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순칼럼] 소치올림픽을 통해 본 화장실문화

기사입력 : 2014년 02월 24일

소치올림픽

이름을 대면 누구나 알만한 유명인사댁 건축설계의 최우선조건이 “안방 화장실의 개방화”였다고 한다. 건축주 내외 모두 바쁘게 사는 부부교수였는데 하루 중 일정과 애정을 확인할 수 있는 유일한 시간이 화장실 변기에 앉아 있을 때뿐이라는 것이다. 함께 차도 마시고 메모와 독서를 할 수 있도록 변기 두 개를 마주보게 배치하고 그 사이에 탁자와 책장을 설치해 달라는 주문이었다. 반면에 미국 드라마 <섹스 앤 시티>의 골드미스 수다 중에 마스터베드룸 화장실이 드레스 룸과 파우더 룸을 지나 미로 속에 깊숙이 감춰져 있는, 격조 높은 저택의 신사와 사랑을 나누고 싶다는 대사가 나온다. 생리적인 소음으로 로맨틱한 분위기를 망치고 싶지 않은 게 여성 공통의 심리이리라. (“좌변기”에서 좌식 소변권장에도 불구하고 별걸 다 내기하는 남성 심리에 대해서는 잘 모르겠다)

러시아 소치올림픽 화장실이 경기만큼이나 화제였다. 칸막이 없는 화장실이 한 두 곳에서 발견된 게 발단이었지만, 샤워기에 감시카메라를 설치했다는 정부인사의 발언에 서방 취재진들의 비판보도가 쏟아졌고 SNS에도 가십거리가 속속 업데이트되었다. 해석도 분분하다. 동성애 금지법에 대한 반발이라는 추측에서부터 화장실까지 함께 다니던 옛 볼셰비키 문화의 복원이라는 비아냥까지. 사실 궁핍한 소비에트 연방시절, 심각한 주택난과 혹한에 의한 배관 동파문제로 화장실을 공동으로 쓸 수밖에 없던 시절이 있었다고 한다. 어쨌든 화려한 겉모양에 비해 편의시설미비와 부실공사로 인한 불평이 끊이지 않고 있다. 소치올림픽이 푸틴 개인 프로젝트라는 소문처럼 권력은 기념비적인 건축물을 통해 표현되기도 하지만, 건축이란 그 사회의 문화, 기술력, 기후의 한계를 벗어날 수 없으니 찬란한 문명 뒤에 굴곡진 역사를 거친 러시아의 현주소가 아닌가 싶다.

사람이 평생 동안 화장실에서 보내는 시간이 대략 1년에 이른다고 하니, 화장실 문화가 중요하지 않을 수 없다. 위 부부교수처럼 특수한 경우나 범죄예방 차원의 공중화장실이 아니고는, 문화가 성숙할수록, 기품 있는 건축물일수록 화장실은 독립성을 보장하는 양식으로 발전한다. 우아하고 이성적인 인간행세에 철저한 사람이라도 화장실에서만큼은 먹고 삭힌 후 가스분출과 함께 배설해야하는, 소화기를 가진 동물적인 존재임을 확인할 수밖에 없는 노릇이니. 송나라 대학자인 구양수가 글을 쓰기 좋은 곳 세 군데를 들었는데 침대 위와, 말을 타고, 화장실에서가 그것이다. 요즘으로 치자면 ‘말’ 대신 ‘자동차’가 되겠으나 정치가 겸 문인이었던 그분이 화장실을 꼽은 이유는, 세상과 격리돼 변기에 앉아있을 때 기발한 착상이 곧잘 떠올랐기 때문이리라. 로댕의 “생각하는 사람”도 벌거벗은 채 변기에 쭈그리고 앉은 자세라는 설이 있듯이, 모르긴 해도 변기 위에서 잉태된 불후의 명작이 수두룩할 터이다. 그런 면에서 지구촌 각계 손님을 맞으면서 화장실 프라이버시를 홀대한 점은 소치(Sochi)의 부덕의 소치이다. / 나순 (건축사, http://blog.naver.com/naarc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