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일이 보는 세상] 모또캠페인

기사입력 : 2014년 09월 29일

8월 들어서면서 주요 도로엔 가로 매인 적십자 활동 홍보 펼침막이 무수히 펄럭였다. 대형 광고판과 곳곳에 세워진 입간판은 왕과 모친 그리고 퍼스트레이디의 관련 활동 사진을 담고 있었다. 그것들이 갖고 있는 홍보의 효과를 알고 있다는 뜻이다.

입헌군주국인 캄보디아에서 국왕은 실권은 없어도 무시할 수 없는 존재인 듯하다. 현재 왕인 시하모니는 어느 만큼인지 몰라도 전임 시아누크에 대한 존경심은 절대적이라고 느껴질 정도다. 그러니 정부 정책의 홍보에 왕족만큼 효과적인 인물들도 드물 터이다.
정부가 하는 일을 알리려는 목적은 자신들이 안전한 사회를 만들고 있다는 믿음을 심기 위해서이다. 남과 더불어 안전하게 살고 싶은 건 호모 폴리티쿠스인 인간(人間)의 본능이다. 영화 ‘명량’에 뭉게구름 관중이 몰리는 현상 또한 그러한 해석을 뒷받침한다.

한국의 속칭 오토바이를 여기선 모토라 통칭하는 것 같다. 모토는 많은 시민들의 자가용이기도 하며 대중교통으로서의 그것은 모토 택시라 부른다. 뒤에 별도의 승차 칸을 매단 툭툭보다 요금이 싸기 때문에 다소 불편하더라도 아직 널리 사용되는 중요한 교통수단이다.
모토는 사용 범위 면에서 보통 사람의 상상을 뛰어넘는 폭을 보여준다. 한번은 시골길에서 모토 뒤에 경운기 뒷좌석을 길게 늘인 듯한 형태의 탈 것에 가로로 판자를 걸쳐 족히 30여 명 넘게 타고 가는 걸 보고는 입이 쩍 벌어졌다. 모토 뒷좌석에 때로는 통돼지 여러 마리가 실리기도 하고 조그만 잡화상 부럽지 않은 많은 물건들과 함께 미래의 밝은 꿈이 펼쳐지기도 한다. 프놈펜에서조차 모토는 카페로 음식점으로 때로는 요긴한 수리점으로 전지전능 변신하며 소규모 사장님들의 귀한 사업 수단이 되기도 한다.
그렇게 없어서는 안 될 교통수단인 만큼 안전 운행을 강조하지 않을 수 없다. 프놈펜 시민 나아가 캄보디아 국민의 안전을 위해 시급한 게 모토 운전법 개선이란 얘기다. 그러기에 다양한 캠페인의 내용을 모토 안전을 주제로 시도해 보기를 충언하고 싶은 것이다.

일 년 전 프놈펜에 첫 발 디딜 때 개미처럼 도로를 덮은 모토 행렬 장면이 퍼뜩 떠오른다. 인상적이었던 건 대다수 운전자들이 안전모를 착용하고 있었던 거였다. 일 년이 지난 지금 예전의 착용 상태로 되돌아갔다는 지적들인데 내 보기에도 절반 가까이 줄어든 느낌이다.
빈틈없는 헬멧물결 뒤안에는 관계 당국의 강력한 단속 의지가 작용했었다. 준법과 개혁의 푯대로 생각할 수 있겠다고 나도 여겼었다. 개혁은 시늉이었던가 싶자 기대감이 여지없이 무너지며 그렇다면 단속의 약화란 오히려 국민을 두려워하던 집권 세력이 다시 옛날로 회귀하려는 신호탄이라고 해석할 수도 있겠다 싶다.
물론 경제성장율 7% 예상에 정쟁 타결의 솜씨 보여주며 총리는 내심 명성을 바랄 수도 있겠다. 내 정도 되었기에 망해가는 나라 번듯하게 만든 것 아니냐 되물을 자격도 있어 보인다. 하지만 게서 한 발 더 나아가 역사에 이름 남고 싶다면 조금은 부족한 게 있다. 그게 뭐냐 묻는다면 원포인트 레슨처럼 간단히 배울 묘방이 있다. 그건 바로 며칠 전 한국을 방문했던 프란치스코 교황이 보여준 진심의 행적을 비슷하게 보고 배우는 일이다.

시내에서 차를 운전하며 가장 위험한 건 갑작스레 좌우에서 나타난 모토가 차 앞을 질러 반대 방향으로 가는 경우이다. 상당수 차 운전자들이 그 점을 알고 조심하기에 망정이지 잠깐 방심하면 언제나 접촉의 위험이 상존한다. 모토를 모는 이들은 늘상 그래왔기에 그 같은 운전 행태가 초래할 위험이 얼마나 커다란 건지를 모르는 것이다.
모토 사고를 매일 목격하다시피 한다는 교민들의 이야기를 여럿 들었다. 그것 아니더라도 자주 운전하지 않는 나 역시 여러 번을 목격했다. 하지만 피해 당사자들은 위험성을 전할 통로가 없으니 그러한 현상은 여전히 사라지지 않고 있다.
한마디로 정리하자면 무엇보다도 몰라서 그런 운전 상황이 지속되고 있다는 말이다. 따라서 서민에게 요긴한 그 점을 일깨워주는 게 바른 지도자의 행태이다. 만일 교황이 프놈펜을 방문해 그 장면을 목격했을 때 국민 생명을 진정으로 아끼는 리더라고 한다면 적십자 홍보보다도 모토 캠페인을 우선하여야 한다고 넌지시 귀띔하지 않을까.

최근 십 년 만에 다시 시엠립 유적지를 찾았다. 여전히 감동적이었던 건 천 리엘 지폐에도 나오는 앙코르톰의 고푸라 상단을 장식한 사면석상이었다. 석상은 위대한 성군으로 거의 모든 캄보디아 국민이 존경하는 자야바르만 7세의 얼굴로 추정된다.
도로 홍보물 중 사면석상 앞에서 웃고 있는 훈센 총리의 사진을 본 적이 있다. 두 사람의 중요한 공통점 가운데 하나가 베트남에서 재기의 세월을 보냈다는 것이다. 그리고 복귀하여 권좌에 올라 장기 집권을 하고 있는 점도 닮았기에 같은 위상으로 평가되었으면 하고 바라는 심정을 그 사진으로부터 읽을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나 진정 닮고 싶다면 자야바르만 7세가 많은 학교와 병원을 세웠던 점을 기억했으면 한다. 단순히 숫자가 중요한 게 아니라 마음으로부터의 연민과 사랑을 담아 변화를 꾀했기에 여지껏 이어지는 존경이 가능하다 믿는다. 자야바르만 7세가 교황의 미소로 다가와 캄보디아 정치권에 할 말이 귓전을 울리는 듯하다. “앙코르 제국 위대한 역사를 재현하고 역사에 현명한 지도자로 남길 원한다면 캠페인 주제를 서민 안전으로 치환(置換)하라!”

8월 19일

한유일(교사) shiningday1@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