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캄보디아 더 알아보기] 제102화 캄보디아 수도, 프놈펜의 전설과 유래

기사입력 : 2022년 07월 29일

01▲ 2021년 프놈펜

프놈펜은 오늘날 캄보디아의 수도로서 경제, 산업, 문화의 중심지이다. 앙코르제국이 멸망한 후 앙코르톰(씨엠립)에 이어 1434년-1497년에 크메르 왕국의 수도가 되었다. 이후 프랑스 식민지 시기인 1865년에 노로돔왕이 프놈펜을 다시 수도로 정하면서 오늘날에 이르렀다. 한때 “아시아의 진주”로 알려졌던 프놈펜은 1960년대 록 밴드, 재즈 연주자, 영화, 예술, 뉴크메르 건축 등으로 활기찬 도시 경관의 중심지였다. 지리적으로는 똔레삽, 메콩강 및 바싹강이 만나는 짝또목강 유역에 위치하며 캄보디아 인구의 약 14%인 200만 명 이상이 거주한다.

프놈펜으로 불리기 전 1372년까지 짝또목이라고 불렸다. 당시 이 도시의 강 근처에 ‘펜(현지발음: 뻰)’이라는 부자 할머니가 살고 계셨다. 어느날 그녀는 강둑에 나갔다가 폭우에 떠밀려온 거대한 꼬끼나무가 강한 물살을 일으키며 회전하는 것을 보았다. 여기서 꼬끼나무(Hopea 또는 Shorea속)는 인도 문화권에서 신성시되는 나무의 일종으로 석가모니 부처의 열반의 순간을 지켜본 나무로도 알려져 있다. 동남아시아의 불교국가에서는 이때의 나무를 사라수(Sal tree)라 부르며 귀하게 여긴다. 캄보디아의 꼬끼나무는 물축제 기간에 치러지는 보트 경기용 용선의 주재료로도 쓰일 만큼 물에 강하면서 단단하고 가벼운 목재이다.

펜 할머니가 동네 주민들을 동원해서 끌어올린 거대한 꼬끼나무 안에는 청동제 부처 좌상 네 점과 석조 신상 한 점이 모셔져 있었다. 신상은 입상으로 한 손에는 곤봉과 다른 한 손에는 소라 껍데기를 들고 있었다. 이를 토대로 인도 신화에서 최고의 신으로 알려진 비슈누 신상의 일종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곤봉은 비슈누 신이 가진 권능을 상징하고 소라 껍데기는 비슈누신이 물리친 악마의 뼈가 변한 것으로 모든 악을 퇴치한다는 의미가 담겨 있다.

펜 할머니와 주민들은 이러한 신물의 출현을 큰 경사로 여기고 높은 언덕(프놈)을 쌓고는 그 위에 꼬끼나무를 기둥으로 세운 사원에 네 분의 부처 좌상을 모셨다. 그리고 신상은 라오스에서 온 것으로 추측해서 언덕 아래의 동쪽에 제단을 꾸리고 모셨다. 이후부터 사원과 도시는 할머니의 이름을 따서 오늘날까지 ‘프놈펜’으로 불린다. 이곳의 불상과 신상은 모두 강력한 힘과 권위가 있어서 누구라도 기도하면 소원이 이뤄진다고 현지인들은 믿고 있다.

02▲ 캄보디아의 암흑시대 16세기 중반, 국제무역항으로 활기를 띄던 프놈펜의 모습

60여년 후 크메르왕국의 수도로 부상하면서 프놈펜은 상업도시로 번영하기 시작했다. 당시 크메르왕국은 태국의 잦은 침략을 방어할 수 없던 씨엠립을 포기하고 1434년에는 짝또목, 1529년에는 롱와엑으로 수도를 이전했다. 짝또목과 롱와엑 시대에 크메르왕국은 메콩 삼각주(메콩 델타)를 통해서 크메르 심장부, 태국 및 라오스 왕국의 하천 상거래를 통제하여 중국 해안, 남중국해 및 인도양을 연결하는 국제 무역 경로로서 활기를 띄었다.

한편, 19세기부터 1940년대까지 식민지 지배자로 있던 프랑스는 주택, 교회, 길, 시장 등에 프랑스 스타일을 남겼다. 1953년 독립을 전후해서부터 노로돔 시하누크 국왕의 강력한 리더십에 힘입어 1960년대는 근대 캄보디아의 황금시대를 구가했다. 프놈펜은 당시 도시계획을 담당하는 완 몰리완(Vann Molyvann, 1926-2017)일 비롯한 뉴크메르 건축가들이 크메르 전통양식과 현대 조형예술이 접목된 건축물로 도시 조경을 수놓았다. 이때 동남아시아 대부분의 도시들이 부러워했던 것으로도 잘 알려질 만큼 프놈펜은 밝고 유망한 미래가 있었다.

오늘날은 경제 발전과 외국 자본의 유입에 따른 난개발로 프놈펜은 지난날 흑백 필름에서 보던 모습이 점차 사라지고 있다. 한때는 고풍스럽고 멋들어진 옛 건물을 찾아보는 재미가 쏠쏠했는데 이제는 블링블링을 추구하는 미래 도시의 전망 앞에서 뒷전이 됐다. 전통의 가치도 퇴색해서 길거리는 소음 규제를 이유로 결혼식을 볼 수 없게 했다. 대신에 밤에는 가라오케에서 취객들이 고성방가를 지르고 낮에는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공사하는 소음으로 뭔지 모를 씁쓸함을 더한다.

 

80-이영심

글 이영심

왕립프놈펜대학교 한국어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