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순칼럼] 가사도우미

기사입력 : 2014년 06월 16일

Housekeeper

교황청 기관지에 여성해방의 1등 공신이 발표된 적이 있다. 남성과 대등한 참정권을 행사하게 된 “투표권”도 아니고, 마초들의 근육을 무용지물로 만든 “권총”도 아니고, 임신 공포를 없애준 “피임약”도 아니었다. 바로 <세탁기>가 그 주인공이다. 자고나면 수북이 쌓이는 빨랫감을 날마다 손으로 빤다고 상상해 보라. 애벌빨래를 거쳐 비누칠한 것을 바락바락 문지르고 네댓 번씩 헹구어 하나하나 비틀어 짜내는 과정을. 주부대상 어떤 설문조사에서 “남편과 세탁기 중 택일을 하라면?”이란 문항에 많은 여성이 선택을 망설였다고 한다. 중년남성이 이사할 때 버림받지 않으려면 마누라가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강아지를 안고 있어야한다는 우스개도 있지만, 애완견이 없는 가정이라면 세탁기 옆에 꼭 붙어있어야 할 듯하다. 아무리 세상이 변했다 해도 가사의 최종책임은 주부 몫이고, 사회참여를 꿈꾸는 여성의 발목을 잡는 것은 여전히 가사노동이라는 결론이다.

캄보디아에 거주하는 장점 중 하나를 꼽으라면, 고국에서는 누리기 힘든 호사였던 가사도우미를 둘 수 있다는 점이다. 선진국의 10퍼센트에 못 미치는 비용으로 가사노동에서 해방될 수 있을뿐더러 타국생활에 따르는 자질구레한 문제까지 해결 해준다. 아무래도 의사소통이 힘들다보니 답답한 구석도 없잖아 있다. 장 봐올 찬거리를 설명할라치면 닭 머리 부분은 떼고 가져오라며 목을 단칼에 베는 시늉에, 소 홍두깨살은 시들어가는 엉덩이까지 동원하는(남편은 벌써 입맛이 떨어진 표정이다) 보디랭귀지에 의존하기 일쑤인 것이다. 식사자리 대화가 그렇듯이 19금 너스레에 주변사람들 이야기가 빠질 수 없으니 말이 안 통해 뱃속 편할 때도 많긴 하지만. 어쨌든 그녀 덕분에 비로소 나는 자유를 얻었다. 집안일이란 게 몰아서 해치울 수 있는 집약노동이 아니라 일일이 때에 맞춰해야하는 분산노동이다 보니 진득하니 뭔가에 몰입하는 일은 꿈도 꿀 수 없는 노릇이다. 프놈펜에서 같잖은 일이나마 꾸려올 수 있었던 건 대부분 그녀 공인 셈이다.

‘식모’에서 ‘가정부’, ‘가사도우미’를 거쳐 ‘가정관리사’에 이르기까지 호칭이 자주 바뀌는 현상은 시간이 갈수록 단어의 이미지가 추락하는 기피직종이라는 반증이다. 요즘은 캄보디아에서도 가사도우미 구하기가 힘들어졌다. 60년대 급속한 산업화를 거치면서 우리나라가 그랬듯이, 저임금 여성노동시장이 확대됨에 따라 사회적 인식이 낮은 가정부 일보다는 어엿한 근로자 신분에 마음 맞는 동료가 있는 사업장 노동을 선호하기 때문이다. 흑인가정부의 애환을 그린 미국 영화 ‘헬프’에서처럼 의심암귀에 씐 안주인이 두루마리화장지까지 표시해두고 전용화장실 · 전용용기 쓰기를 강요당하는 수모를 겪지 말란 법 또한 없을 터, 내밀하게 감춰진 남의집살이에 말 못할 설움도 많아서이리라. 이래저래 캄보디아에서도 가사도우미의 도움을 받기가 갈수록 힘들어 질 듯하다. / 나순 (건축사, http://blog.naver.com/naarc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