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인 칼럼] 片雲居 같은 인생

기사입력 : 2012년 10월 23일

요즘은 아침저녁이 확실하게 소슬합니다. 차갑다고 하기에는 무리가 있지만 그래도 새벽녘에는 서늘한 것이 가벼운 이불이라도 덮어야 하는 한국의 가을 날씨 비슷하기도 합니다. 물론 아직은 비가 내리는 날씨지만요.

올해도 이제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세월이 유수같다는 말이 절로 실감이 나는군요. 딱히 무얼 하면서 기나긴 시간들을 보냈는지 생각도 되지 않고, 이런 저런 일상사에 치받이고 몰리다가 허송세월한 것도 같고, 눈을 들어 세월을 보면 언제인지도 모르게 살며시 들어와 같이 늙어 가는 안타깝고 아쉬운 흰머리만 보이는 것 같습니다.

片雲居(편운거). 예전, 무슨 이유이었는지는 모르지만 너무나 삶이 뒤틀려서 정신없이 술마시고 노래하고 춤추던 시절. 술이 어느 정도 취하면 자주 갔던 허름하고 자그만 술집이름이었습니다.’작은 조각구름이 모이는 곳’이라는 그 시절의 패배적이고 자조적이고 또 퇴폐적인 심정에 딱 어울리는 뜻이지요. 잘 기억은 안 나지만 중국의 한유의 시에 나오는 멋진 시구에 들어 있던 단어인 것도 같습니다. 그래서인지 글줄이라도 쓰는 글쟁이들이 퍼질러 앉아 세상을 욕하고, 인생을 욕하고 그리고 사랑에 울던 곳이었습니다.

어느 날 저도 갈가리 찢긴 모습으로 이곳에 깃들었지요. 세상에 쫓기고, 병에 쫓기고 또 방황에 쫓겨… 갈 곳 없어 헤매다 이곳 캄보디아에 흘러 왔었지요. 마치 뭉게구름처럼 복스럽고 탐스럽기만 하던 인생들이 바람에, 세월에 그리고 풍파에 갈기갈기 찢어져 갈 곳 없어 헤매다 깊은 산 아무도 없는 산자락 기슭에 모여 들 듯이요. 흘러 흘러가는 조각구름처럼 말이죠.

그동안의 세월을 다 보내버리고, 무엇을 했는지도 남는 것 없이 보내 버리고, 망연히 앉아 이제 마지막 남은 시간들을 세어보며 제 인생을 생각합니다. 그러고 보면 참 고마운 캄보디아입니다. 캄보디아 이곳. 저의 마지막 고향. 따뜻한 이곳에서 가난에 찌들어도, 세파에 시달려도, 권력에 유린당해도, 얼굴에 웃음이 먼저 피는 이 순박한 사람들하고 조금조금 살펴가며 살아가는 이 땅이 이렇게 고마울 수 없습니다.

행여나 죽을세라 벌벌 떨고, 남의 고통보다 내가 당할 손해를 계산하기 바쁘고, 선뜻 선심 한 번을 쓰는 것이 그렇게 어려웠었습니다. 풀 한 포기조차 움켜쥐려고 아등바등대며 살았던 것이 제 인생이었습니다. 그런 인생이 이제는 남 가여운 줄도 알고, 남 소중한 줄도 알고 그리고 그들에게 측은지심으로 다가갈 줄도 깨우치니 이래서 인생이란 살아 볼 가치가 있는 것 같습니다. 욕심부리지 않고, 분수를 알고, 안분지족하는 삶. 하고 싶은 일하고, 쓰고 싶은 글 쓰고 천천히 살아가는 복도 누리고 말입니다. /정지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