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일이 보는 세상] 사랑 정체 물을 때

기사입력 : 2015년 12월 21일

동행

연식이 좀 되신 분들이라면 제목에서 옛날의 어떤 유행가가 떠오르시리라. 노래를 만든 분에게 아마도 누군가가 사랑이 무엇인가라고 질문했던 모양이다. 그것을 ‘눈물의 씨앗’이라고 규정(規定)한 그 곡은 공전(空前)의 히트를 기록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인터넷을 뒤지다 만난 작년 4월의 신문 기사 하나가 눈길을 끈다. 하루키와 더불어 일본 현대문학을 이끄는 작가라는 소개와 함께 시마다 마사히코의 동아시아 정치에 대한 언급을 인용하고 있었다. 그는 한국, 중국, 일본의 국민들이 자국 정치인들의 내셔널리즘 선동에 현혹되지 말 것을 충고하고 있었다.
위의 노래는 뒷부분으로 가면 정인(情人)이 자신을 버리지는 않을까 하는 염려를 드러낸다. 그러니까 처음 구절들은 헤어짐의 괴로움을 가정할 때 울지 않을 수 있겠는가를 강조하여 호소한 것일 뿐이다. 현혹(眩惑)의 원망이 아니라 이별하지 말고 오래 사랑하자는 권유(勸諭)가 주제라고 보아야 한다는 생각이다.

‘모비딕’을 영화화한 것이라 오해한 채 ‘인 더 하트 오브 더 씨’라는 영화를 4D로 보았다. 그런데 한 블로거의 정보에 따르면 ‘모비딕’의 근원이 되는 동명의 소설을 저본(底本)으로 삼은 것이라 한다. 유행에 무뎌서 내 인생 최초의 4D 감상 경험을 프놈펜에서 하게 된 것이다.
상영에 앞서 3D를 소개하는 영상에 수원 화성과 태권도 등 한국을 소재로 한 내용이 나와 반가웠다. 살기 팍팍한 대한민국의 상황들에 민감하게 반응하면서도 이럴 때면 반가움이 앞서는 것이다. 그저 영상만큼만 ‘서로 사랑’이 넘치는 나라 되기를 ‘지나는 길’에 소망해 본다.
3D의 입체 영상에 더해 항해 장면이면 의자 흔들리고, 물 날리고 번개 치면 별도의 조명이 그에 맞춰 번쩍거린다. 그러니 4D란 현실 흡사하게 훨씬 실감이 나게 하는 장치라 보인다. 그렇지만 인간의 능력은 2D를 가지고도 3D, 4D를 능가(凌駕)할 수 있다고 나는 믿는다.

영어에 캄보디아어 자막이라 영화의 주제를 거론할 정도의 이해를 하지는 못했다. 무엇보다도 4D에 걸맞는 스펙터클을 2D적인 프놈펜에서 맛본 것이 신선했다. 다만 ‘사랑’이 하나의 중요한 주제로 다뤄진 것이라 한다면 타인의 ‘먹이’가 되기 위해 자신의 머리에 총을 쏘아 생을 마감하는 장면이 인상적이었다.
모든 양식이 사라진 난파(難破)의 상황, 동물이 아닌 인간은 어떤 모습을 보여줄 수 있는가를 고민하게 했다. 짐승이라면 고뇌할 필요 없이 상대를 물어뜯었으리라. 그런데 제비를 뽑아 자신 순서를 면한 해당 인물은 뽑힌 대상 대신 자신을 제물로 희생하였다.
나의 몸을 난파선에 실으면 몇 사람 위장의 허기(虛氣)를 며칠이나 지울 수 있을까. 짐짓 고귀한 듯 이 글을 쓰고 있는 나란 존재는 어쩌면 고래의 한 끼니도 못되는 고깃덩어리일 수도 있다. 동시에 만물의 영장이기도 한 우리는 그렇다면 과연 무엇을 생각하며 살면 좋을까.

