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우칼럼] 중국인과 캄보디아

기사입력 : 2013년 06월 19일

‘캄보디아 사람들은 설을 세 번 쇤다.’ 농담이지만 진담에 가까운 말이다. 캄보디아 국가 공휴일인 양력 1월 1일과 캄보디아 설인 4월 14일~16일(3일 연휴) 이외에 중국 설(한국의 설날과 같음)에도 연휴를 쉬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이다. 설날에 프놈펜 시내를 돌아다니다 보면 철시한 상점들이 즐비하다. 수백 개의 점포가 들어 있는 올림픽 시장 같은 곳은 3일 이상 문을 닫기도 한다. 캄보디아와는 아무 관계도 없는 남의 나라 설인데 왜 이런 현상이 벌어질까? 중국계 캄보디아인과 화교들이 상권을 쥐고 있기 때문이다. 이들이 연휴에 들어가니까 그 밑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다 쉬고 이에 편승해서 옆의 사람들도 쉬고…갈수록 이런 현상이 두드러져서 머지않아 우리의 설날이 캄보디아의 공휴일로 지정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캄보디아 인구 1,500만 명 중에서 중국계 캄보디아인은 35만 명 정도라고 한다. 여기에 사업상 캄보디아에 체류하고 있는 화교들까지 합치면 그 숫자는 대폭 늘어난다. 사무용 빌딩과 중대형 상점, 호텔, 대형 중국 음식점 등이 밀집해 있는 모니봉 도로 양편에는 간판에 한자를 병기한 건물들이 줄서 있다. 프놈펜 시내 다른 곳도 크게 다르지 않는데, 이들 업소는 거의 중국계 캄보디아인이나 화교들이 주인이다. 캄보디아 상권의 80% 정도를 이들이 쥐고 있다는 말이 과장은 아닌 듯하다. 캄보디아의 중추적인 제조업은 봉제인데 화교들이 운영하는 공장이 100여 개로 전체의 20%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사업상 캄보디아에 진출해 있는 화교도 다양하다. 중국 본토인이 있는가 하면 대만계 홍콩계 말레이시아계 싱가폴계 태국계 중국인 등이 혼재되어 있다. 출신지가 다르지만 중국계 캄보디아인과 더불어 이들은 캄보디아에서 거대 중국인 세력으로 자리잡고 있다.

캄보디아 국민의 90%는 크메르인으로 남방계나 인도 아리안계로 알려져 있다. 그 다음으로 많은 민족이 중국계인데 앙코르 유적군의 여러 벽화에도 중국인의 모습이 등장할 정도로 그 역사적 근원은 매우 길다. 태국과 베트남, 라오스를 아우르던 앙코르 제국이 바로 중국 대륙과 맞닿아 있던 관계로 오래 전부터 중국인들이 남하해서 자연스럽게 크메르인과 섞여 살게 된 것으로 보인다. 이렇다 보니 중국인이나 한국인과 같은 피부와 용모를 가진 캄보디아인을 흔히 만나게 된다. 이런 사람들에게 중국인이냐고 물어보면 별로 탐탁해하지 않는다. 자신의 부모나 그 윗대가 중국계일 뿐 자기는 캄보디아인이라고 자신있게 말한다. 피부나 얼굴 모양이 순수 크메르인과 달라도 캄보디아 사람들은 이상하게 생각하거나 차별하지 않는다. 정부 고위층이나 국회의원 중에도 중국계 캄보디아인이 꽤 있고 캄보디아 재벌 중에도 여럿이 있다.

폴포트의 악정에 가장 큰 타격을 받은 사람들이 중국계 캄보디아인들이었다. 일반 캄보디아인들보다 비교적 학력이 높고 재력이 있었기 때문에 그 만큼 학살과 핍박이 가혹했다. 많은 사람들이 이웃 나라로 몸을 피했으나 엄청난 숫자가 크메르루즈에게 죽임을 당해야 했다. 캄보디아가 내전을 치루고 정치적인 안정을 찾은 것이 20년이 채 안 되고 경제적 부흥을 이루기 시작한 것은 그보다도 훨씬 짧다. 그러나 중국계 캄보디아인과 화교들은 불과 십 수 년 사이에 캄보디아 상권을 좌지우지하는 세력으로 부상했다. 대형 쇼핑센터, 호텔, 음식점, 금은방, 도소매상 같은 서비스 업종은 물론 건물 임대업이나 대부업 같은 업종도 그들이 선도해 나가고 있다. 그들만의 특출한 상술과 친화력, 근면성으로 불모지나 다름없는 땅에 찬란한 꽃을 피워 내고 있는 것이다. / 한강우 한국어전문학교 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