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순칼럼] 미식(美食) 삼식(三食)

기사입력 : 2014년 01월 22일

집밥

속담에“못생긴 나무가 숲을 지킨다”는 말이 있다. 우리 집에는 “맛없는 반찬이 식탁을 지킨다”는 말이 있다. 먹는 사람도 없는데 끈질기게 올라오는 잔반(밑반찬 포함)에 대한 구박이다. 밥 한 그릇과 간장 한 종지로 빈처(貧妻)를 대접했던 “왕후의 밥, 걸인의 찬”이 통할 시대도 아니고, 휑한 식탁보다 구색이라도 갖춰 주부 체면을 세워주니 나같이 게으른 사람에게는 든든한 우군이다.

‘물냉면을 먹을 것인가 비빔냉면을 먹을 것인가’ 장고 끝에 늘 물냉면을 선택하는 이상한 사람도 있지만, ‘무엇을 먹을 것인가’에 대한 고민은 평생 다시 주어지지 않을 한 끼라는 면에서 의미심장하지 않을 수 없다. 잘해야 한 끼 정도 집 밥을 먹었던 고국에서는 전 가족이 요리에 참여하는 “참여 식단”으로 꾸렸다. 다 같이 재료를 준비해 늘어놓고 취향껏 만들어 먹는 방식으로, 김밥, 초밥, 만두탕, 샤브샤브가 메뉴로 적격이었다. 취업주부로서 시간절약이 목표였지만(노동력 착취라는 항변을 무릅쓴) 나름 “창조 식탁” 분위기였다. 프놈펜에 온 후 직장과 집이 한 건물에 있는 직주일체(職住一體) 생활을 하게 되고 보니 가정식이 일상이 되었는데, 요리에 젬병인 사람에게 삼시 별미를 기대하니 난감한 노릇이다. 세계진미로 꼽는 상어지느러미, 모기눈알, 제비집 같은 중국요리를 먹으며 무색, 무취, 무미야말로 최고의 경지라고 추겨 세우지만, 혹자는 무시무시하게 비싼 가격 때문에 맛있게 느낀다고 일축한다. 아내가 해주는 음식이 당기지 않는 이유가 공짜라서 그러지 않나 자문해야보아야 할 일이다.

미식가로 유명한 공자(孔子)는 남편 입맛 하나 못 맞춘다하여 부인과 이혼했다. 쌀밥이 눈처럼 희지 않거나 고기가 조금이라도 빛이 좋지 않으면 손도 대지 않았다고 하니 까다로운 성미에 질력이 나 도망쳤을지도 모른다. 천하를 구하기 위해 이 나라 저 나라로 14년을 주유한 공선생님이지만, 자기 집안의 여인 하나를 구하지 못한 셈이다. “색(色)은 덕(德)을 해치기 쉽다”하여 왕후의 유혹까지 물리친 성인군자도 결국 “식(食)” 앞에서 무너지는 것을 보면, 인간의 행복이란 자신의 발바닥에서 뇌 사이에 있을 뿐이라는 주장이 진리인 듯하다.

실제 뇌에 이상이 생겨 ‘미식가(Gourmand Syndrome)’로 변하는 케이스가 종종 발견된다고 한다. 스위스 정치평론가였던 ‘클라우스’는 마흔여덟에 뇌졸중을 일으켜 뇌의 우측 전두엽에 손상을 입은 후 미식에 몰두하게 되었는데, 정치평론 일을 그만 두고 아예 요리 칼럼니스트로 전업했다는 얘기를 읽은 적이 있다. 캄보디아에 삼십 년 만에 닥친 한파가 남편의 뇌를 강타했는지, 반찬을 마주하는 표정이 험악하다. 방학을 맞은 아이들까지 합세해 식탁개혁투쟁이 심각한 수준이다. 캄보디아 재래시장에 나와 보니 소의 골을 비롯해, 개구리, 지네, 뱀이 적나라하게 진열되어 있다. 그나저나 오늘 저녁은 또 무얼 해 먹는다? / 나순 (건축사, http://blog.naver.com/naarc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