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순 칼럼] 오늘의 매직

기사입력 : 2017년 04월 11일

캄보디아 더위의 절정 ‘쫄츠남’이 가까워오나 보다. 아침 운동이랍시고 스트레칭 몇 번 했더니 농구라도 한 게임 뛴 것 마냥 땀이 흥건하다. 그만 씻자싶어 욕실로 가다보니 아침 먹은 게 그대로다. 그제야 전날 도우미가 그만둔 사태를 실감했다. 솜씨가 젬병인 친구는 앓느니 죽자 싶고, 제법이다 싶은 친구는 오래가지 못하곤 한다. 어느 직종이나 마찬가지로 몸값을 불리며 여기저기 옮겨 다니는 부류가 있게 마련이다. 실속이직과 근속승진 중 뭐가 유리한지 따져보지 않았지만, 스스로 똑똑하다고 믿어 의심치 않는 정도의 영리함이 갖는 한계라고 할까.

귀찮은 일 후딱 해치워버리자 싶어 걷어붙이고 설거지부터 하기로 했다. 자잘한 그릇을 닦달해 두고 채반을 닦는데 해묵은 물때가 눈에 띈다. 알고도 그냥 넘기기가 그리 쉬운 노릇인가. 채 살 안팎으로 켜켜이 닦는 수밖에. 이왕 시작한 거 멸치라도 볶아 둘까? 멸치란 놈은 한눈을 팔면 분신투쟁하기 일쑤라 부지런히 뒤적이다 보니 가스레인지 주변이 기름과 멸치 잔해로 어지럽다. 단체 대화방 댓글은 한창일 때 다는 게 제격이듯 기름 청소는 달궈졌을 때 해치워야지, 가스레인지를 닦기 시작했다. 노브, 걸쇠 틈새에 눌러 붙은 기름때가 하필 눈에 띌 게 뭐람. 이쑤시개까지 동원해 찌든 때와 전쟁을 벌였다. 놀리면 뭐하나, 사이사이 노는 세탁기도 돌리고 빨래도 반반하게 쓰다듬어 개켜 넣었다. 손이 바쁠수록 마음은 헐렁해져 시간개념을 놓치게 된다. 뚜 뚜 뚜, 마침 현관문 번호키 누르는 소리가 났다. 우리 집 현관문을 자신 있게 열고 들어 올 인사는 프놈펜에 단 한 사람밖에 없다. ‘이 인간이 어디 아픈가?’싶던 차에, “점심 먹어야지”한다. 오늘따라 오전에 처리하기로 한 일이 많았는데, 뒤늦게 아차 싶었다. 타이머는 요리할 때뿐만 아니라 가사일할 때도 써야할 것 같다. 우리가 입에 넣고 몸에 걸치며 생활하는 모든 것들이 누군가의 시간을 훔쳐오는 일인지도 모르겠다.

몇 년 전인가 이사에 맞춰 매직블럭이라는 물건을 알게 되었다. 물에 적셔 슬슬 문지르면 찌든 때가 쏙 빠지는 스펀지다. 짐을 정리하면서 책상 하나를 닦았는데 환골탈태가 따로 없었다. 말 그대로 매직. 다 같이 적당히 타락한 조직에 똘똘한 신참이 나타난 형국이 그러려나? 갑자기 모든 집기가 참을 수 없는 지경으로 보였다. 사람이고 물건이고, 빼어난 것의 등장은 재앙이 되기 마련 아니던가. 급기야 연일 세간에 매직세례를 퍼붓다가 모니터까지 닦아 사고를 친 후에야 멈췄던 것 같다. 야근이 다반사였던 시절 “현장의 이슬로 사라지다”가 묘비명이 될 거라고 농담하곤 했는데, 맹추 같은 기질로 보아 그 말이 씨가 될 듯싶다.

머리 좋다는 기준이 모호하지만 공통적으로 집중력 좋은 점을 꼽는다. 성공은 대체로 오랜 집중에 따르는 대가라는 사실과 집중하는 모습이 섹스어필하다는 사실, 머리가 좋아서 그렇기도 하고 머리 좋은 사람이라면 이 사실을 벌써 간파하고 실천하는(무슨 말을 하려는 건지)… 그러나 확실한 건 명민한 집중과 미련한 집착 사이 경계가 매우 불분명하다는 사실이다. /나 순 (건축사, 메종루비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