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우칼럼] 사람을 안다는 것

기사입력 : 2012년 11월 23일

침상에 까는 돗자리를 사 오라고 직원에게 10달러를 줘서 내 보냈다. 며칠 전에 똑같은 것을 7달러에 산 적이 있기 때문에 가게에서 8달러 정도를 부를 테니 1달러쯤 깎아서 사 오라는 당부와 함께. 그러나 저녁에 영수증을 체크해 보니 구입 가격이 9달러, 직원을 불러서 물어 보니 10달러 달라고 해서 1달러 깎은 것이라고 했다. 또 한 방 얻어맞았다는 생각이 들어 기분이 씁쓸했다. 돈 2달러 때문이 아니다. 캄보디아 사람들의 의식을 아직도 잘 이해하지 못하고 그들의 마음과 소통하지 못하고 있는 내 자신의 내적 갈등 때문이다. 학교를 시작하면서 크고 작은 많은 물품들은 거의 손수 구입했다. 값이 좀 나가는 기자재부터 하찮은 수건 한 장까지. 처음에는 외국인이 물건을 사러 가면 값을 올려서 부르기 때문에 현지인을 시키는 것이 더 유리할 것이라는 생각에 직원만 내 보내기도 했다. 그러나 얼마 안 가서 그렇게 하는 것이 별 효과가 없음을 알았다. 오히려 질도 좋지 않은 물건을 더 비싸게 사 오기 일쑤였다. 캄보디아 사람들은 직원이라 하더라도 주인이 물건을 흥정할 때 거의 도움이 되지 못한다. 값을 깎으려 하거나 가게 주인을 설득하는 것을 꺼려한다. 함께 일하는 직원인데도 이럴 때에는 같은 캄보디아인의 이익 편에서 행동한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순박하고 온화한 사람들이라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얼마 전에 캄보디아를 여행하고 돌아간 분이 보내 온 메일 내용의 일부다. 캄보디아에 처음 와서 느낀 나의 인상이나 다름이 없다. 캄보디아에서 수년 생활하면서 캄보디아 사람들에게 갖고 있는 지금의 생각도 그와 크게 다르진 않다. 그러나 그들과 부딪치면서 살다 보니 또 다른 면면들을 발견하게 된다. 캄보디아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순박하고 온화하지만 어느 순간에는 냉정하고 영악한 면이 상존한다는 것이다. 함께 일을 해 보거나 이해관계가 맞물린 경우에는 후자의 경우가 절대적이라는 게 나의 생각이다. 특히 자신의 이익에 관련된 부분에 관해서는 매우 철저하다. 직장에서도 그렇고 사회에서도 그렇다. 최선을 다하고 그에 따른 보상을 받기보다는 정해진 범위 내에서 일을 하려고 한다. 그래서 직장에서도 시키는 일은 그냥저냥 해 내는 편이지만 주도적으로 자신의 일을 처리하는 능력은 상당히 떨어진다. 일의 질보다는 일한 시간에 따라 대우를 받으려는 속성이 강하다. 한국인의 의식과 매우 차이가 나는 부분이요, 캄보디아인들과 일을 하고 있는 한국인들이 종종 답답해하는 부분이기도 하다.

사람 속을 알아내는 것만큼 어려운 일이 있을까? 하물며 민족이 다르고 역사가 다르고 언어와 문화가 다른 이국인의 의식과 마음을 읽어 내는 일은 더더욱 어려울 수밖에 없다. 그렇지만 그들 속에서 그들과 함께 살고자 한다면 그들을 이해하려는 노력은 필요하다고 본다. 캄보디아의 역사를 들여다보면 근세의 역사는 피지배의 역사요 혼란과 상처의 역사였다. 오랫동안 프랑스 보호령으로 있으면서 생활과 의식 곳곳에 그 흔적이 배여 있다. 개인주의적이라든지 이해관계를 분명히 따진다든지 하는 서구적 사고가 한국인들보다 더 강한 이유가 여기에서 기인한다고 본다. 장기간에 걸쳐 생사를 가르는 내전에 휘몰리고 다른 나라의 지배와 간섭이 있었던 관계로 미래보다는 현재의 삶이 더 절실했기 때문에 당장의 안위와 눈앞의 이익이 그들에겐 더 중요했을 것이다. 외국인을 경계와 이익 실현의 대상으로 보는 것도 그와 무관하지 않다. 압사라의 온화한 미소와 농경민족의 순박함을 간직하고 있는 동시에 치열한 생존 방식이 그들의 의식 속에 깃들여 있다고 생각한다. ‘열 길 물 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는 한국 속담이 있다. 그렇게 사람을 안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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