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우칼럼] 여기 사람들에게 맞춰서 살라는데

기사입력 : 2013년 11월 20일

며칠째 가구점을 돌며 필요한 물건을 찾고 품질과 가격을 비교 확인하고 가격 협상을 한 끝에 구매 계약을 체결했다. 좋은 물건을 싸게 사기 위해서 같은 가게에 서너 번씩은 드나든 것 같다. 그러면서 장사를 하는 캄보디아 사람들의 속성과 손님을 대하는 태도를 많이 파악할 수 있었다. 주인이든 종업원이든 고객을 맞는 태도는 수준 이하. 어느 가게에 들러도 먼저 공손하게 인사를 건네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처음 마주치는데도 눈인사 정도가 고작이고 손님을 보낼 때에도 인사할 줄을 모른다. 고객이 무엇을 원하는지 파악한 다음 거기에 맞춰서 자기 물건을 소개하고 그것을 권해서 선택하게 만드는 기술이 매우 서툴렀다. 조금만 성의를 보이면 구매로 이어질 것인데도 손님의 마음을 끌지 못해 그냥 돌아서게 만들기 일쑤였다.

나만 그런지 모르겠지만, 캄보디아 사람을 데리고 물건을 사러 다니는 것은 별 도움이 안 된다는 생각이다. 물건을 흥정할 줄도 모르고 가격을 깎을 줄도 모른다. 구매자 입장에서 가게 주인이나 종업원을 적극적으로 설득해서 원하는 가격에 물건을 사도록 노력을 해야 하는데 그런 역할을 잘 못한다. 어떤 때에는 내 직원이 가게 주인을 위해서 일하는지 월급 주는 나를 위해서 일하는지 혼동될 때도 있다. 오늘도 같이 나갔던 캄보디아 직원을 돌려보내고 나서야 구매 계약을 체결할 수 있었다. 더 이상은 깎을 수 없겠다는 그 친구의 말에 쐐기를 박으면서. 장사를 하는 사람이나 물건을 사는 손님이나 캄보디아 사람들에게는 뭔가 부족한 게 있다는 생각이 든다. 상대방에게 보다 나은 서비스를 제공하거나 상대방을 적극적으로 설득하고 이해시키는 끈기 같은 것이.

캄보디아 친구들을 데리고 일하면서도 가끔 아쉬움을 느낀다. 몇 가지 일을 동시에 시키면 매우 힘들어 한다. 하기도 전에 먼저 겁을 내고 하면서도 혼란스러워 한다. 하루 업무량으로는 별것도 아니고 차례대로 하다 보면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인데도 그렇게 받아들인다. 세세한 부분까지 일일이 가르쳐 주어야만 맡은 일을 제대로 처리하는 경우가 많다. 노동 강도를 높이거나 업무량을 늘여서는 일을 그르칠 수도 있다는 생각도 든다. 물론 일을 처리하는 기술과 능력이 부족해서 그렇기도 하지만, 그것보다는 어떤 일에 매달려 그것을 적극적으로 달성하려는 조직원으로서의 책임감이 없어서 그렇지 않은가 생각된다. 주위에서 보고 배울 수 있는 일반화된 직장 문화가 없으니 캄보디아의 젊은이들이 세계의 젊은이들과 경쟁할 수 있는 역량을 갖추는 데는 많은 시간이 필요할 것 같다.

젊은 시절이 떠오른다. 정말 열심히, 그리고 숨차게 뛰었었다. 누가 시켜서도 아닌데 밤을 새우거나 휴일을 잊으면서 일했던 시절이 있었다. 일이 재미있어서 그랬던 것도 아니고 돈을 더 벌기 위해서 그랬던 것도 아니었다. 자신이 맡은 일을 완벽하게 달성해야 한다는 생각 때문에 그랬던 것 같다. 그런 사람이 어디 나 하나뿐이었는가. 선배가 그랬고 동료가 그랬고 후배가 그랬다. 그것이 그때의 직장 문화였다. 오늘의 한국이 존재하게 된 가장 확실한 이유 중의 하나가 거기에 있었다는 생각에 스스로 자긍심을 느낀다. 살아온 역사와 풍토가 다르고 내재된 정신과 습성이 다른 캄보디아 사람들에게 내 자신의 과거와 현재의 잣대를 들이대고 그것을 기준으로 뭔가를 기대하는 것은 부질없는 일인지도 모르겠다. 또 친구의 잔소리를 듣게 생겼다.

“여기서 살려면 여기 사람들에게 맞춰서 살아. 그래야 편해!”

/ 한강우 한국어전문학교 교장