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일이 보는 세상] 맹그로브가 전하는 말

기사입력 : 2015년 07월 02일

견고한 의지

육지서 생장하는 모든 식물들은 민물을 마시며 산다. 같은 조건 아래 보다 유리한 여건을 차지하려 숲에는 다양한 식물군간의 치열한 경쟁이 펼쳐진다. 때로 그와 같은 생존경쟁은 ‘너 아니면 나’ 식의 살벌함을 드러내어 같은 종의 나무 밑에 일체 다른 종들을 배제하기도 한다.
그러자니 그 실상은 정글 동물간의 약육강식(弱肉强食) 못지않다. 앉은 자리에 풀마저 자라지 않는다는 강고(强固)한 고집 떠올린다면 이해하기 쉬울 듯하다. 사뭇 그윽해 보이는 나무들의 세계 진면목(眞面目)은 이처럼 전혀 다른 거친 세계일 수 있는 것이다.
언젠가 가본 터키의 명승지 중 종교 박해를 피해 만들어진 바위 지형 동굴집들이 생각난다. 살상이 얼마나 심했기에 짐승도 살기 어려운 가파른 돌산에조차 거처를 마련해야 했을까. 믿음이 다르다는 이유로 동류의 인간을 뿌리까지 뽑아버리는 잡초처럼 대한 모습이 처연했다.

6월 중순께 농사를 업으로 하는 분들과 어울려 찾은 북서부 변방(邊方) 꼬꽁 프로빈스는 가뭄에 모내기도 못하는 프놈펜 인근(隣近)과 달리 수시로 쏟아지는 비로 일행을 맞는다. 전국 각지를 누빈 고수(高手)들의 전언에 따르면 캄보디아에는 꼬꽁까지 이어지는 길을 포함해 한국의 강원도를 연상케 하는 시원한 몇 도로들이 있다고 했다. 일테면 몬돌끼리 넘는 길이 대관령이라 칠 때 꼬꽁 쪽은 미시령이라 빗대면 딱 맞다면서 말이다.
꼬꽁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건 세계적으로도 빼어난 경관이라는 맹그로브 숲을 만난 일이다. 일박을 한 다음날 오전 일정으로 찾은 장소는 맹그로브 숲 빈 공간들을 알맞게 이으며 밀물 때의 높이에 맞추어 길다란 길을 만든 곳이었다. 길 끝에 강처럼 건너야 할 공간에는 흔들다리 매달아 즐거움 요소 더했다. 다리 너머에는 족히 5층 높이는 될 정도의 콘크리트 전망용 구조물을 마련해 놓아 나름의 여러 시설물 둘러보노라면 시간을 잊을 만했다.
오후에는 눈 뜨기 어려울 만큼 거센 비바람 속 조금은 위험하다는 의견들 있었지만 기억에 남을 일엽(一葉) 쪽배 강행군을 감행하였다. 대략 6명 내외 탑승한 모터 단 쪽배를 타고 끝 모르게 달리는 해변을 따라 맹그로브는 연이어 자리 잡고 있었다. 유심히 보자면 새로 나는 가지는 아래를 향해 뻘을 뚫고 다시 뿌리 역할을 하며 몸을 지탱하였다. 부풀은 그물을 닮은 그 모습들은 썰물 맞아 본체를 드러내어 장관을 이루고 있었다.

