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순칼럼] 짧은 만남, 긴 이별

기사입력 : 2012년 06월 12일

스콜이 쏟아지기 직전, 그 전조를 바라보는 일은 황홀하다. 절정에 도달하기 위한 최후의 몸 부림, 하늘과 땅의 멋진 연애 장면을 훔쳐보는기분이랄까. (세상에 남의 연애구경만한 게 있으 랴) 해갈을 기다리는 지상의 초목은 잎가지를 산발하여 흔들어대고, 비상할 수 있는 것들은일제히 하늘을 향해 날아오른다. 달뜬 바람은 해를 밀어내고 비를 머금은 먹장구름은 낮아지고 더 낮아지다가, 쏴…하늘과 땅이 만나는 것이다. 그 격정적인 해후도 잠시, 비가 그치면 바람도 자고 하늘은 성큼 높아진다. 짧은 만남 긴 이별의 연속인 노마드 인생처럼.
 
얼마 전 고국에 나갔다가 양주 한 병을 꿰차고 예전에 모셨던 대선배님을 찾아뵈었다. 평생 시류에 휩쓸리지 않고 삶과 공간을 설계하는 데 골몰하셨던 건축가 정신은 여전하셨고, 시장의 능률주의에 치여 어쭙잖은 집장사로 전락한 우리를 안쓰러워 하셨다. 살아가면서 고독하고 세련된 순수함과 대면할 때만큼 행복한 순간이 있을까. 봄볕이 유난히 편애하는 듯한 선배님과 작별하는 길에 내내 팔짱을 끼고 걸었다. 칠순을 바라보는 선배님은 숙녀를 에스코트하는 영국신사처럼 예를 갖추신다. ‘이 세상 이별은 대부분 그대로 이별이 되게 마련이다’는 어느 작가의 말대로라면, 바로 그런 순간에 ‘사랑 합니다’, ‘존경 합니다’ 내색하지 못한 일이 영영 마음에 걸릴 성 싶어 팔에 힘을 더했다.
 
이렇듯 사소한 이별에 대한 조바심은 해외에 나와 살면서 생긴 것이다. 해외사업이란 게 부침이 심해 사업차 떠나시는 분, 임지를 따라 왔다가 다음 임지를 향해 떠나시는 분…말 그대로 정들자 이별을 많이 겪기 때문이다. 요즘 학교 졸업시즌이라 아이들 졸업과 함께 한꺼번에 여러분이 떠나실 모양이다. 몰려다니며 쇼핑도 하고, 눈을 맞추며 수다를 떨어야 직성이 풀리는 구닥다리로서, 안 그래도 귀한 정줄이 휘지게 생겼다. ‘고향을 감미롭게 생각하는 사람은 아직 허약한 미숙아다. 모든 곳을 고향이라고 느끼는 사람은 상당한 힘을 갖춘 사람이다.’는 빅톨 위고의 굳건한 노마드 의지를 닮고 싶지만, 그래도 ‘귀향’이라는 말을 들으면 기어이 마음 한 자락이 따라가려는 것을 어쩌랴.
 
“그윽한 풍경이나/제대로 맛을 낸 음식 앞에서/아무도 생각하지 않는 사람/그 사람은 정말로 강하거나/아니면 진짜 외로운 사람이다” 이문재 시인의 <농담>의 일부다. 지구촌 어디에서라도 캄보디아 스콜을 연상시키는 폭우가 쏟아질 때나 후식으로 열대과일을 마주할 때면, 한 번쯤 생각해 주오. 파초처럼 소낙비를 좋아하고 파인애플처럼 거죽은 두꺼우나 속은 달콤했던(?) 프놈펜의 여인을. 부디 몸 성하시고…/ 나순 ·건축사
 
 

 
 
*뉴스브리핑 캄보디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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