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순칼럼] 천재를 버리는 사회, 천재를 키우는 사회

기사입력 : 2014년 02월 05일

‘힘들게 1등은 해서 뭐해? 최소의 노력으로 최고의 효과를!’ 수석 합격이 목표인 사람을 안쓰러워하며(?) 평생 턱걸이 합격에서 보람을 찾아온 사람이지만, 주변에 공부 잘하는 사람이 꽤 있다. 그들의 일상을 보노라면 “공부는 노가다”라는 어느 수재의 고백에 수긍하게 된다. 측근 중 70년대에 명문고를 수석졸업하고 당시 최고로 쳐주던 대학학부에 합격하신 분이 있다. 공부는 언제 하나 싶게 여유 잡으며 다니셨다는데, 다 쓰고 던져둔 투명한 모나미 볼펜심이 책상서랍 가득 쌓여있었다고 한다. 책상 앞 단에 눌린 갈비뼈 부위가 패일 정도였다니, 책상에 얼마나 오래 앉아 있었는지 짐작할 만하지 않은가. ‘시험문제에 뭐가 나올까? 내 위치는 어디쯤일까?’ 공부 잘하는(열심히 하는) 사람의 공통점은 시험을 즐긴다는 데 있다. 어떤 교사가 시험일정을 내키는 대로 변경하고 불공정한 방식을 방기하게 되면 그 과목에 흥미를 잃어버리고 마는 것이다.

천재들이 한 집단에서 집중적으로 나타나곤 한다. 노벨상 수상자가 특정 대학이나 연구 센터에 몰리는 현상이 그렇고, 르네상스를 촉발한 피렌체의 역사가 그렇다. 15세기 인구 5만에 못 미치던 그 작은 도시에서, 레오나르도 다 빈치, 미켈란젤로, 라파엘로, 보티첼리 같은 천재들이 줄줄이 나왔으니. 전문가의 분석에 따르면, 그들이 특별히 똑똑한 민족이라서 그런 게 아니라 스포츠, 학문, 예술 모든 분야에서 서로 자극하고 협력하고 경쟁할 수 있었던 인간능력을 최대한 신뢰한 당시 분위기와 무엇보다 후원자들의 수준 높은 주문이 상상력을 도발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기량을 총동원해 진검승부를 벌이고 시합이 끝나면 상대팀을 격려하며 다음의 더 멋진 플레이를 기약하는 스포츠경기처럼, 경쟁과 연대감의 조화야말로 삶에 대한 열정을 끌어내는 원동력이 아닐까싶다.

캄보디아 교육부가 각종 시험에 만연한 부정행위 단속에 나섰다고 한다. 학생 간의 컨닝보다, 시험 감독관과 교사들이 결탁하여 시험답안을 학생들에게 팔아넘기는 행위 근절이 더 큰 관건이라니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다. 80년대 서슬 퍼렇던 훈센총리가 시험부정을 척결하기 위해 M16으로 중무장한 병력을 교실 바깥에 배치하여 해외토픽 란을 장식하기까지 했다니, 부정행위의 뿌리가 깊고도 깊은 모양이다. 타의 모범을 보여야 할 교육자의 처신이 그 정도라면 총체적인 도덕적 해이는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다. 캄보디아는 단순노무자, 대졸사원, 교사, 경찰 사이의 급여 차이가 별반 크지 않다. 모두 그렇고 그런 뒷거래로 꿰찼다는 인식이 팽배해 있어 지위에 대한 권위도 없고, 그만한 경력을 쌓아서 자격을 얻은 경우가 드물다보니 그에 걸 맞는 실력 또한 갖추지 못한 탓이리라. 괴테는“천재란 노력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는 사람”이라고 말했다. 노력과 도전에 대한 보상은커녕 조롱거리가 되는 사회에서는 개인의 탁월함도 묻히고 말아, 패배주의와 피지배의 질곡에서 벗어나기 힘들 터이다.

/ 나순 (건축사, http://blog.naver.com/naarc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