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우칼럼] 무더위 체험

기사입력 : 2016년 08월 31일

8월 중순부터 2주간 한국에서 보냈다. 얼마나 덥다고 그리 엄살(?)을 떨까 하고 들어가 직접 체험을 해 보니 정말 더웠다. 캄보디아보다 더 덥다는 말이 틀린 말이 아님을 실감하고 돌아왔다. 그도 그럴 것이, 내가 사는 동네의 낮 최고 기온이 프놈펜과 비슷하고 밤에도 28도 언저리에서 좀처럼 기온이 떨어질 줄 몰랐다. 아침 10시경부터 튼 에어컨을 잠들기 전에야 끌 수 있었다. 잠든 심야 시간이 돼도 시원해지지 않았다. 열대야 때문에 밤새 선풍기를 돌려야 겨우 잠을 잘 수 있었다. 7월 중순부터 한 달 이상 이런 무더위가 지속됐고 9월초까지 이어질 거라는 일기예보가 있어 무더위와의 씨름은 당분간 떨치지 못할 것 같다. 며칠 한국에 체류하면서 내 생애에 처음 겪는 무더위라는 생각이 들었다.

가뭄도 무척 심했다. 시골집 텃밭에 심은 들깨가 자라기는커녕 쪼그라들고 있었다. 밭고랑 사이사이에 자라는 잡초도 생기를 잃고 있었다. 고구마를 캐려고 호미질을 해 보니 밭두둑을 다 헤집어도 물기는 보이지 않고 마른 흙 속에서 고구마 뿌리가 살을 찌우지 못한 채 손가락 굵기 정도에 머물러 있었다. 콩밭에 물을 뿌리던 동네 할아버지의 푸념 섞인 말 한 마디가 절절하게 다가왔다.

“콩밭에 물을 주기는 내 나이 칠십 평생 처음이구만. 하루만 지나면 다시 뽀송뽀송해져서 이 짓도 못해먹겠어!”

속리산 골짜기를 흐르는 개천가의 주말 오후, 예전 같으면 여름휴가가 끝날 무렵이라 사람 보기가 쉽지 않을 때인데 개천가 도로에 차량들이 줄 지어 서 있고 물이 흐르는 골짜기 골짜기에서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물놀이가 한창이었다. 평소에 흐르던 수량에는 턱없이 부족한 상태인데도 바닥이 드러난 자갈밭과 개천가에 천막을 치고 더위를 피하고 있었다. 월요일 아침에 냇가에 나가 보니 그 많던 차량들은 거의 자취를 감추고 야영객들이 남기고 간 쓰레기 봉투만 군데군데 쌓여 있었다. 섭씨 35도를 웃돈다는 지역별 날씨가 8월 하순에 접어드는데도 그칠 줄을 몰랐다.

캄보디아에서 한국에 들어온 후 나에게 떨어진 첫 번째 과제가 전원을 바꾸는 일이었다. 가게로 쓰고 있는 아래층에서 전기를 끌어 위층 에어컨에 연결하는 간단한 작업이었다. 전기 요금 누진제 때문에 에어컨을 맘대로 못 쓰다가 더운 나라에서 온 손님(?)을 위해 내린 가족들의 배려였다. 그러고 보니 신문과 방송은 연일 전기 요금 누진제의 실태와 문제점을 다루고 있었다. 전기료 폭탄에 대한 서민들의 걱정과 원성이 무더위에 짜증을 더하고 있었다. 가정 요금 1단계는 1kw당 100원 이하지만 이것이 2단계, 3단계로 올라가면 요금이 몇 배로 치솟는다는 것을 이제 알게 되었다. 전기 요금이 비싸기로 소문난 캄보디아에서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사회 문제를 잘 사는 나라(?) 한국에서 피부로 느낄 수 있었다.

2주만에 다시 찾는 프놈펜, 밤공기가 시원하다. 이 시간 후텁지근한 서울의 밤공기와는 전혀 다르다. 도로 양 옆에 군데군데 물이 고인 걸 보니 오후 늦게 비가 내린 모양이다. 해만 뜨면 뜨거워지는 캄보디아, 더위쯤이야 이제 이력이 붙어서 참을 만하다. 에어컨을 온종일 끼고 살다시피 하지만 전기료 폭탄을 걱정하지 않는다. 처한 환경에 그 만큼 적응하고 있다는 증거다. 별안간 찾아온 기상이변에 난리법석을 떠는 한국인이 다른 나라 사람처럼 보일 때도 있다. 환경 변화가 사람의 의식까지 바꾸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