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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인터뷰] 정명규 재캄보디아한인회장이 돌아본 9년 “한인회는 결국 서로를 지키는 공동체”
▲정명규 재캄보디아한인회장
정명규 회장이 돌아본 9년 “이제는 한인회가 더 사랑받았으면 합니다”
체육이사에서 두 차례 한인회장까지 9년…“어려울 때 곁에 있는 것이 한인회의 역할”
재캄보디아한인회 창립 30주년 행사가 모두 끝났다. 기념식과 포럼, 감사의 밤, 체육대회까지 긴 일정을 마친 정명규 한인회장의 얼굴에는 안도감이 먼저 묻어났다. 두 차례 한인회장을 맡으며 쉼 없이 달려온 그에게 이번 30주년은 자신의 마지막 임기를 앞두고 맞은 특별한 시간이었다.
▲재캄보디아한인회 30주년 기념 행사에서 정명규 한인회장이 축하 떡 케이크를 자르고 있다.
Q. 창립 30주년 행사를 모두 마쳤습니다. 가장 먼저 어떤 생각이 들었습니까.
처음에는 정말 고민이 많았습니다. 지난해 교민사회도 많이 어려웠고, 무엇보다 행사를 준비할 재정적인 여건이 넉넉하지 않았습니다. ‘꼭 해야 하나’ 하는 생각도 했죠. 하지만 1996년부터 이어온 한인사회의 30년을 그냥 보내는 것은 아닌 것 같았습니다. 끝나고 보니 하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Q. 이번 행사의 의미를 ‘감사’라고 여러 차례 말씀하셨습니다.
30년 동안 한인회를 만들어온 분들이 계십니다. 전임 회장님들, 각 단체와 협회, 기업, 그리고 보이지 않는 곳에서 도와주신 교민들까지요. 그래서 화려한 기념행사보다 ‘감사합니다’라는 말을 제대로 전하고 싶었습니다. 임원과 이사들도 정말 많이 고생했습니다. 재정이 많아서 행사를 잘한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함께해줘서 가능했습니다.
Q. 포럼 역시 기존 한인회 행사와는 조금 다른 시도였습니다.
블록체인이나 탄소배출권 같은 주제가 처음에는 생소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끝난 뒤 ‘이제 조금 알 것 같다’고 말씀하시는 분들이 계셨어요. 관심을 가진 분들이 직접 찾아왔다는 것도 의미가 있었습니다. 한인회가 친목뿐 아니라 교민들에게 새로운 정보를 연결해주는 역할도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Q. 체육대회까지 이틀 연속 행사를 치르는 것이 쉽지는 않았을 것 같습니다.
솔직히 많이 걱정했습니다. 준비하는 분들이 너무 힘들었을 겁니다. 그런데 마지막까지 웃으면서 함께해주셨어요. 감사의 밤에서 공연해준 분들, 체육대회를 준비한 분들, 후원해주신 분들까지…. 이번 30주년은 제가 만든 행사가 아니라 많은 분들이 함께 만든 행사라고 생각합니다.
정 회장이 한인회와 인연을 맺은 것은 2018년이다. 체육이사를 시작으로 부회장과 대외협력위원장을 거쳐 두 차례 회장을 맡았다.
Q. 돌아보면 유난히 어려운 일들이 많았던 시간이었습니다.
제가 한인회에 있었던 기간 대부분이 어려운 시기였던 것 같습니다. 코로나19가 있었고, 2023년부터는 온라인 스캠 피해자들의 도움 요청이 계속 들어왔습니다. 한인회가 귀국을 도운 사람만 220명이 넘습니다. 최근에는 캄보디아와 태국의 국경 문제도 있었고요. 하나씩 넘어서다 보니 어느새 임기의 마지막까지 왔습니다.
Q. 그런 일을 겪으며 오히려 ‘한인회가 왜 필요한가’를 더 많이 생각하셨을 것 같습니다.
맞습니다. ‘한인회가 도대체 무엇을 하느냐’는 말을 들을 때 가장 안타깝습니다. 한인회 사람들은 월급을 받지 않습니다. 누가 돌아가셨을 때, 아이가 실종됐을 때, 한밤중 병원에 가야 할 때, 사건·사고를 당했을 때 연락을 받고 움직입니다. 스캠 피해 청년들도 그렇게 도왔습니다. 돈을 받고 사람을 빼준다거나 브로커 역할을 한다는 이야기도 있지만 한인회는 그런 곳이 아닙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범위 안에서 교민을 돕는 곳입니다.
Q. 결국 한인회라는 것은 ‘어려울 때 찾을 수 있는 공동체’라는 의미일까요.
그렇죠. 평소에는 한인회의 필요성을 크게 느끼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정말 어려운 순간에는 누군가 전화를 받아주고 움직여줘야 합니다.
