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펌프아재의 펌프이야기] 땅 끝까지 (수정본)

기사입력 : 2026년 08월 24일

Coloum CPF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후, 제자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시고 다시 아버지께로 돌아가시기 직전에 남기신 말씀 중에 이런 말씀이 있다.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사도행전 1:8).’ 사도행전을 기록하던 그 당시 세계관에서 ‘땅 끝’이라 여겨지던 여러 나라들이 있었다. 사도행전 8장에 나오는 ‘에티오피아’ 역시 당시로서는 ‘땅의 끝’으로 여겨지던 곳이었다.

그렇다면, 2026년을 살고 있는 우리에게 ‘땅 끝’은 어디일까? 지구는 평평하지 않고 둥글기에, 어디를 땅의 시작이며 어디를 땅의 끝으로 정의내릴 수 있을까? 나는 오늘날 선교적 의미의 ‘땅 끝’은 지리가 아니라 자리의 문제라고 생각한다. 어떤 특정한 민족이나 지역이 아니라, 사람들의 시선에 들어오지 않고 의외로 소외받는 존재들이야말로 오늘의 ‘땅의 끝’이 아닐까.

내게는 그 자리가 다름 아닌 MK(선교사 자녀)들이었다. 선교지에 있어보니, MK들이야말로 더 많은 관심과 사랑이 필요함에도 가장 돌봄에서 소외되는 존재들이다. 부모님들은 사역에 분주함으로 자녀들에게 소홀하다 보니, 가장 사랑이 필요한 시기에 정작 외면받기 일쑤다.

내가 이 생각을 굳히게 된 데에는 여러 계기가 있다.

2019년 3월, 나는 아들 같은 친구 하나를 만났다. 시엠립에서 사역하시던 선교사님의 아들이었는데, 학업을 위해 프놈펜으로 유학 온 케이스였다. 그때부터 우리는 매 주말마다 함께 펌프를 뛰고, 점심을 나누는 루틴을 만들었다. 그 친구도 펌프를 잘 하고 싶어하는 친구였다보니, 나와 그 친구의 케미가 꽤나 맞긴 했었다. 그 때는 우리가 CO-OP(협동 플레이)에 열심을 쏟던 때였는데, 그 친구와 함께 ‘캄보디아 최초 Stage Pass’기록을 꽤나 많이 만들었었다. 나중에 그 친구가 한국으로 진학하고 난 뒤에 그 친구를 대신할 파트너를 찾는 게 몹시 어려웠는데(이건 실력만 좋다고 해결될 문제는 아니다), 지금 돌이켜보면 정말 즐겁고 행복한 시간이었다.

그리고, 오락실 기계 앞에서 나란히 서서 스텝을 밟다 보면, 엄청나게 중요한 얘기들은 아니었어도, 그 친구와 허심탄회하게 속내를 털어놓는 시간들이 있었다. 그 친구에게 나는 상담자도 아니었고, 대단한 멘토도 아니었다. 서로가 서로의 속내를 털어놓을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축복인지! 이 글을 쓰며 그 시절을 돌이켜 보면, 그렇게 편하게 내 마음을 나눌 수 있는 사람이 있었다는 것이 주님의 은총이었다고 밖에는 설명할 길이 없을 정도이다. 그리고, 정말 감사하게도, 그런 만남이 한 번으로 끝나지 않았다는 것은 주님의 은총이라고 밖에는 설명이 어려울 것 같다.

*아래의 내용은 어찌 보면 너무 민감한 내용이 될 수 있을 것 같아 본편에는 넣지 않고, 그저 편집장님께는 내용을 나누고 싶습니다.

*또 하나는, 2022년 캄보디아 교민사회를 뒤흔들었던 사건이다. 어느 선교사님의 자녀가 캄보디아 생활의 스트레스를 견디다 못해, 부모님께 받은 용돈을 모아 몰래 한국으로 돌아가 버린 일이 있었다. 처음엔 단순 가출로 보이지 않았다. 2013년, 프놈펜 시내에서 안타깝게 세상을 떠난 어느 선교사 자녀의 기억이 아직 교민사회에 트라우마로 남아있던 터라, 이번에도 같은 일이 반복된 것은 아닌가 하는 공포가 순식간에 번졌다.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누군가 한국 출입국 당국에 문의를 넣었고, 다행히 그 아이가 그저 한국으로 돌아간 것임이 확인되며 사건은 조용히 마무리되었다. 하지만 그 며칠 사이 교민사회 전체가 함께 느꼈던 공포와 무력감은, 지금도 잊히지 않는다.

*상기한 내용은 어찌보면 지금 이 순간에도 트라우마로 남아있을 내용을 리마인드 하는 내용이라, 이 내용을 넣는 것이 지혜롭다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편집장님께는 이 내용을 꼭 나누고 싶습니다.

두 번째 에피소드는, 2022년 4월, 내가 본격으로 칩몽이라는 백화점의 아케이드에 뿌리를 내리고 펌프에 매진하던 때였다. 나를 아껴주시는 선교사님께서 자기 아들을 나한테 맡겨주시면서 ‘얘 좀 잘 키워봐’라고 말씀해 주셨다. 게임을 정말 좋아하고, 컴퓨터도 잘 하는데, 운동에는 그리 관심이 없는 친구였다. 그 선교사님께서 아들에게 펌프가 단순한 게임을 넘어 좋은 운동이 되길 원하셨는지, 적극적으로 그 친구를 내게 맡겨주셨고, 지금 그 친구는 캄보디아 한인들 중에선 가장 잘 하는 선수로 자라났다(선수라는 표현에 의문이 드신다면, 직접 아케이드에 오셔서 보시면 바로 이해가 되실겁니다).

