역이 아니라 우리나라를 알리는 소명을 가지고 말이다.

그 결심은 2003년 8월 15일 현실이 됐다. 그는 동시통역사라는 안정적인 기반을 뒤로하고 태국으로 향했고 한태교류센터(KTCC)를 설립했다. 한국과 태국에 동시에 법인을 설립하여 한국 법인은 태국을 바로 알리고, 태국 법인은 한국을 제대로 알리는 구조를 갖췄다. 한국과 태국 사이에 다리를 놓겠다는 뜻이 이름에 그대로 담겼다.

모두가 말렸지만 그는 멈추지 않았다. 실제로 태국에서 한국인에 대한 편견과 차별을 몸소 겪기도 했다. 일본인만 우대하고 한국인을 기피하던 과거 숙소를 구하지 못해 쫓겨나다시피 한 경험은 오히려 더 분명한 목표가 되었다. 태국 국민 70%가 한국을 알 때 까지, 그들이 대한민국을 제대로 알 때까지 이 땅을 떠날 수 없다는 다짐이었다.

이후 홍 회장의 행보는 한 사람의 열정이 어떻게 문화외교가 되는지를 보여준다. 그는 한국 드라마 테이프가 가득 든 가방을 들고 태국 주요 방송국들을 직접 찾아다니며 한국 콘텐츠를 소개했고 풀하우스, 대장금 열풍을 태국 사회에 확산시키는 데 힘을 보탰다. 한복과 음식, 드라마와 예능, 영화와 스타를 연결하며 한국을 낯선 나라가 아닌 매력적인 문화국가로 인식시키는 데 앞장섰다. . 방콕 국제영화제에 배우 손예진을 초청하고 코리아페스티벌, 한태우호문화축제, KPOP,커버댄스 페스티벌, 소프트파워축제 등 각종 문화행사와 축제를 기획하며 한국에 대한 관심을 대중적 호감으로 바꾸어냈다.

3▲ 한태교류센터(KTCC)가 공동 제작 및 협력한 영화 ‘헬로 스트레인저’. K-콘텐츠를 현지화한 대표 사례로, 태국 내 한류 확산과 한국에 대한 호감도를 끌어올린 상징적인 프로젝트다.

그 정점 중 하나가 2010년 개봉한 화제의 태국 영화‘헬로 스트레인저’였다. 모두가 반대하던 한-태 공동 프로젝트에 그는 가능성을 봤다. 한국을 배경으로 한 이 영화는 한국의 아름다운 풍경과 음식, 정서와 매력을 자연스럽게 담아내며 태국 관객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결과는 놀라웠다. 영화는 대흥행에 성공해 최단기 최다 관객을 동원하며 태국 영화계 역사를 바꿨고 주요 18개국에 상영되며 한국을 대대적으로 소개해 한국 관광과 한국 문화에 대한 관심도 크게 높아졌다.

홍 회장은 이 작품을 두고 “처음부터 돈이 아니라 오로지 한국을 알리기 위해 시작한 일”이라고 말한다. 더 많은 사람에게 한국을 우수성을 알리는데 제작자이자 공동 프로듀서로서 빛을 발하는 순간이었다.

그의 활동은 문화 분야에만 머물지 않는다. 한국에 대한 인식이 높아질수록 한국 제품과 기술, 브랜드의 위상도 함께 올라간다는 점을 누구보다 먼저 체감한 그는 문화교류를 경제와 산업, 교육으로 확장해 왔다. 이런 점에서 홍 회장은 단순한 문화기획자가 아니라 한-태 관계를 입체적으로 읽고 움직여 온 동남아 전문가라 할 만하다.

오늘의 홍지희 회장을 만드는 또 하나의 축은 사람에 대한 책임감이다. 그는 코윈을 처음 태국에 소개한 초대 회장이며 한인회, 상공회의소, 민주평통 등 다양한 공적 영역에서 역할을 맡아왔고 지금은 민주평통 동남아서부협의회장으로서 공공외교의 외연을 넓히고 있다. 그가 강조하는 것은 늘 같다. 존중, 연합, 그리고 비전이다. 차세대에게도 그는 비전 없는 삶은 흔들릴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그래서 그의 강연은 단순한 성공담이 아니라, 왜 자기 삶의 방향을 스스로 세워야 하는지에 대한 호소에 가깝다.

홍지희 회장의 삶을 움직여온 것은 거창한 수식보다도 분명한 방향감각이었다. 남들이 가지 않는 길을 선택했고 필요하다고 믿는 일이라면 주저하지 않고 부딪혀 왔다. 그 과정에서 그는 통역사를 넘어 기업가가 되었고 콘텐츠 제작자로서 한국을 알렸으며 이제는 차세대에게 비전과 용기를 전하는 멘토의 자리에도 서 있다. 한 사람의 오랜 도전이 한국과 태국, 더 나아가 동남아를 잇는 여러 변화로 이어졌다는 점에서 그의 걸음은 지금도 진행형이라 할 수 있다./정인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