한인회비는 연 30달러입니다. 공돈처럼 느껴질 수도 있지만 문화행사나 체육대회에 한두 번만 참석해도 그 이상의 것을 누릴 수 있습니다. 기업과 협회, 후원자들이 힘을 보태기 때문에 가능한 일입니다. 그런 참여들이 모여 한인사회라는 공동체가 만들어지는 겁니다.
Q. 이제 마지막 임기를 보내고 있습니다. 앞으로의 한인회에는 어떤 모습을 기대하십니까.
젊은 분들이 더 많이 관심을 가져줬으면 좋겠습니다. 캄보디아에도 목적과 분야에 따라 활동하는 좋은 단체들이 많이 생겼습니다. 한인회는 그 가운데서 전체 교민을 바라봐야 하는 곳입니다. 차세대가 참여하고 이끌어준다면 캄보디아 사회와의 민간외교도 훨씬 활발해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Q. ‘한인회장 정명규’가 아닌 정명규라는 사람의 이야기도 궁금합니다. 캄보디아에는 어떻게 오게 되셨습니까.
저는 네 살 때부터 교회를 다녔어요. 어떻게 보면 교회가 제 생활의 터전이었던 셈이죠. 그렇다고 처음부터 목회나 선교만 생각했던 것은 아닙니다. 사회생활도 했고 사업도 했습니다.
정 회장은 서울에서 유통과 신문, 건설 관련 사업 등을 운영했다. 사업가로 살아가던 그의 삶에 하나의 전환점이 된 것은 2010년 아이티 대지진이었다.
▲2010년 아이티 대지진 이후 선교활동을 위해 현지를 찾은 정명규 회장. 아이들과 함께 환하게 웃고 있다.
Q. 아이티 지진이 삶의 방향을 바꾸는 계기가 됐다고요.
아이티 지진 이후 선교활동을 시작하게 됐습니다. 현장에서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을 만나면서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 많이 생각했던 것 같아요. 한국에 돌아와서는 개척교회도 했고, 선교단체를 만들면서 해외에서 해야 할 일들을 계속 고민했습니다.
그 고민 끝에 2013년 11월 처음 캄보디아를 찾았다. 선교지를 알아보기 위한 리서치 방문이었다. 그리고 이듬해인 2014년 1월, 예장 백석총회 파송 선교사로 본격적인 캄보디아 생활을 시작했다.
Q. 사업가에서 선교사로, 다시 한인회장이 됐습니다. 전혀 다른 길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저는 오히려 사업했던 경험이 목회나 선교를 하는 데 큰 도움이 됐다고 생각합니다. 사업하는 분들의 고민을 이해할 수 있고 상담할 때도 현실적인 부분을 같이 볼 수 있으니까요. 제가 조찬기도회나 BAM(Business as Mission)에 관심을 갖는 것도 그런 이유입니다.
Q. 그렇다면 한인회 활동 역시 그동안 걸어온 삶의 연장선이라고 볼 수 있을까요.
그런 것 같습니다. 돌이켜보면 제가 해온 일들이 따로 떨어져 있지는 않았어요. 결국 사람과 함께하는 일이었고, 누군가 어려울 때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정명규 재캄보디아한인회장 내외
정 회장은 최근에도 배움을 이어가고 있다. 2026년 2월 서울대학교 평화통일연구원 최고지도자과정을 마쳤다. 한인회장을 내려놓는 시점이 가까워지고 있지만 새로운 역할을 준비하는 그의 걸음까지 멈추는 것은 아니다.
30주년 행사를 마친 정 회장의 임기도 이제 마지막 구간에 접어들었다. 지난 시간 그의 앞에는 축하할 일만큼이나 해결해야 할 일도 많았다. 코로나19와 각종 사건·사고, 스캠 피해자 지원까지 때로는 한인회장의 역할을 넘어서는 일들과 마주해야 했다.
그럼에도 인터뷰 내내 자신의 ‘성과’를 이야기하기보다는 임원과 이사, 전임 회장, 후원 기업과 단체, 이름 없이 함께해준 교민들에 대한 감사를 더 많이 말했다.
Q. 긴 시간을 보낸 뒤 교민들에게 꼭 남기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요.
한인회가 조금 더 사랑받았으면 좋겠습니다. 한인회가 있다는 것 자체가 우리 교민사회에는 도움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저도 차기 회장이 정해지면 가장 먼저 한인회비를 내려고 합니다. 그리고 젊은 분들이 더 많이 참여해서 지금보다 더 좋은 한인회를 만들어줬으면 좋겠습니다.
2018년 체육이사로 시작해 부회장과 대외협력위원장, 그리고 두 차례 한인회장까지. 사업가로, 선교사로, 한인회장으로 그가 걸어온 길에는 서로 다른 이름이 붙어 있었지만 그 중심에는 늘 ‘사람’이 있었다.
지난 30년을 기념하는 행사를 끝낸 지금, 정명규 회장은 자신의 마지막 임기를 향해 걷고 있다. 누군가 어려울 때 곁을 지키는 것이 한인회의 역할이라고 믿어온 그의 시간이 남은 임기까지 따뜻하게 마무리되기를 기대해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