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캄보디아 한인 선교사 이야기] 제 9 화 1996년, 캄보디아한인선교사회 조직과 그 이후

기사입력 : 2020년 08월 24일

1995년 12월, 그동안 친교 형식으로 모이던 7가정의 한인 선교사들은 한인선교사회 발족의 필요성을 공감하였으며, 1996년 2월 17일, 이성민 선교사 댁에서 11명이 참석하여 발족 총회를 갖고, 초대회장 서병도 선교사를 비롯한 임원진을 구성하였다. 이어 3월 23일 모임에서는 필리핀장로회선교사회 회칙을 참조하여 만들어진 ‘주캄보디아 한국선교사협의회’ 회칙을 받기로 하였으나 형제회에 대한 이단성이 제기되면서, 여러 의견으로 어려움을 겪었다. 4월, 껀달주에서 열린 제1회 한인선교사협의회 수련회에 7가정의 한인 선교사들이 참석하였으며, HASIDISM: 서병도 선교사, 건강 관리: 오형석 선교사, 복음과 개발: 이성민 선교사의 특강과 함께 체육대회를 가졌다.

806-1▲ 한인선교사회 첫 수련회(1996년 4월)

한인 교민이 늘어나면서 여러 선교사가 교단별로 한인 교회를 설립하기보다는 하나의 한인 교회를 설립하여 연합으로 운영하고, 한인 선교사들은 캄보디아인 선교에 집중하자는 제안이 있었으나 6월, 정기모임에서는 회원 자격에 대한 의견이 대립되었고, 한인 연합교회 건은 안건으로 다루지 못한 채, 일부 회원들이 탈퇴하였다. 그해 12월 정기회의 시, 2대회장 김한주 선교사를 비롯한 새로운 임원진을 구성하였다. 이때 발전위원회(위원: 오형석, 김한주, 이성민)를 두어 탈퇴한 회원들의 동참을 권면하였다.

한국목회지원센터(KMSA)는 예수자매회(예장통합)를 통해 1995년 말, 정미경 선교사를 보내 프놈펜기술학교(PPTS: Phnom Penh Technical School) 설립 준비를 하였으며, 1996년 1월에 개교하였는데, 이로 인해 캄보디아 청소년들에게 컴퓨터, 미용, 한국어, 영어, 음악 교육과 함께 취업 기회를 제공하였고, 한아선교봉사회와 함께 WCC 사역으로 수재민을 돕기도 하였다. 가나안기술학교는 1996년 6월, 교육부 허가를 받아 8월에 개교하여 재봉, 컴퓨터, 한국어, 영어를 교육하였다. 바울선교회의 김철환 선교사는 1996년, 장애인을 위한 므비보셋센터를 깜뽕스뻐으주에서 시작하였다.

1996년, 차연미 선교사는 예수전도단(YWAM) 파송으로 캄보디아에 입국하여 사역을 시작하였으며, 김정영 선교사는 국제 OM 파송으로, 이병관/공은혜 선교사는 어린이전도협회(CEF) 파송으로 캄보디아에 입국하여 사역을 시작하였다. 1996년부터 3년간, 프놈펜기술학교에 부임했던 서경기 선교사는 기술학교 사역을 통해 캄보디아 청소년들을 교육하여 바른 직업을 찾아주는데 기여한 것 외에도 한인 선교사들을 위한 정보 수집과 나눔을 함으로 많은 한인 선교사들에게 유익이 되었다.

1997년에 접어들면서 여러 한인 선교사들이 입국하였고, 이미 입국한 한인 선교사들은 크고 작은 사역을 시작하였다. 3월 30일, 김인순 선교사는 프놈펜제일교회를 설립하였으며, 송진섭 선교사는 4월에 감리교신학교를 개교하였다. 8월, 송진섭 선교사는 한국, 프랑스, 미국과 싱가포르 4개국 감리교회 산하 7개의 지 교회로 ‘캄보디아 감리교회(MCC: Methodist Church in Cambodia)’ 인가를 종교부로부터 받았는데, 이는 향후 교단 연합사역의 모델이 되었다.

806-2▲한인선교사회 첫 회보(1997년 12월)

그 앞인 4월 3일, 한인선교사회는 임시총회를 열어 ‘주캄보디아 한인선교사회’ 회칙을 검토 후, 수정된 회칙에 의해 제비뽑기로 김한주 선교사를 회장으로 재선출하였다. 5월에는 러시아 대사관 내에서 한인 선교사 체육대회를 가짐으로 다시 화합과 협력의 장을 마련하였다. 7월에는 캄보디아 내전이 발발하였는데, 이로 인해 한인선교사회는 그달 정기모임을 갖지 못했다./장완익 선교사 (KMAC 역사연구분과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