깰 수 있는 가장 높은 레벨이 몇 레벨이냐고 하면 내가 당연히(!) 더 높긴 한데, 대회를 기준으로 한다면, Stage Pass 보다는 스텝을 얼마나 정확하게 밟느냐로 승패가 갈리기 때문에, 그런 점에서 본다면 내 수제자가 이미 나를 넘어섰다고 감히 말씀드릴 수 있겠다. 청출어람이라는 고사성어를 내가 직접 경험하다니! 내가 펌프를 가르쳤지만, 나보다 잘 하는 친구가 내 제자라니 그저 감개무량할 따름이다!

이 외에도 다른 일들로 선교사님들의 자녀들과 만날 수 있었고, 그 분들께서도 나를 믿어주신 덕분에, 그 친구들과 정말 행복한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내가 지금도 나를 믿고 자녀들을 보내주신 선교사님들과 교민분께 정말 감사할 따름이다! 물론, 그 분들의 믿음에 부응하기 위해 더 조심하고 노력하긴 했지만, 그 분들께서 부족한 사람을 믿고 보내주지 않으셨다면 일련의 일들이 일어난다는 것은 결코 불가능했을 것이다.

언급하고 싶지 않으나, 이게 한국교회의 문화랑은 정말 다른 이야기이다. 한국에서 목사가 교회 학생부 친구들 데리고 오락실 간다고 하면 바로 교회 집사님들과 권사님들 입방아에 오르내리다가, 바로 장로님들 귀에 들어가고, 결국에는 담임목사님에게 알려져셔 조용히 목양실로 불려가겠지. 그리고 ‘아무래도 당신은 개척을 하던지, 다른 교회를 알아봐야 할 것 같아’라는 권고사직 아닌 권고사직을 들을 것이다. 나는 한국의 교회를 탓하고 싶지는 않다.

내가 코흘리개 시절에 다니던 오락실을 정말 깡패들의 집합소이자 비행의 온상이 오락실이었으니, 내가 감히 부모세대를 설득할 자신도 없고, 굳이 설득하고 싶지도 않다. 그 분들 안에 각인된 오락실에 대한 부정적인 내용들 또한 사실이었으니까. 그렇다고 해서 내가 이 자리를 벗어나겠냐고? 그들을 만날 수 있음이 얼마나 소중한데 감히 이 자리를 포기할까!?

여기까지 들으면 내가 무슨 MK들을 전담마크하는 선교사라 여겨질 수도 있겠으나, 나라고 모든 MK들에게 다가갈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내 그릇은 딱 거기까지다. 나 또한 나를 믿고 다가오는 형제자매들에게 마음을 쏟을 수 있지, 펌프에 전혀 관심없고, 나를 믿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억지로 ‘나 이 사람, 믿어주세요!’라고 말 할 수는 없다. 그러나 확실히 드릴 수 있는 말씀은, 나와 취미가 같은, 오락실에서 만나는 MK들과 교민들께는 내 마음을 쏟을 수 있다. 함께 땀 흘리며 즐기는 이 시간이, 내게는 주님께서 맡겨주신 양들을 만나는 시간이기에, 그 어떤 시간보다 더욱 소중하다 감히 말씀드릴 수 있겠다.

돌이켜보면, ‘펌프아재의 펌프 이야기’라는 이름으로 이 칼럼을 처음 시작할 때만 해도, 나는 그저 오락실에서 있었던 소소한 에피소드들을 나누면 되는 줄 알았다. 그런데 매 회 글을 써 내려가다 보니, 결국 내가 하고 싶었던 이야기는 늘 같은 자리로 돌아왔다. 땀 흘리며 스텝을 밟는 그 좁은 기계 위에서, 나는 매번 사람을 만났고, 그 사람들을 통해 하나님을 만났다. 순서를 지키고 양보하는 법을 배운 자리도, 정직함을 시험받던 자리도, 그리고 오늘 나눈 것처럼 아이들을 품는 법을 배운 자리도, 결국 전부 오락실 한구석, 펌프 기계 앞이었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늘 마주쳤던 건 다름 아닌 얼굴들이었다 — 순서를 양보하던 얼굴, 정직함을 고민하던 얼굴, 그리고 오늘 나눈 이 아이들의 얼굴. 이 칼럼을 여기까지 읽어주신 독자 여러분도, 각자의 삶 속에서 이미 그런 ‘땅 끝’을 알고 계실지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그동안 부족한 글, 오래 읽어주셔서 감사했다. 펌프아재는 오늘도 여전히 오락실 한구석에서, 주님께서 그때그때 보내주시는 얼굴들을 맞이하며 살아갈 것이다. 그저 맡겨주신 이들을 진심으로 사랑하는 것, 그것이 이 지면을 빌려 나눌 수 있었던 펌프아재의 최선이었다. 이 글은 여기서 마치지만, 언젠가 다시 이 지면에서 여러분을 만날 수 있다면 — 그것도 참 큰 기쁨이지 않겠는가.

 

글 이재호
사단법인 조이풀에듀앤호프 캄보디아 지부장
CPF Series(Cambodia Pump it Up Festival) Organiz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