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순칼럼] 열대스콜에서 카타르시스를 느끼시나요?

기사입력 : 2012년 09월 03일

 
 반백년 넘게 살고 있으나 처음 겪는 일들이 많다. 이 결혼이라는 것도 처음이고(두 번 할 만한 것은 못 되지만), 실은 처음으로 이렇게 나이 들어 본거다. 프놈펜에 아파트를 짓게 된 일 역시 처음이다. 한국에서야 공정별로 숙련된 기술자들이 포진해있고 품질관리 시스템이 잘 정비되어있어 삐걱거릴 일이 없었지만, 기술자가 드문 캄보디아에서는 순탄하게 넘어가는 공정이 없었다. 의사소통 또한 원활할리 없는지라 생전 처음 겪는 에피소드가 넘쳐났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조물주가 빚어낸 인체와 달리 사람이 만들어가는 건설현장에는 치료 불가능한 난관이란 거의 없다는 점이다. 품을 들이면 완치가 가능한 것들이다. 우리 모두 알다시피 남는 문제는 비용과 시간일 뿐.
 
 꼭대기 층 욕실까지 샤워수압을 끌어 올리느라 애를 먹었던 작년 우기의 기억이 선명하다. 펌프를 운송해오는 까탈스런 업무를 시작으로 고국 거래처의 자문을 받아가며, 현지 기술자는 물론 외국 엔지니어링업체와 조율을 거듭하는 과정에서 숱한 우여곡절을 겪었다. 될 듯 될 듯, 갈무리가 늦어지자 자꾸 방정맞은 생각마저 들었다.(원래 구경하는 사람이 더 힘든 법이다.) 시험, 재시험이 거듭되던 지리한 나날 끝에, ‘쏴….’ 드디어 펜트하우스 샤워꼭지에 힘이 실렸다. 십년 묵은 체증이 쑥 내려간 듯 속 시원한 상황에서 난데없이 눈물이 쏟아졌다. 마지막 울던 때가 언제였던가, 한번 물꼬를 튼 눈물은 걷잡을 수 없었다. 늘 울음밑천을 장만하며 살아왔는지 앙금처럼 가라앉아 있던 설움에, 해외살이 고달픔까지 덩달아 복받치는 듯했다. 자기감정을 있는 대로 드러내기엔 한참 껄끄러운 나이지만 그날만은 실컷 울어도 그만이지 싶었나 보다. 남편은 음악의 볼륨을 한껏 높이더니 아예 시선을 피한다. 우르르쾅꽝…, 창밖으로 하늘이 처음 열리는 듯 천둥번개가 내리치며 열대 스콜이 한창이다. 강렬한 스콜과 웅장한 교향곡, 그리고 나의 통곡은 어딘지 모르게 닿아있는 느낌이었다. 울다 웃자니 계면쩍어 음악에 맞춰 장르를 초월한 춤을 추었던 것도 같고.
 
 우리의 걸출한 선조 연암 박지원 선생은 울음을 다음과 같이 정의했다. <기쁨이 사무쳐도 울게 되고, 노여움이 사무쳐도 울게 되고, 슬픔이 사무쳐도 울게 되고, 즐거움이 사무쳐도 울게 되고, 사랑함이 사무쳐도 울게 되고, 미움이 사무쳐도 울게 되고, 욕심이 사무쳐도 울게 되는 것이야…울음이란 천지간에 있어서 우레와도 같은 것일세.> 빨주노초파남보, 칠색을 고루 섞으면 검정색이 되듯 행여 희노애락애오욕, 칠정이 뭉뚱그려져도 통곡이 되어 나오는 것일까. 어쨌거나 고국의 어느 가을날에 추적추적 내리던 비는 가슴 저변의 멜랑콜리를 건드려 끝내 마음을 착잡하게 했었지만, 통쾌하게 퍼 붙는 캄보디아의 스콜은 시쳇말로 평생 벼르던 넘(뇬) 싸대기 갈기듯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한다./ 나순 (건축사 http://blog.naver.com//narrch )
 
 

 
 
*뉴스브리핑 캄보디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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