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우칼럼] 캄보디아 건기 풍경

기사입력 : 2012년 12월 21일

새벽에 운동을 하러 옥상에 올라가곤 하는데 요즘은 오래 있지 못하고 내려올 때가 있다. 가벼운 옷차림으로는 좀 춥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기온이 내려가기 때문이다. 선선한 바람이 불고 바람의 방향도 바뀌었다. 우기에는 남서풍이나 서풍이 부는데 요즘은 주로 북동풍이 분다. 아침저녁뿐만 아니라 한낮에도 바람이 제법 시원해서 거의 땀을 흘리지 않고 하루를 보낼 수 있다. 공터에 무성하던 잡초들이 누런빛을 띠며 사그러들고 마당에는 낙엽이 뒹굴기도 한다. 나무는 여전히 푸른 잎을 달고 있지만 노쇠한 잎들을 떨궈 냄으로써 수분 증발을 최소화하여 건기를 버티려는 식물의 본성 때문이리라.

프놈펜의 외곽 도로에 나가보면 흙을 실어 나르는 대형 트럭들이 꼬리를 물고 달리는 것을 볼 수 있다. 우기에 물이 차는 곳을 돋워서 대지나 공장부지로 만드는 작업이 시작된 것이다. 요즘 프놈펜 시내외 어디를 가도 이런 풍경은 쉽게 눈에 띤다. 프놈펜을 중심으로 반경 50km 이내는 어디를 막론하고 표고차가 2~3m에 불과해서 집을 짓기 위해서는 필히 지반 돋우는 작업을 해야 하는데, 이런 작업은 대개 비가 잦은 우기를 피해서 건기에 한다. 캄보디아만큼 흙 값이 비싼 나라도 드물 것이다. 멀리서 실어 와야 하기 때문이다. 땅을 사서 집을 짓는 데 땅값보다 흙 값이 더 들어가는 경우도 흔히 있다고 한다.

도로 보수 작업도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곳곳에서 웅덩이를 메우고 아스팔트 때움질을 하고 있다. 몇 년을 자세히 관찰해 보니 늘 같은 곳에서 같은 공사가 되풀이되는 것을 알게 되었다. 애초에 탄탄하게 공사를 하지 않아서 그렇다고 볼 수도 있지만 지반 자체가 거의 수면 바로 위에 떠 있는 형상이라 공사를 완벽하게 하기도 어렵다는 생각이 든다. 도로 파손의 주범은 규정 적재정량의 두세 배를 싣고 달리는 화물 차량들이다. 프놈펜 외곽 곳곳에 대형 차량 진입 차단기를 설치해 놓았지만 시내를 달리는 과적 차량은 여전히 눈에 띤다. 도로 보수 공사가 연례행사에서 빠지기는 어려울 것 같다.

주말에는 결혼식이 홍수를 이룬다. 집 앞 도로까지 점유해서 포장을 치고 주위를 쩌렁쩌렁 울리게 확성기를 틀어대면서 주로 코스 요리를 준비해서 손님을 맞는다. 이것이 결혼식의 마지막 절차인 피로연인데도 우리의 눈으로는 매우 성대하게 보인다. 이미 하루 이틀 전부터 신랑 신부 양가와 친척 친지들이 참여하는 결혼식 절차를 거쳐서 마지막 날에 일반 손님을 초대하는 피로연 행사를 갖는 캄보디아의 결혼식, 기껏해야 서너 시간이면 다 끝나는 한국의 결혼식을 캄보디아와 비교하면 매우 초라하다는 느낌이 들기도 한다. 결혼식이 주로 건기에 집중되는 것은 비에 의존해서 농사를 짓는 캄보디아 사람들의 오랜 농경 생활에서 기인한다. 농한기를 이용해서 대사를 치르는 것이다.

건기가 되면서 더 바빠지는 사람들도 있다. 톤레삽 호수를 비롯한 크고 작은 호수나 강에서는 지금 물고기 잡이가 한창이다. 마을 가까이에 있는 수로나 웅덩이에서도 그물을 던지거나 낚시질을 하는 사람들이 흔하다. 우기에 땅인지 호수인지 구분하기 어려울 정도로 침수가 됐던 곳에서 물이 빠지면서 살진 물고기들이 물을 따라 아래로 아래로 몰려들어서 ‘물 반 고기 반’이라는 말이 지나친 과장이 아니다. 잡은 물고기는 요리를 해서 그냥 먹기도 하지만 일부는 말리거나 저리거나 젓갈을 만들어 두고 먹는다. 캄보디아에서 소비되는 어류의 80% 정도가 민물고기라고 한다.

댓글 남기기

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