지난주에는 프놈펜에서 차로 두 시간여 달려 도착한 깜뽕 스프의 혼례식에 다녀왔다. 골목길 하나에 통째로 지붕을 씌우고 9백여 석을 마련한, 마을 규모에 비하면 성대한 잔치였다. 길 한쪽을 막고 개인의 행사장을 만드는 모습은 수도 프놈펜에서도 흔히 보는 풍경이다.
일박이일로 치러진 혼례식에서는 보통 10∼20벌 정도 옷을 갈아입는다 했다. 그것만으로도 비용이 얼마일까 짐작될 터이다. 최저 임금 128불 책정된 나라에서 기혼인 몇 사람에게 물어 파악한 결혼 비용은 대략 5천불 이상이었으니 허례허식(虛禮虛飾)은 심각한 문제라 보인다.
한편 신랑 신부 각각 들러리 세 사람이 당사자 못지않게 차려입은 채 예식을 시종 함께 하는 게 흥미롭다. 그리고 모여든 친구들과 하객들은 한껏 흥을 돋우고 맘껏 축하하며 모두가 행복을 만들어 내고 있었다. 조사 시점과 방법 따라 약간의 순위 차 있겠으되 행복지수 1위와 117위 국가의 차이를 느낄 수 있었다. 물론 2D 수준 캄보디아가 ‘3D나 4D 국가들’보다도 낭비를 일삼는 허영을 비난할 수 있다. 다른 측면 4D 나아가 5D를 구현한다 하여도 인간의 행복은 물질과 재력만으로 뒷받침되는 건 아니라 볼 수도 있다. 걸핏하면 트집 잡아 자신 옳음만을 고집하려는 4D적인 어느 나라를 떠올리면 오늘만큼은 캄보디아의 철없음은 살짝 나무라고 더불어 흥겨운 행복감 쪽을 힘주어 보고 싶다.

여러분들은 사랑을 눈물의 씨앗으로 보시는가 나를 던질 희생의 동인(動因)으로 보시는가. 사랑해서 결혼한다지만 ‘헬조선’의 ‘칠포’ 세대는 결혼을 꿈도 꾸지 못한다. 그런 한국을 만든 기성세대의 일원으로서 청년들에게 미안한 마음을 먼저 전한다. 그런데 과연 모든 요인이 밖에만 있고 ‘나’에게는 없는 것일까. 살 집과 월 급여와 키와 나이와 얼굴 정도도 보지 않을 수는 없는 거 아니냐고 묻는 게 어쩌면 인지상정(人之常情)이랄 수도 있겠다. 하지만 그 과정이 좋은 과일을 고르는 일과 크게 다를 바 없어 보이지는 않는가. 그렇다면 그건 탁월한 ‘거래’일 순 있어도 순수한 ‘사랑’은 아닐 듯하다.
2012년 한 방송사가 기획한 기존 가수들의 경연 최종전에서 가왕 타이틀은 가슴으로 노래하는 가수라고도 불리는 더원이 차지하였다. 도중인 9월 경연서 그는 ‘아시나요’라는 노래로 청중의 심금(心琴)을 울렸다. 그 한 구절, ‘아시나요 이렇게 아픈 내 마음 끝내 모르셔도 난 괜찮아요’는 희생의 정석과 사랑의 정체를 한눈에 보여주는 명구(名句)이다.
모두(冒頭)에 소개한 작가에게 그날 모임의 뒤풀이에서 동석(同席)한 어떤 이가 한국에 ‘사랑은 눈물의 씨앗’이란 노래가 있다며 그 내용에 대해 설명한다. 그러자 그는 광주에서 먹었던 홍어를 회상하며 ‘사랑은 암모니아 냄새를 견디는 것’이라고 답한다. 이 답답하고 무더운 프놈펜, 한 해 저물고 여는 한겨울에 암모니아 냄새 견뎌 발효(醱酵)된 더원의 굵직한 목소리에 담긴 ‘사랑의 씨앗’의 희망 느껴보시기를, 그리고 그런 사랑 기필코 나눠보시기를 권한다. /한유일 (교사 : shiningday1@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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