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세안 칼럼] 우리나라와 아세안(ASEAN) 간의 경제협력 관계 개관

기사입력 : 2020년 03월 13일

대화관계 수립 30주년

작년 2019년은 우리나라가 아세안과 대화관계를 수립한지 30주년이 되는 해였다. 11월에는 대화관계 수립 30주년을 기념해서 부산으로 아세안 10개국 정상들을 초청하여 ‘한-아세안 특별정상회의’도 개최했다. ‘대화관계’라는 것은 ‘아세안’이라고 하는 동남아 10개 국가의 공동체와 일종의 외교관계를 수립한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우리나라는 호주, 뉴질랜드, 캐나다, EU, 미국, 일본에 이어 일곱 번째로 1989년 아세안과 대화관계를 수립했고, 이후 중국, 인도, 러시아가 추가돼서 지금은 아세안의 대화상대국이 10개에 이르고 있다.

우리가 아세안과 대화관계를 맺은 1989년은 TV 드라마 ‘응답하라 1988’과 같은 시대였다. 1988년 서울올림픽을 치렀고 1989년 해외여행이 완전 자유화되었다. 시중은행의 정기예금 금리는 10%에 달했다. 지금은 쉽게 상상하기 힘들지만 1989년 국내 자동차 등록대수는 266만 대, 인구 100명당 6대 꼴이었다. 이 해 우리나라 1인당 GDP는 5,736달러였는데 지금의 5분의 1 수준에 불과했지만, 이 시기 우리 경제는 연간 10% 안팎으로 성장하는 기염을 토하던 고도성장기였다. 이렇게 한 세대 전에 이미 아세안과 대화관계를 수립한 것을 지금 돌이켜보면 남다른 선견지명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요즘은 아세안과 새롭게 대화관계를 수립하고 싶어 하는 나라들이 줄을 섰는데도 아세안이 잘 받아주지 않는 실정이니 말이다.

작년 우리나라와 아세안의 교역액은 1,513억 달러였는데, 1989년 교역액이 82.3억 달러였으니 30년 동안 약 18배로 늘어났다. 같은 기간 우리나라의 전체 교역액은 약 8배로 늘었으니 아세안과의 경제협력 비중이 상대적으로 크게 늘어난 것으로 볼 수 있다. 이와 같이 교역이 크게 늘어난 주요 원인으로 아세안에 대한 우리나라의 투자가 증가한 것을 들 수 있다.

1989년 우리나라가 아세안 10개 국가에 투자한 금액은 모두 합쳐 1억 달러가 채 안됐었지만 2019년 한 해동안 아세안에 투자한 금액은 59억 1,930만 달러로 60배 이상 늘었다. 지난 30년간 우리나라의 아세안에 대한 투자는 두 번에 걸쳐 큰 폭의 증가가 있었는데, 1990년대 초반에 한 차례 크게 늘었고, 2006년을 기점으로 다시 한 차례 크게 늘었다. 1990년대 초반에는 우리나라 경제가 본격적인 확장기에 있었고 주요 국가를 향한 우리나라의 투자도 동시에 늘던 시기였다. 그러나 2006년 무렵은 상황이 달랐다. 아세안에 대한 투자는 급증한 반면 중국에 대한 투자는 꺾이기 시작했다. 결국 2010년에 아세안에 대한 우리나라의 투자는 대중국 투자를 추월했고, 이 추세를 계속해서 유지하고 있다.

우리나라와 아세안 간의 FTA 상품협정은 2007년, 서비스 및 투자협정은 2009년에 각각 발효됐다.한-아세안 FTA는 우리나라가 다른 국가와 네 번째로 맺은 자유무역협정이며, 2012년 발효된 한-미 FTA보다 5년 앞선다. 우리나라와 아세안 간의 교역과 아세안에 대한 투자가 급격히 늘어나게 된 배경에 바로 한-아세안 FTA가 있었다고 할 수 있다.

thumb-1729653492_1582710544.3342_600x377▲ 한·아세안 대화관계 30주년을 기념 2019 한-아세안 특별 정상회의 기념촬영 (출처= 청와대)

 

