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우칼럼] 건기로 접어들었는데

기사입력 : 2013년 12월 11일

아침저녁으로는 바람이 제법 차다. 밤에는 창문을 닫고 자기도 하고 이불과 친해지기 시작했다. 새벽에 밖에 나가려면 반팔 차림으로는 냉기를 느낄 때도 있다. 오토바이를 타고 다니는 캄보디아 사람 중에는 두꺼운 외투 차림도 자주 눈에 띈다. 아침녘에는 바람이 어찌나 선선한지 한국의 가을 날씨 같다. 새벽에는 섭씨 18도 정도로 내려가지만 한낮 기온은 섭씨 27도 정도로 따끈따끈하다. 지난 달 말에도 비가 좀 내리더니 이달 들어 뚝 그쳤다.

메콩강의 수위도 쭈욱 내려갔다. 톤레삽 호수에서 내려오는 톤레삽강의 물살이 냇물 흐르듯이 빠르다. 머리끝만 겨우 드러내 놓고 있던 왕궁 앞 짜토목 섬이 점점 섬의 모습을 되찾기 시작하고, 우기에 어디론가 사라졌던 선상 가옥들이 그 건너편에 옹기종기 모여든다. 쪽배 위에서 그물을 손질하는 사람들의 손길이 분주하다. 강 여기저기에 부표를 띄워 놓은 걸 보면 고기잡이가 한창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메콩강을 따라 내려온 물고기들이 톤레삽강을 거슬러 올라가 톤레삽 호수로 몰려들었다가 이것이 다시 내려오는 길목에 그물을 치는 것이다.

프놈펜에서 자동차로 1시간쯤 동북쪽으로 달리면 드넓은 곡창지대인 깜퐁참 지역이다. 메콩강이 관통하는 곳이라서 캄보디아에서는 가장 농사가 발달한 지역인데, 차를 타고 지나다 보니 지금 추수가 한창이다. 벼를 베는 것이 아니라 벼 이삭을 잘라 수확을 하는 것이 이채롭다. 이미 추수가 끝난 들판에서는 여기저기 소들이 눈에 띈다. 풀도 별로 없는 들판에서 추수하고 남은 마른 볏짚으로 배를 채우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그런지 소들이 한결같이 말라 있다. 추수가 끝나면 농사를 짓느라 지친 소들에게는 한 동안 휴식이 찾아오지만 내년 논갈이를 위해서는 한껏 살을 찌워야 한다.

강에 인접한 지역에서는 모내기도 한다. 우기 몇 달 동안 차 있던 물이 서서히 빠지면서 드러나는 땅에 둑을 쌓고 거기에 모를 심는다. 물이 빠지는 대로 높은 지역에서부터 강가로 내려가면서 차례대로 논이 만들어진다. 용수로가 제대로 갖춰져 있지 않은 지역에서는 한철 농사로 끝나지만, 강이 인접해 있는 곳이라 한쪽에서는 추수가 진행되고 또 한쪽에서는 모내기를 할 수 있는 것이다. 끝이 보이지 않는 들판 여기저기에서는 트나우 나무가 자태를 뽐내고 있다. 미끈하게 쭉 뻗어 올라간 줄기 끝에 나뭇잎들이 계란을 세워 놓은 것 같은 모양을 하고 있어 부드러운 느낌으로 다가오는 나무다. 석양에 실루엣으로 펼쳐지는 트나우 들판 풍경은 캄보디아의 상징이기도 하다.

우기에는 대개 서풍이나 남서풍이 불었는데 요즘에는 동풍이나 동북풍이 분다. 문을 열어 놓으면 무척 시원하다. 비가 안 오기 때문에 흙먼지가 더욱 많아졌다. 한국의 공해 먼지보다는 낫다는 생각으로 위안을 삼지만 건기가 끝날 때까지 몇 달은 이럴 것이니 신경이 쓰이기도 한다. 마당 한쪽에 서 있는 나무들이 벌써부터 생기를 잃고 있다. 공터에 수북하게 자라던 풀들도 누렇게 말라간다. 식물들도 이제 휴지기로 들어가는 것이다.

한국은 지금 한겨울, 올해도 무척 추울 거라는 예보가 나온다. 연말이라고 들떠 있는 사람들도 있다는 소식이 들린다. 캄보디아에 살다보니 계절의 변화에 둔감해져서 그럴까? 12월인데도 연말이라는 생각이 별로 들지 않으니… / 한강우 한국어전문학교 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