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우칼럼] 조상을 위한 명절 프츰번

기사입력 : 2013년 10월 09일

프쭘번

지난 일요일 아침, 길이 유난히 번잡해서 유심히 살펴보니 보통 때 흔히 못 보던 광경이 눈에 들어왔다. 남자들은 옷을 단정히 차려 입고 여자들은 위에 하얀 망사 예복을 입고 가족들과 같이 오토바이나 뚝뚝이, 차를 타고 가는 풍경이 길 위에 펼쳐져 있었다. 여러 가지 음식을 담은 층층이 도시락이나 향, 꽃 같은 것을 들고 그들이 향하고 있는 곳은 절. 절로 들어가는 입구는 많은 사람들로 붐볐다. ‘오늘이 무슨 날인데 절에 가는 사람들이 저렇게 많을까? 프츰번까지는 아직 2주나 남았는데……’ 캄보디아 직원을 통해서 무슨 일이 있어서 절로 사람들이 모이는지 알 수 있었다.

10월 3일부터 5일까지는 프츰번 명절 연휴 기간이다. 캄보디아 신년에 해당하는 쫄츠남과 함께 프츰번은 캄보디아 최대의 명절이다. 한국의 추석과 같이 이 명절에는 곳곳에 떨어져 살던 가족들이 모두 고향집으로 모인다. 프츰번은 ‘죽은 조상들을 위한 날’이라고 한다. 조상들을 추모하면서 그들에게 음식을 바치고 내세에서 복을 받기를 기원한다. 프츰번 행사는 명절날 15일 전부터 시작된다. 조상들이 생전에 다녔거나 사후에 유골이 안치되어 있는 절을 찾아다니며 그들을 추모한다. 예전에는 3개월간 이런 의식을 치렀다고 하는데 요즘은 15일 정도로 줄여서 한다고 한다.

캄보디아 사람들은 사람이 죽으면 그들의 영혼이 떠돌아다닌다고 믿는다. 그래서 그들이 영혼이 머무는 절을 찾아 배고픈 영혼들을 위해 음식이나 쌀을 바치고, 초나 향, 꽃 등을 올리며 기도를 드린다. 조상들의 영혼이 평안을 찾고 자신들을 잘 지켜 주기를 바라는 소원이 담겨 있다. 바쳐진 음식은 스님들에게 공양하는 데 쓰이고 남는 음식은 주위의 어려운 사람들에게 나누어 준다. 죽은 이들을 위한 의식이지만 결국은 산 사람들의 축제가 프츰번이다. 여러 곳에 떨어져 살던 가족이 한데 모여서 조상을 추모하고 어려운 이웃들에게 자비를 베푸는 뜻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매년 4월에는 캄보디아의 설날인 쫄츠남이 있고 9월 말이나 10월 초에는 프츰번이 있는데 각각 3일씩 쉬는 캄보디아 국가 공휴일이다. 쫄츠남은 농사일이 시작되기 직전에 있고 프츰번은 벼농사가 바쁜 때를 지나 추수를 앞두고 있는 시기에 있어 모두 농사일이 가장 한가할 때 명절을 보낸다는 데 특징이 있다. 캄보디아 사람들 대부분은 불교를 믿는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캄보디아 고유의 무속 신앙과 결부된 불교를 믿는다. 그래서 프츰번 때뿐만 아니라 여러 명절에는 절에 가는 것을 잊지 않는다. 절에 가서 가족들의 안녕을 빌고 가정에 행운이 깃들기를 기원한다.

어제는 기숙사 여학생 하나가 집에 가도록 허락해 달라고 했다. 프츰번 연휴까지는 아직 1주일이나 남았는데 미리 연휴를 갖겠다는 것이었다. 잘 타일러서 더 공부를 하고 가라고 했지만 영 아쉬워하는 눈치였다. 명절 연휴가 다가오면 학교에 나오는 학생 숫자가 눈에 띄게 준다. 학습 열기가 낮은 캄보디아 사람들의 속성이기도 하지만 가족 연대가 매우 강하기 때문에 그렇다고 생각한다. 공사 현장 같은 곳은 벌써부터 일하러 나오는 인부 숫자가 줄었다고 한다. 공식적인 휴일은 3일이지만 1주일 이상 쉬는 사람이 많다. 연휴 기간에도 일을 해야 하는 곳은 이런 명절만 되면 일할 사람 때문에 골머리를 앓기 일쑤다. 그러나 어쩌랴. 이 나라 최대의 전통 명절이니 그러려니 하고 같이 노는 길을 찾을 수밖에. / 한강우 한국어전문학교 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