아세안경제공동체

아세안은 2007년 ‘아세안경제공동체(AEC, ASEAN Economic Community) 청사진’을 발표하면서 경제공동체를 향한 긴 여정의 첫 발을 디뎠다. 2010년까지 한국(2007년 발효), 중국(2010년), 일본(2008년), 호주/뉴질랜드(2010년), 인도(2010년) 등 6개 국가와 아세안 간 FTA를 맺었고, 2010년에는 아세안 10개국 간의 자체 FTA인 ATIGA(ASEAN Trade-in-Goods Agreement)를 발효시켰다. 이제 아세안과 FTA 관계를 맺고 있는 6개 국가와 아세안 10개 국가가 동시에 참여하는 거대 FTA를 생각하기에 이르렀는데, 바로 2012년 아세안은 이들 16개 국가가 모두 참여하는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CEP, Regional Comprehensive Economic Partnership)’ 협상 개시를 선언하게 된다.

원래는 협상개시 3년 만인 2015년에 RCEP을 타결한다는 야심찬 계획이었지만 타결 시한은 매년 연장됐고 현재의 목표는 2020년내에 서명을 하는 것으로 돼있다. 작년 11월에는 RCEP 참여국 중 인도를 제외한 15개 국가간에 협정문이 타결되었음을 선언했는데, 현재 RCEP에서 가장 큰 이슈는 인도가 RCEP에 복귀할 것인지 아니면 인도가 빠진 채로 15개국 간에 RCEP 협정이 체결될 것인지다.

RCEP이 원래 계획대로 16개국 간에 타결될 경우 전세계 인구의 절반 가까이 되는 36억 명의 인구가 포함되고 세계 GDP의 3분의 1을 아우르는 명실상부한 세계 최대의 자유무역협정이 탄생하게 된다. RCEP에 포함되는 인구 36억 명의 구성을 살펴보면 중국과 인도가 각각 약 14억 명으로 38% 내외를 각각 차지하고, 아세안이 약 6.5억 명으로 18%를 차지한다. 인구 면에서 중국, 인도, 그리고 아세안을 포함한 한국, 일본, 호주 등 나머지 국가가 각각 3분의 1 정도를 차지하면서 나름 균형을 이루고 있다고 볼 수 있다. GDP의 경우 중국이 RCEP 전체 GDP 중 절반에 이르는 48%를 차지하며, 인도의 경우 전체 GDP의 약 11%를 차지한다.

하지만 RCEP에서 인도가 빠질 경우 RCEP에 포함되는 인구는 22억 명으로 줄게 되는데, 이 중 중국 인구가 14억 명으로 RCEP 전체 인구의 약 62%, 즉 3분의 2 가까이 중국이 차지하게 되며, 중국이 차지하는 GDP 비중도 54%로서, 절반을 넘기게 되면서 균형추가 중국 쪽으로 쏠리게 된다.

다시 아세안 자체 FTA인 ATIGA로 돌아가면, 지난 2010년 발효된 이후 관세 감축 일정에 따라 자유화를 단계적으로 진행해 왔으며, 2018년 1월 1일 부로 아세안 10개국 간의 역내 관세가 전면 철폐됨으로써, 아세안은 단일 경제권으로서의 면모를 갖추게 되었다.

아세안은 역내 교역을 활성화하기 위해서 ‘아세안 싱글 윈도우’ 사업을 추진해 왔다. 아세안 싱글 윈도우란 한 마디로 아세안 국가간 전자 통관 시스템이다. 원산지 증명서인 ‘Form-D’를 비롯해서 모든 절차와 서류 제출이 전자적으로 진행된다. 우선 각 국가별 전자 통관 시스템인 ‘내셔널 싱글 윈도우’를 만들었으며, 이를 국가간에 연계한 것이 ‘아세안 싱글 윈도우’다. 지난 2005년 아세안 10개국은 아세안 싱글 윈도우를 만들어 통관 시스템을 상호 연계하기로 합의하였고, 13년이 지난 2018년 1월 1일 부로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싱가포르, 태국, 베트남 5개국만으로 구성된 아세안 싱글 윈도우가 우선 가동되었다. 그리고 2019년말 아세안 10개국이 모두 참여하는 아세안 싱글 윈도우가 완성되기에 이르렀다.

