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순 칼럼] 개미 왕국

기사입력 : 2017년 04월 11일

마르케스의 대표작 <백년 동안의 고독>은 한 집안이 등장했다가 신기루처럼 사라진 백 년 동안의 역사를 그린 소설이다. 라틴아메리카가 배경인 작품으로 남미의 열대기후와 특유의 기질 탓인지 캄보디아 풍토와 겹치는 부분이 많다. 서구 물질문명에 밀려 공동체의 유대는 사라지고 소유욕이 지배하는 자폐적인 고독이 대대로 이어지는 가운데, 유일하게 진실한 사랑의 결실로 태어난 아이가 개미 밥이 되면서 가문은 종말을 고한다. 돼지꼬리를 달고 태어난 간난아이의 시체가 거대한 개미떼에 휩쓸려 마당 한구석으로 끌려가는 마술적인 대목이 개미왕국 캄보디아에 사노라니 픽션이 아니라 논픽션처럼 다가온다.

인간이 지구에 출현한 것은 겨우 3백만 년 전인데 비해, 개미는 1억 년 전부터 나타나기 시작했다. 사막에서 북극에 이르기까지 1경(京)마리의 개미가 분포되어 있고 그 몸무게를 모두 합하면 전 인류의 몸무게 보다 무겁다. 열대나라 캄보디아에 살면서 개미에게 시달려 본 적이 없는 사람은 드물 터이다. 지구행성 전체 개미 중 4분의 3이 열대지방에서 서식하기 때문이다. 단내 기척만 있으면 영락없이 몰려드는 개미떼에 여기저기 음식을 흘리고 다니는 인사는 어느 조직에서나 ‘용서받지 못할 자’로 낙인찍히게 마련이다. 우리 여성동포도 꿀팩이 아무리 피부에 좋다지만 캄보디아에서만큼은 고려해봐야 할 일이다. 자칫 방심하여 깜빡 잠이라도 들었다가는 꿀팩이 개미팩 되는 건 불 보듯 빤하니 말이다.

개미사회는 신분질서를 통해 유지된다. 일개미, 생식개미, 병정개미, 신분에 따라 몸을 달리해 태어나는 유전적 신분사회다. 성적인 충동으로 한눈파는 일이 없도록 일개미는 생식능력 자체가 없는 구조로 태어나지만, 생식개미인 암수개미는 오로지 사랑을 하기 위한 특별한 신체를 하고 태어난다. 병정개미는 절단기 구실을 하는 커다란 위턱을 지닌 채 태어나고. 여왕개미는 머리, 일개미는 팔 다리, 병정개미는 주먹과 발…, 이렇게 역할 분담을 해서 한 생명체처럼 움직이는 거대한 개미군단에 걸려들면 사자며, 코뿔소며, 코끼리까지 살아남지 못한다. 이쯤 되면 세상에서 가장 강한 동물로 개미를 꼽아야하지 않을까.

개미는 페로몬이라는 독특한 호르몬으로 교신한다. 생존이나 감정에 대한 정보를 자기 몸을 거쳐 다른 개미의 몸으로 퍼트려 한 마리의 기분을 수백만의 개미집단이 동시에 느낀다. 각각의 개미는 별개 생명체지만 페로몬을 통해 전체가 한 개체처럼 행동하는 개미집단을 하나의 초유기체(super-organism)적 존재로 분류하기도 한다. 열대지방에선 어떤 생명체가 됐든 일단 죽어 나자빠지면 득달같이 나타나는 게 개미군단이다. 사람이라고 다르겠는가. 그러고 보면 우리는 이미 캄보디아 영역의 개미초유기체에게 산 채로 먹혀 페로몬으로 촘촘히 얽힌 거대한 개미 몸 안에서 싱싱한 음식물로 자진사육 되고 있는지도 모른다. 더위 탓일까, 비약이 조금 심한 것 같기도 하고. /나 순 (건축사, 메종루비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