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우칼럼] 캄보디아 농업의 현실

기사입력 : 2013년 02월 22일

rice-field

3번 국도나 4번 국도를 따라 내려가다 보면 광활한 들판이 펼쳐진다. 지금은 건기 절정기라서 대부분의 논들은 바짝 말라 있고 일부는 거북등처럼 쩍쩍 갈라져 있다. 들판 곳곳에는 풀을 찾는 소들이 떼를 지어 이리저리 배회하지만 들판이 잡초조차 자라지 못할 정도로 말라 버려서 허기진 배를 채우기 어렵다. 모가지를 따서 추수를 하고 남은 마른 볏짚을 씹는 게 고작이다. 그래서 그런지 캄보디아의 소들은 불쌍한 생각이 들 정도로 한결같이 깡말라 있다. 근처에 산도 없고 나무나 풀도 빈약하다 보니 농작물에 필수적인 유기질 성분이 절대적으로 부족하고 계속된 경작으로 대부분의 토양은 산성화 되어 있다. 벼 수확량이 한국의 삼분지 일 수준인 헥타당 2톤이 채 안 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우기에 물에 잠기는 지역은 그나마 나은 편이다. 유기질이 풍부한 물에 몇 달 동안 잠겨 있던 관계로 물이 빠지고 나면 비옥한 농토로 바뀌어 특별히 거름을 하지 않아도 벼가 잘 자란다. 똔레삽 호수나 메콩강 주변의 땅들이 이에 해당하는데 이런 지역은 다른 지역에 비해 단위 면적당 벼 생산량이 훨씬 높다. 그렇지만 농토가 물에 잠겨 있는 기간이 길어서 벼 2모작을 할 수 있는 곳은 그리 많지 않다. 캄보디아에서는 비료나 농약을 사용해서 농사를 짓는 경우가 매우 적다. 토양이 비옥하지 않은 곳도 마찬가지다. 비료나 농약을 쓰면 당연히 소출량이 늘어나지만 영농비가 많이 들어가기 때문에 대부분은 그렇게 농사를 짓지 못하는 것이다. 최근 대규모 영농을 하는 곳에서부터 점차 비료나 농약 사용량이 늘어나고 있는 추세다.

프놈펜에서 소비되는 야채의 50% 이상은 인근의 베트남이나 태국에서 들여온다고 한다. 시장에서 판매되는 배추나 무, 당근, 양파, 감자 등은 물론이고 과일 가게에 즐비한 열대 과일의 상당 부분도 외국에서 들여온 것들이다. 기후 조건이 그런 나라들과 비슷하고 경작지가 풍부한데 왜 그럴까? 취약한 영농 조건과 낙후된 농업 기술, 허술한 유통 체계 등이 복합된 결과로 보인다. 아직 개발이 안 된 농지가 전국에 산재해 있고 전근대적인 농법에 머물러 있는 것이 캄보디아 농업의 현주소다. 애써 농사를 지어도 농산물의 수집과 저장, 운송, 판매 등의 유통 체계가 미비해서 수익을 내기가 어렵다. 농산물 수출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쌀만 하더라도 세계 쌀 수출국 1,2위를 다투는 베트남이나 태국에 헐값으로 팔려 나간다. 전국민의 80% 이상이 농촌에 거주하고 있는 캄보디아가 안고 있는 숙제다.

며칠 전, 지인들과 함께 몇 군데의 농지와 농장을 둘러보고 왔다. 프놈펜에서 100km 이내만 하더라도 많은 유휴 농지가 곳곳에 산재해 있었다. 잡풀과 관목만 걷어 내면 바로 경작지로 쓸 수 있는 평지가 끝없이 펼쳐져 있었다. 일부 지역은 개발되어 망고와 같은 과실수나 경제성 있는 수목들이 자라고 있었다. 가장 놀라운 것은 불과 3,4년 전만 하더라도 황무지 같던 유휴지가 거대한 사탕수수밭으로 변한 것이었다. 그 면적이 무려 4,000여 헥타, 한 달 반 전에 파종하는 것을 보았는데 사탕수수 잎이 벌써 50cm 이상으로 자라서 넘실대고 있었다. 막대한 자본과 현대적 농법이 투여되는 기업농의 표본이라 할 수 있는데, 이는 특수 작물뿐만 아니라 벼농사 분야에서도 변화가 감지된다. 일부 국가나 기업, 개인들이 수천 헥타에서 수십만 헥타의 토지를 확보해서 대규모 영농을 서두르고 있다. 그 안에서 대대로 농사를 짓던 소규모의 자작농이나 소작농들이 하루아침에 농지를 잃고 주변으로 내몰리면서 강자와 약자 간에 심한 갈등을 빚고 있다는 소식도 들린다. 농업이 부흥하면 농민이 잘 살아야 하는데 과연 그렇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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