thumb-1729653492_1582711806.5192_600x450▲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 (이미지 출처=아세안 홈페이지 asean.org)

 

아세안 연계성 마스터플랜

아세안이 추진하고 있는 또 하나의 중요한 정책으로 ‘아세안 연계성 마스터플랜(MPAC, Master Plan on ASEAN Connectivity)을 빼놓을 수 없다. 아세안은 1967년 출범한 동남아 10개 국가의 공동체이지만 서로 문화, 제도, 종교, 민족 등이 매우 다르고 경제발전 단계도 상이해서 이들 10개 국가를 공동체로 엮을 수 있는 구심점이 마땅치 않은 아쉬움이 있었다. 이들 개별 10개 국가를 서로 연결함으로써 본래 의도했던 공동체의 모습에 좀더 부합하고자 시도한 것이 바로 ‘아세안 연계성 마스터플랜’이다.

아세안 연계성 마스터플랜은 크게 물리적 연계성, 제도적 연계성, 인적 연계성으로 구성되는데, 물리적 연계성은 아세안 국가간 이동을 원활하게 하도록 철도, 도로, 공항, 항만과 같은 물리적 인프라를 확충하는 것이고, 제도적 연계성은 통관, 표준, 자격제도와 같은 것들을 국가간에 연계하는 것이다. 인적 연계성은 아세안 국가 간에 전문인력을 포함한 여러 종류의 인적 교류를 활성화하기 위한 것이다.

하지만 아세안 연계성 사업들이 모두가 순조롭게 추진되고 있지는 않은 것으로 보인다. 예를 들어 국경을 관통하는 고속도로나 철도를 놓는 사업의 경우, 아직 경제발전단계가 낮고 물동량도 많지 않아 상당 수의 사업이 단기 수익성이 좋지 않을 것으로 예상되어 대규모 민간 자본이 쉽게 들어오지 못하기 때문이다. 아세안은 이런 연계성 사업에 대해 높은 우선순위를 두고 대화상대국이나 다른 역외국들의 도움을 적극적으로 요청하고 있다.

 

한-아세안 경제협력 관계의 미래

2017년 우리나라는 아세안, 인도와의 관계를 미국, 중국, 일본, 러시아와 같은 4강 수준으로 끌어올리고자 하는 ‘신남방정책’을 천명했다. 아세안은 우리나라와 경제협력 관계로만 놓고 본다면 이미 4강을 넘어 그 이상이다. 아세안은 우리나라의 2대 교역대상(중국 다음)이자 2대 투자처(미국 다음)다. 중국 경제가 점차 고도화되면서 미국과 중국 간의 패권 경쟁도 장기화될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중국 변수를 우회할 투자처로서 우라나라는 물론, 미국, 중국, 일본 등 여러 국가가 아세안의 전략적 가치에 주목하고 있다. 미국을 중심으로 한 ‘인도-태평양 전략’과 중국의 ‘일대일로’ 이니셔티브가 조우하는 지점도 아세안이다. 현재도 그렇지만 앞으로 아세안을 무대로 한 열강간 각축은 더욱 거세질 것으로 보고 있다.

이런 열강의 틈 속에서도 그동안 우리나라는 아세안에서 대체로 잘 해왔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아세안 수입시장 점유율에서 우리나라는 중국, 일본, EU, 미국 다음으로 5위를 차지하다가 지난 2017년에 미국을 제치고 4위로 올라섰다. 코트라의 ‘해외진출 한국기업 디렉토리’에 따르면 2019년 기준으로 이미 5,000여 기업이 아세안에 진출해 있다. 삼성전자는 단일 기업으로서 베트남 전체 수출의 35%를 차지하고 있으며, 현대차도 인도네시아에 완성차 공장 설립을 추진함으로써 일본 차 일색인 아세안 자동차 시장에 출사표를 던졌다.

우리나라와 아세안 간의 경제협력 관계는 양적으로 확대되는 한편 질적으로도 고도화되는 과정에 있고 그 속도가 점차 빨라지는 모양새다. 물 들어올 때 노 저으라고 했던가, 이 여세를 몰아 세계 열강의 경쟁 무대에서 우리만의 확고한 자리를 잡도록 철저한 준비가 필요한 때다./박근오 주아세안대표부 상무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