내 어릴 적 우리나라 사람들이 아메리칸드림을 꿈꾸었듯 오늘의 상당수 캄보디아인들은 코리안드림을 품고 산다. 6월의 마지막 주말에 치러진 취업자용 한국어 능력 시험[EPS TOPIK]에는 전국 7개 시험장에 대략 4만여 명 구름인파가 몰려들었다 한다. 대체로 젊은 남녀들이 주류였으며 마른장마의 한국처럼 비가 실종되어 푹푹 찌는 우기 날씨임에도 얼굴 가득 피운 희망의 싱그러운 웃음에서 맹그로브 닮은 원초적인 삶의 의지를 읽을 수 있었다.
왕가(王家)명을 딴 노로돔 도로, 얼마 전 개원식을 가졌던 앙두엉 안과병원 대각선에 한 초등학교가 있다. 도로명과 같은 이름의 노로돔 초등학교인데 여기서도 시험이 치러졌다. 토요일과 일요일 이틀에 걸쳐 4천 8백명 응시자가 자신들의 한국어 능력을 점검받았다.
소위 컨닝이라 부르는 부정행위가 항다반사(恒茶飯事)였던 캄보디아는 작년 신임 교육부장관의 강력한 개혁 의지에 따라 그것에 많은 제동이 걸렸다. 학교를 찾아 지켜보자니 교문에 들어서며 받는 강력한 몸수색이 보는이의 마음을 짠하게 하였지만 달라짐의 도정이라 생각되었다. 시험장들을 둘러보매 노골적인 부정행위는 거의 눈에 띄지 않는다. TOPIK을 통해 이 나라 시험문화를 긍정적으로 바꾸는데 조금이라도 기여하는 것 같아 다행스러웠다.

시험 중간의 토요일 저녁에는 달라지는 또다른 캄보디아를 느낄 수 있어서 뿌듯하였다. 클래식 음악을 선보이는 공연을 찾기 힘든 이곳에서 드물게 있는 자리였다. 그날은 왕립예술대학에서 열성적으로 성악을 가르치는 한국인 교수의 오페라 아리아들이 주로 공연되었다.
그의 빼어난 목소리와 풍부한 감성을 오랜만에 감상한 것은 물론 흥겨웠다. 더불어 불과 6개월 가르쳤다는 대중 가수라는 소녀의 맑은 목소리에서 프놈펜 성악의 밝은 미래를 본 것은 어쩌면 도(度)를 넘는 상상일 수도 있다. 그런데 그 과대망상(誇大妄想)이 나를 기쁘게 한다.
협연에 나선 현지인들의 피아노와 플루트 연주는 상식적 수준으로 보아도 매우 엉성하였다. 그렇지만 몰입하여 관객에게 밀려드는 열정을 느끼며 이들에게 대체 예술은 무엇일까를 궁구하게 만들어준 훌륭한 무대였다. 가난하고 인문(人文)의 향기 메마른 캄보디아에 그들의 예술 향한 의지는 바닷물 걸러 잎 내고 줄기 키워 기어이 뿌리내리는 맹그로브처럼 척박한 문화 대지(大地)를 살지울 거란 믿음 가질 수 있어서 보는 내내 가슴이 따끈거렸다.

맹그로브 숲길을 걸으며 물 빠진 뻘의 다양한 생물들을 관찰한다. 순천만에서는 짱뚱어들이 주인 노릇 한다면 여긴 곳곳에 고둥류가 있었는데 좀 부풀리자면 비슷한 한국 종들의 100배는 될 듯하여 성장 풍성한 열대의 느낌 만끽케 한다. 뿌리마다 핀 굴껍질은 돌 대신 나무 택했으니 석화(石花) 아닌 목화(木花)라 불러야 할까.
맹그로브를 보면서 다른 종들과의 경쟁 대신 바다를 개척한 그 억척스러움에 놀랐다. 육지 나무인 그들 역시 민물이 필요한데 바닷물을 먹어야 하니 짠 기운은 일부 잎들 선택하여 걸러 잎을 떨어뜨리는 지혜를 통해 해결한다고 했다. 상대를 해치기보다는 새로운 영역에 도전한 맹그로브는 내면의 밭을 가는 수행자를 닮았다.
내가 좋아하는 가요 속 ‘바람’은 ‘착한 당신, 인생이란 따뜻한 거’라고 속삭였었다. 반면 꼬꽁의 맹그로브는 억척스런 모습을 하고 ‘무한긍정’의 태도 전해주었다. 해풍과 짠물조차도 꺾을 수 없는 생(生)의 의지(意志)를 아름답게 아름답게 전파하였다. / 한유일 (shiningday1@naver.com)

 

코리안드림 향한 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