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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펌프아재의 펌프이야기] 죽을사람 살린 게임, 펌프잇업
캄보디아 생활 7년 반, 나는 어쩌다 보니 펌프 아저씨가 되었다. 잘 모르시는 분들이 들으면 공기 집어넣는 펌프나, 공업용 펌프를 먼저 떠올리는 분들이 많을텐데, 그 펌프는 아니고, 지금도 오락실에 가면 볼 수 있는, 음악에 맞춰 발판을 밟는 리듬게임 펌프잇업을 줄여서 펌프라고 한다.
그런데, 처음부터 펌프를 시작한 것은 아니었다. 2002년에 펌프를 접었고, 16년 만에 펌프를 다시 시작하게 되었고, Covid-era를 빼면 계속 접지 않고 지금까지 뛰고 있는데, 돌이켜 보니, 정말 모든 것이 ‘어쩌다 보니’라는 말로 밖에는 설명하기가 쉽지 않다.
나는 2017년 12월 말, 캄보디아에 오게 되었다. 부모님이 하시는 일을 돕기 위해, 좋은 일을 하러 온 것이 맞긴 하지만, 내가 처한 상황이 썩 유쾌하지는 않았다. 그러다가 2018년 6월, 좀 심한 우울증으로 고생하게 되었다. 글로 표현하기에는 너무 길기도 하고 썩 좋은 일은 아니기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는 적지 않겠지만, 당시 내 모습은 설명이 필요할 것 같다.
나는 뭐라도 하면서 몸을 움직이며 땀을 흘려야 스트레스가 풀리는 사람인데, 캄보디아에서 취미로 가질만한 운동이 없던 상황이었다. 한국에서는 자전거를 탔었는데(서울에서 부산까지 자전거를 타고 3번 정도 내려가 봤다.), 캄보디아에서 외국인이 자전거를 타고 다니는 것은 무척이나 위험한 일이기도 했고, 도로의 상황도 좋지 않았다.
그렇다고 헬스클럽을 가서 운동을 하자니 너무 지루했다. 아무리 음악을 듣고, 영상을 보면서 어떻게든 버텨보려 했어도, 지루함을 이기지 못하고 런닝머신 위에서 15분도 버티지 못하고 내려오기 일쑤였다. 지금이야 어깨가 많이 좋아졌지만, 당시에는 습관성 어깨 탈구로 웨이트 트레이닝도 거의 하지 못하던 때였고, 사실상 할 수 있는 운동이 극히 제한된 상황이었다. 그러다 보니, 이 때의 나는 먹는 것으로 스트레스를 풀고 있었고, 야식을 안 먹는 날이 손에 꼽을 정도였다.
체중은 점점 불어나고, 이런 저런 일로 우울증에 걸려서 거의 매번 폭식으로 스트레스를 풀다보니, 악순환이 반복되었다. 모든 것을 접고 한국으로 돌아가야 하나 심각하게 고민하던 날들이 계속해서 이어졌다.
그러던 2018년 6월, 우리 동네 근처에 이온몰 2가 생겼고, 그 백화점 안에 오락실에 우연찮게 놀러가게 되었다. 정말 너무 오랜만에 보는 펌프잇업이 있었다. 나름 소식적에는 발판 위에서 날아다니던 사람이라, 호기롭게(!) 코인을 넣고 한 판을 뛰어보았다. 겨우 노래 한 곡을 마쳤을 뿐인데, 거칠게 숨을 몰아쉬고 있었고, 1크레딧에 3곡이라, 간신히 3곡을 뛰고 나니 조금 과장을 보태어 다리가 후덜거리며 다시 일어서기가 쉽지 않았다.
그런데, 이게 너무 좋았다. 그렇게 약 10분 정도 뛰고 나니, 머리가 맑아지며, 뛰는 즐거움을 느낄 수 있었다. 내가 상태가 안 좋으니, 바람이라도 쐬라고 오락실에 데리고 가 주신 형님께서 이 때 뭔가를 느끼셨는지, ‘네가 매주 시간과 요일을 정해서 오락실에 꾸준히 나오면 운동도 되고, 좋은 친구들도 사귈 수 있을 것이다.’라고 말씀해 주셨는데, 그 때 나는 ‘설마 그렇게 되겠어?’했는데, 거의 7년이 된 지금까지 펌프를 뛰고 있는 것을 보니, 그 때 형님이 해 주셨던 말씀이 결코 틀린 얘기는 아닌 것 같다.
아무튼, 이 때 오락실을 다시 다니기 시작하면서 운동화도 새로 사고, 이 때 입을 운동복도 새로 샀다. 물론, 부모님의 시선은 곱지 않았다. 나이도 서른 넘게 먹은 녀석이 갑자기 다시 오락실을 다니기 시작하니, 부모님 입장에서는 썩 유쾌하지 않으셨을 것 같은데, 당장은 뭐라고 안 하셨다. 어쩌면 한 두 번 가다가 그만 두겠지 싶으셨는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한 달이 지나고, 두 달, 세 달이 지났다. 그 3개월 동안 거짓말같이 15kg이 빠졌다. 체중이 감소하며 몸이 더 가벼워지며, 체력이 늘기 시작하니 일에 집중하는 것도 더 나아졌다. 살이 빠지는 게 눈에 보이기도 하고, 안 맞던 옷이 다시 맞는 즐거움에 더 열심히 뛰었다. 그리고, 시간이 조금 지난 후, 오락실에 그냥 게임이 아니라 각 잡고 운동하러 간다는 것을 인지하신 부모님께서는 오락실에 안 가는 날은 ‘오늘은 운동하러 안 가냐?’고 물어보시는 날도 있었고, 농담인지 진담인지 ‘아버지도 좀 모시고 가라(!)’고 하시는 날도 있었다.
정말 감사했던 것은, 펌프를 다시 시작하며 새로운 친구들을 만날 수 있게 되었다. 물론, 나보다 정말 많이 어린 친구들이지만, 펌프가 정말 좋은 점은, 같은 취미를 공유하는 ‘친구’가 되다 보니, 나이 차이가 많이 나도 크게 개의치 않는다는 점이었고(이 점에 대해서는 다음 글에서 다시 언급하고자 한다.), 나 또한 내게 누구인지 시시콜콜 물어보지 않고, 그저 같이 펌프를 뛰는 친구로 여겨주는 그 분위기가 너무 좋았다. 그래서 더 펌프를 뛰러 가는 즐거움이 있었다.
그 때 이후로 캄보디아 생활에 더 잘 정착할 수 있게 되었다. 이런저런 어려운 일이 있어도 오락실 와서 신나게 뛰면서 친구들과 수다도 떨고, 즐겁게 놀다가 집에 오면 그래도 버틸만한 일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1년 정도 있을 줄 알았는데, 2년, 3년, 벌써 만으로 7년 반을 캄보디아에 있게 되었다.
앞으로 캄보디아에 얼마나 더 있게 될지는 나를 이 땅에 보내신 분께서만 아실 일이다. 그러나, 확실한 것은, 앞으로 캄보디아에 있는 동안에도 계속 펌프를 뛸 것이고, 펌프를 통해 더 좋은 일들을 하고 싶다.
정말 펌프가 죽을 사람 한 명 살렸다. 펌프가 없었다면 지금 나는 어디에 있었을까.
글 이재호
사단법인 조이풀에듀앤호프 캄보디아 지부장
CPF Series(Cambodia Pump it Up Festival) Organiz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