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순 칼럼] 인간 동물원

기사입력 : 2017년 03월 01일

데스먼드 모리스는 저서 <인간 동물원>에서 가족계획의 한 방편인 피임의 문제점을 다음과 같이 지적했다. 위험한 스포츠를 즐기는 사회에서는 모험심이 강한 사람이 사망할 확률이 높은 것과 마찬가지로, 피임을 요구하는 사회에서는 머리 좋은 사람이 태어날 확률이 낮다. 남자와 여자가 만나 치루는 일의 결정적인 순간에 상당한 수준의 지성과 사고력, 자제심을 갖추지 않고서는 피임용품을 침착하게 사용하기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지력보다 원초적 본능이 강한 부류의 임신 확률이 높아짐에 따라 그런 유전적 자질이 느리지만 확실하게 퍼질 것이다. 만물의 영장인 호모 사피엔스의 미래를 위해서 최소한의 주의력만으로도 성공할 수 있는 간편한 피임기구의 발명이 시급하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인터넷 신문을 서핑하다 보니 피임(避姙)뿐만 아니라 회임(懷姙) 시스템의 문제 또한 심각한 듯하다. 영국 일간지 데일리메일은 최근 중국 청년이 정자은행에 정자를 제공하는 과정에서 심장마비로 사망한 사건을 두고 중국이 떠들썩하다고 보도했다. 청년은 23살의 전도유망한 의대생으로 일주일에 네 차례에 걸쳐 정자를 유도했다가 비운을 맞았다. 바야흐로 삼신할머니가 점지해주는 아이가 아닌 정자은행에서 정자를 공급받아 생명을 얻는 세상, 맞춤형 인간시대가 성큼 다가선 것이다. 남편이 불임인 여성, 아이를 원하는 독신여성, 동성애 여성커플이 정자은행의 주 고객이다. 노벨상 수상자나 멘사(IQ 160이상 모임), 유명 과학자 등의 ‘재인(才人)’ 정자와, 스포츠맨, 모델, 배우 등의 ‘가인(佳人)’ 정자가 인기라고 한다. 푸른 눈에 금발, 큰 키의 덴마크 정자가 특수를 누리고 있는데, 미국 뉴욕타임즈는 “현대판 바이킹족의 이동”이라 칭했다. 정자 기증자 인구는 제한적인데, 인기 유전자 쪽으로 주문이 몰리는 게 문제다. 같은 아버지의 자식들이 퍼져나가 인종의 획일화뿐만 아니라 근친결혼이 이루어지지 말라는 보장이 없는 것이다. 졸지에 한 남자가 150여명의 생부가 된 기록도 있다고 하니.

나이 들수록 보수적으로 변하는지 오지랖이 넓어서인지, 자연을 거스르는 인공수정의 대중화 조짐에 걱정이 앞선다. 대부분 불임부부와 성소수자에게 혜택이 돌아가겠지만, 철저하게 경제적 동물인 호모 에코노미쿠스로서 신데렐라 신화를 기대할 수 있는 이 시술을 상업화 시키지 않을 리 만무해서다. 아름답고 머리 좋은 여성에게 수재의 정자를 인공 수정하여 이상적인 아기를 만들어 내는 실험이 획기적으로 진행되는 중이라니 더욱 그렇다. 처칠은 말했다. “가족은 어디서부터 시작되는가? 젊은 남자가 젊은 처녀와 연애에 빠지는 데에서부터 시작된다. 그 이상 좋은 길은 아직 발견되지 않았다.” 사랑하는 한 남자와 한 여자의 결합, 우리는 부모와 자녀라는 관계로 자기 정체성을 규정하게 된다. 그 유전적 다양성이야말로 우리 사회의 균형을 이루는 근간이다. 상상해 보라. 거리가 얼간이로 가득한 것만큼이나 똑똑하고 잘생긴 사람으로 가득한 것도 끔찍하지 않겠는가. /나 순 (건축사, 메종루비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