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캄보디아 더 알아보기] 제57화 뜨러썩빠엠 왕, 상좌부 불교 박해 종식 및 공인

기사입력 : 2021년 03월 12일

뜨러썩빠엠(Trasak Paem; 1221-1340) 왕은 크메르제국 제29대(통치: 1336-1340) 왕이다. 캄보디아어 ‘뜨러썩’은 ‘오이’를 뜻하고, ‘빠엠’은 ‘달콤하다’를 뜻하는데, 이렇게 ‘달콤한 오이’는 한국의 참외, 서양의 멜론과 유사한 품종이다. 지금까지 들었던 크메르제국 왕의 이름은 앙코르와트를 건립한 수리야바르만(의미: “태양의 수호자”) 2세, 앙코르톰을 조성하고 바이욘 사원을 건립한 자야바르만(“승리의 수호자”) 7세와 같이 어려우면서도 위엄이 느껴지는데, 이와는 좀 생뚱맞은 ‘달콤한 오이’라고 하니까 너무나 서민적이어서 좀 의아스럽다.

수정됨_57-03▲ 캄보디아에서 과일빙수에 들어가는 ‘뜨러썩빠엠’으로 ‘뜨러썩쓰러으’로도 불린다.

이 왕의 이름은 캄보디아 대학생들에게 한국문학 ‘서동설화’를 가르쳤을 때 처음 알게 됐다. 그때 어떤 학생이 비교문학적인 접근을 강조하는 독후감 과제로 제출한 감상문에서 ‘뜨러썩빠엠 왕’ 이야기를 언급했다. ‘뜨러썩빠엠’이라는 인물은 가난한 농부로서 서동(의미: ‘마를 파는 아이’)과 같이 미천한 출신이었는데 왕의 사위가 되고 종국에는 한 나라의 통치자가 된다는 점과 역사적으로 실존 인물이라는 점에서 두 이야기는 맞닿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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뜨러썩빠엠 왕과 관련하여 전하는 이야기는 대체로 다음과 같다. 뜨러썩빠엠은 똑똑한 농부로 세상의 어떤 참외보다 더 달콤하고 맛있는 참외를 길러냈다. 그는 수확한 참외를 왕에게 진상했고, 이에 대단히 만족했던 왕은 그에게 모든 참외를 자신을 위해서 지키도록 명령하면서 창을 하사했다. 어느날 밤, 왕은 그의 농장에 몰래 들어갔다가 의도치 않게 도둑으로 오인 받는다. 그때 뜨러썩빠엠은 왕이 하사했던 창을 던졌고 왕을 맞혀 죽게 했다. 그 후에 모든 관리는 새 왕으로 뜨러썩빠엠을 추대했다.

수정됨_57-01▲ 왕이 뜨러썩빠엠에게 오이 농장을 지키도록 창을 하사하는 장면

 

캄보디아 역사는 뜨러썩빠엠 왕이 1336년에 왕좌에 오르자 마침내 브라만주의자들과 불교주의자들 간의 분쟁이 종식됐다고 기록한다. 그 이전까지 어떤 왕은 브라만교를 숭상했고 어떤 왕은 불교를 숭상했다. 이처럼 통치자의 관심사에 따라 국가의 종교는 수시로 갈아치워졌고, 그때마다 다양한 ‘신’을 추종하는 브라만주의자는 대승불교와 달리 ‘신’의 존재를 부정하는 상좌부 불교주의자들과 대립할 수밖에 없었다.

상좌부 불교는 자야바르만 7세 왕(통치: 1181-1218)의 아들인 타말린다 왕자가 스리랑카에서 승려가 되어 팔리어(Pali) 경전을 연구한 뒤에 수세기 전부터 캄보디아 전역에 이미 전해져 있었던 상좌부 불교를 활성화함으로써 부흥하기 시작했다. 이에 대해서 브라만교나 인드라(Indra) 신을 추종하는 사람들은 상좌부 불교주의자들에 대한 반감을 품게 됐다.

수정됨_57-02▲ 자야바르만 7세 사후 브라만주의자들에 의해서 불상 조각이 도려내진 쁘레아칸 사원의 모습

 

이후 자야바르만 8세 왕(1243-1295)이 브라만교를 새롭게 선호하면서 그동안 억눌렸던 브라만주의자들은 상좌부 불교를 박해하도록 신도들을 부추겼다. 그들은 상좌부 불교의 수도원을 파괴하고 불상을 넘어뜨려 박살냈다. 벽과 기둥의 부처상을 깎아내고 그 자리에 시바신의 남근상이나 은둔자를 조각해 넣었다. 브라만인들의 이러한 행위는 불교주의자들을 자극해서 맞서 싸우도록 했고 크메르인의 분열을 가중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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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학자에 따르면, 뜨러썩빠엠 왕은 전왕(자야바르만 9세)을 죽이고 브라만교 또는 인드라(Indra) 신적 이데올로기를 전복시킨 혁명적 지도자이다. 그는 왕실의 정원사 출신으로 공주와 혼인하여 새 왕조를 열었고 캄보디아 사회에 많은 변화를 만들었다. 이때부터 상좌부 불교는 국가의 공식적인 종교가 되었고 브라만인들은 오늘날까지 영향력을 잃었다. 모든 교육은 상좌부 불교 승려의 통제 하에 이뤄졌으며, 더이상 산스크리트어로 문헌을 작성하지 않았다.

뜨러썩빠엠 왕 이후부터는 왕호에 더이상 “바르만(수호자)”이라는 말도 사용하지 않게 됐다. 상좌부 불교적 수행법을 연마하는 “왓아람(수도원)”은 전역에 산발적으로 생겨났다. 뜨러썩빠엠 왕은 상좌부 불교의 철학에 따라 새롭게 정비한 정부를 다스렸다. 당시에 캄보디아는 이전 시대만큼 강력하지는 못했어도 제국으로서의 캄보디아왕국은 융성했던 것으로 평가된다./왕립프놈펜대학교 한국어학과 이영심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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